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16층이다.
아파트 출입이라는 게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차를 운전해 들어가려면 입구 차단봉을 올려야 한다.
입주민 차량엔 인식카드가 부착되어 있어 차량이 접근하면 차단봉이 벌떡 일어난다.
물론 외부차량은 관리실 버튼을 눌러 방문 확인을 받아아야 들어갈 수 있다.
그르친 뒤에야 뉘우치는 세상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서 엘리베이터로 접근하기 위해선 출입문 시건장치 숫자판에
아파트 동수와 호실 그리고 각 세대 고유 비밀번호를 입력시켜야 한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려 해도 이 문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방문자들은 방문 세대 호수를 누르면 인터폰으로 통할 수 있다.

16층에서 내리면, 이번엔 집 현관문에 매달려 통과확인을 거쳐야 한다.
우선 철제 문에 장착되어진 시건 뭉치에 지문을 인식시킴과 동시에 출입전용
전자 인식카드를 살짝 갖다 대면 전자음이 울리며 스르르 해제된다.
인식카드를 휴대치 않았을 경우엔 기억하고 있는 비번을 직접 눌러 해제시킨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 집 현관문엔 또하나의 잠금뭉치가 별도로 장착되어 있다.
열쇠를 집어넣어 반바퀴 틀어서 여는 믿음직(?)한 아날로그식 자물통이다.
이렇게 집안에 들어서면 곧바로 현관문은 이중 삼중 잠금모드로 바뀐다.
또하나, 거실 유리창을 열려면 창틀 레일에 설치해 둔 알미늄 바와 창 개폐를 조정하는
장치를 제거해야 비로소 창을 밀어 열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엌쪽 창문과 윗층 방의 창문은 쇠창살로 된
홀딩도어(일명, 자바라)까지 설치해 놓았다. 누가 알면 집에 금송아지를 키우는 줄
알겠으나 유비무환을 철칙으로 여기는 아내 덕분에 우리집은 철옹성처럼 하고 산다.

얼마전 일이다. 퇴근하여 아파트 1층 현관에 막 들어서는데 입주민 몇몇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경비원과 대화하고 있었다.
잠시 귀동냥을 했다. 얘기인 즉, 101동 3층 두 가구에 도둑이 들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관리소장에 따르면 CCTV를 확인해 본 바 지하층 출입문을 통해 들어 왔으며
엘리베이터 내 카메라를 의식해 계단으로 올라간 것 같다고 했다.
수군거림을 듣고서 16층 집으로 곧장 올라가려다 궁금증이 발동해 3층 버튼을 눌렀다.
스르르 문이 열리면서 드러난 두 가구의 철제문은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철제문 잠금장치와 문틀 사이로 배척(일명, 빠루)을 집어 넣어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행히도 며칠 후 도둑은 잡혔고 조사결과도 나왔다.

지하층 출입문은, 드나들때 저절로 닫기도록 설계된 여닫이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손잡이를 당겨 딸깍 소리가 나도록 닫아야 문이 잠겼다.
그러나 대부분 무신경하게 드나들기에 문은 완전히 밀착되어 닫히지 않고 1cm 정도
열려 있는 경우가 잦았다. 이 점을 도둑은 잘 알고 있었을 게다.

또하나, 털린 두 집 공히 별도의 아날로그식 자물통은 없었다.
물론 잠금장치가 하나 더 있다고 해서 문을 못 열진 않는다.
그러나 하나가 더 있음으로 해서 도둑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과 그만큼의 시간이 또
지체되기에 기왕이면 쉬운 쪽을 택하게 된다는 범죄심리학자들의 분석을 들은 적 있다.
입주하자 마자, 창틀에 쇠창살 자바라를 덧 달고 현관 철제문을 뚫어 자물통을 장착하는
아내를 향해 “감옥살이를 자처하냐”며 못마땅해 했었다.

아파트 같은 동 아랫층에 도둑이 든 이 대목에서 아내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게 내 뭐랬어. 만사불여튼튼이라 했잖아”

그렇다. 때가 지난 후에 대책을 세우거나 후회하면 그만큼 약발이 덜 하다.
일이 다 틀어진 후에야 대책을 세우는, 이른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최근 도처에서 눈에 띤다.
그르친 뒤에야 뉘우치는 세상
‘윤창중 파문’으로 망신살이 뻗힌 청와대가 ‘공직기강확립’ 하겠다며 나선 것도,
그르친 뒤에야 뉘우치는 세상
‘남양유업 직원 욕설 파문’으로 사회적 공분이 들끓으며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임직원 인성교육시스템을 재편’하겠다며 허리 굽혀 사과하는 것도,
그르친 뒤에야 뉘우치는 세상
대리점주 자살로 이어진 ‘밀어내기 파문’의 ‘배상면주가’도 미적미적 발뺌하다가
결국엔 ‘잘못된 영업관행을 개선’하겠다며 머리 숙인 것도, 모두가 ‘사후약방문’ 이다.
그르친 뒤에야 뉘우치는 세상
방글라대시에서 봉제공장이 무너져 1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예고된 참사로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한 여론이 들끓으며 봉제경영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게 전개되자, 미국 소싱업체들은 서둘러 불끄기에 나섰다.
하청공장기준을 엄격히 하고 생산과정을 웹사이트 통해 오픈하겠다고 했다.
혹시 튈지 모를 불똥을 피해 보고자 하는, 이 또한 사후약방문이다.

물론 소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러나 잃기 전에 미리 고치는게 백번 낫다.
그런 점에서 미리미리 자물통을 추가하고 쇠창살을 설치해 놓은 아내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