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나는 존중받고 싶다!
< 프롤로그>
급격하게 발전하는 디지털 문명 속에 실버세대는 큰 시련을 맞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환경에서 무인주문 단말기 키오스크 앞에서 침침한 눈과 뒤에 서 있는 젊은이의 눈총으로 자신의 처지가 추락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에서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주인공이 심장병으로 은퇴 후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환경은 무척 고단하다. 그런 가운데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다가 결국 안타깝게 죽게 된다. 고령화 사회의 문제는 복지적인 개선보다도 실버세대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같이 살아갈 수 있게 준비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나는 존중받고 싶다!
< 영화 줄거리 요약>
영국 뉴캐슬에서 평생을 목수로 40년 동안 살아왔던 정직하고 성실한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은 부인이 죽고 난 후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하여 일을 계속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엘은 두 아이와 함께 런던에서 이주한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를 만나 도움을 주게 되고,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당국에 환멸을 느끼고  페인트를 사서 벽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주목을 받아 권리를 회복할 기회가 오지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나는 존중받고 싶다!
< 관전 포인트>
A.다니엘을 절망케 하는 복지절차는?
영국은 과거 구민법을 시작으로 1940년대의 복지국가(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로 성장했고, 80년대 대처리즘, 1997년 토니 블레어로 이어지며 복지제도의 변화가 있었다. 유명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을 만들어낸 국가인 영국이지만 다니엘은 질병 수당 심사에서 의사와 다르게 비전문가인 담당관이 질병 수당을 받을 만큼 심장병이 심각하지 않다고 탈락시킨다. 이에 정당하게 항고하지만 다니엘은 행정절차의 권위주의와 복잡함에 좌절하게 된다. 아직도 은행, 법원, 병원, 관공서의  높고 복잡한 문턱은 좌절감을 줄 수 있기에  접근성과 편리성을  더욱 개선해 나가야 한다.
B.다니엘이 겪게 되는 힘든 프로세스는?
@사회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무시하는 차가운 눈빛 @절실할 때 전화를 받지 않는 정부 기관 @질병 수당에 항소를 신청하려면 일단 재심사를 신청해야만 한다는 것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공무원 @구직수당을 받으러 가자 인터넷으로만 가능하다는 담당관 @구직 특강을 듣지 않으면 제재를 받는다는 냉혹한 담당자
C.케이티와의 인연은?
구직신청을 하러 간 다니엘은 런던 노숙자 쉼터에서 뉴캐슬로 와서 구직신청을
기다리던 2 아이의 미혼모 케이티를 만난다. 그녀는 단지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이 된 억울한 여자였다. 다니엘은 아이 둘을 키우며 방송통신대학에서 학업과 일을 함께 하려는 성실하고 용감한 케이티를 보고 전기가 끊기자 약간의 돈을 주고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만들어 주는 등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풀게 된다. 하지만 케이티는 직업을 얻지 못해 식료품 지원소에서 굶주림에 급히 통조림까지 따서 손으로 먹다가 결국 몸을 파는 일까지 시도하게 되지만, 이를 눈치챈 다니엘의 만류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D.다니엘 블레이크가 벽에 쓴 글씨는?
강직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던 다니엘은 질병 수당이 필요하지만, 모든 걸 디지털 온라인으로 증명하고 증빙을 윽박지르는 복지부 공무원에게 번번이 홀대를 당하던 어느 날 벽에다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라며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며 ‘울분에 차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외친다.
E.다니엘의 마지막은?
케이티의 자녀 데이지와 딜런에게 삶의 지혜도 전하는 다니엘은 유일하게 친절한 복지사 ‘앤’과 옆집 흑인 젊은이 ‘차이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노동 가능 건강 상태라 질병 수당 수령 자격이 없다”라는 통보 전화를 받게 되고 찾아간 담당관은 다니엘의 이력서를 보고 4주간의 보조금 제재라는 사형선고를 통보한다. 다니엘은 질병 수당 자격심사 항고 일에 참석했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결국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지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케이티는 다니엘을 대신해서 읽은 편지에서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I, Daniel Blake I am a man, not d dog)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라고 절규한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나는 존중받고 싶다!
< 에필로그>
이제 노인은 불편함의 대상이 된 세상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하고 공동체에서의 적응도 느리다. 하지만 일본 같은 고령사회에서는 노인과 젊은 층이 한 곳에
살게 하는 요양 시설로 시너지를 높이고, 백화점에서는 1층에 실버 전용공간을 마련하는 등 슬기롭게 윈윈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고속 열차나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깍듯하게 인사하며 자신의 삶을 즐기는 실버세대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노인 정책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점점 고령사회로 가는 우리나라도 이젠 노인을 하나의 복지/장애인 대상으로만 생각한 요양병원 같은 것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현역 사회에서 은퇴 사회로 자연스럽게 연착륙할 수 있는 가교를 만들고 경제, 건강, 놀이, 지속 교육, 삶의 철학을 승화시켜 지역사회, 대학촌과 연계하여 새로운 실버타운 건설을 통해 생산적이고 활력 있는 신개념 도시를 만들어 저출산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