세상살이에서 왈가왈부, 티격태격하는 것도 다 살만해서 하는 짓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기가 막히고 더 이상 그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실 그러한 언행이 얼마나 쓸모없고 하찮은 것들이었는지 알게 된다. 죽고 사는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죽고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주 앞바다에서 ‘세월 호’가 침몰해 성인들과 더불어 꽃 같은 아이들 280여명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기막힌 기사를 접하면서 하루 종일 먹먹한 마음인 채로 있다.

이런 일들이 결코 완전히 남의 일이 아니라는 그래서 나한테도 일어 날 수 있는 재해라는 사실이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사람이 그렇다. 가져야 하고, 올라야 하고, 잘나야 하고, 이겨야 하고, 뽐내고, 자랑하고, 쟁취하고, 움켜잡는 그런 일들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전제에서 비로소 가능한 일들이다. 사실 그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보증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 자신의 것이다. 그것도 찰나의 순간, 그 순간만 그렇다. 아니 사실은 그 순간마저도 자신의 것이라곤 없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금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라’고 외쳐도 정말로 마지막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 허망한 말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너무나 절실할 수 있고, 오히려 말 그대로 공(空)의 상태일 수 있다. 사실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진실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지금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가 움직이는 엄청난 공간에서, 그저 주어졌다 믿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런 인간이 세계의 중심인양, 세계의 그 어떤 것들을 모두 쥐고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교만을 떨며 행세를 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하나의 미물처럼 그저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 이것이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지금 생명의 존재 여부를 두고 가슴을 조이는 사람의 심정처럼 우리는 그저 주어진 생명에 오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 다음 다른 이유들은 그래도 되고 안 그래도 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그저 경험하는 또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더 가져도, 더 높이 올라도, 더 많은 것을 누려도, 생명이 끝나는 순간 결국에는 모든 것을 두고 가야한다. 그것에는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저 살아만 있어 주기를, 그저 제발 살아만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소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묶어 둘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는 좀 덜 시끄러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관계 할 수 있으므로 감사하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우리가 서로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위해 애쓰고 노력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것이다. 좀 덜 가져도 감사하고, 좀 덜 올라도 그저 감사하고, 좀 못 배우고, 좀 못나도 그저 지금의 순간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살아 있으므로… 그 다음 모든 것은 ‘덤’이다. 생명을 부여받은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덤이다.

덤으로 사는 삶에 미움도, 아픔도, 괴로움도, 슬픔도 사실은 의미가 없다.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살아 있으므로 그것만으로 된 것이다. 감사하라.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종교가 부르짖는 소리다. 왜 그래야 하는지 우리는 이러한 극한 상황을 접하면 그 이유를 안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또 너무나 쉽고 너무나 빠르게 잊어버린다. 놀랍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