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을 걸치자니 더울 것 같고 홑겹 셔츠만으론 서늘할 것 같다.
입었다 벗었다 넣었다 뺐다...아무튼 아리송한 간절기다.

겨울잠을 깬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낮은 초여름날씨다.
지구촌 곳곳이 이상기온으로 몸살 앓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봄은 겨울과 여름 틈에 끼여 발버둥쳐보지만 역부족이다.
까딱하다간 연초록빛 고운 봄의 산길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성하를 맞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일어 길을 나섰다.

서울을 벗어난지 2시간 40분, 차창밖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잔잔한 물결 위로 쏟아져내린 햇살이 보석처럼 눈부시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 마치 비단 같다는 錦江이다.
금강을 낀 월영산자락에도 연초록의 봄색이 완연했다.

버스가 멈춰선 곳, 산들머리에 키를 훌쩍 넘긴 월영산 표시석이 반긴다.
산 표시석엔 '월영산(月影山, 529m)'이 말쑥하게 음각되어 있다.
달그림자 산이라...
산능선에 걸린 달이 금강에 비친 모습을 떠올리며
월영산 안내판에 표시된 등로를 살핀 후 산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月影(달그림자)山이 맞나? 月迎(달맞이)山이 맞나?
산 표시석엔 月影山으로, 그러나 바로 옆 안내판에는 月迎山으로 표기하고
뜻풀이까지 자세하게 쓰여져 있다.

月迎山의 한자를 풀어보면 '달맞이 산'이다.
이름만으로도 달과 산이 어우러진 한 폭 그림이 연상된다.
금산군 제원면 사람들은 월영산과 성인봉 사이 비들목재를 중심으로,
달이 월영산 쪽으로 기울어 뜨면 풍년이 오고, 성인봉 쪽으로 기울면
흉년이 온다 여기며 정월대보름 달맞이 때 한해 농사를 점쳐 왔다고 한다.

이러니 헷갈릴 수밖에.

금산군청 홈페이지를 방문해 문화관광포털 사이트에 소개된
월영산 소개글을 보다가 또한번 놀랐다.
도드라진 서체로 이렇게 소개해 놓았다.

"전망 좋은 바위산, 월영산-月影山
월영산(月迎山)의 한자 뜻은 '달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影'과 '迎'이 같이 표기되어 있다.

점점 더 헷갈릴 수밖에.

이번엔 금산군청 공원녹지 관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만저만 해서 문의드립니다. 뭐가 맞습니까?"
"......"

당황해 하는 눈치다. 즉답을 피하며 좀 더 알아본 뒤 연락 주겠단다.
몇 시간 후,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여러 향토학자에게 문의해본 바 '月影山'이 맞습니다.
관련 오기 내용은 즉시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괜한 까탈을 부렸나? 담당 공무원을 피곤케 하려 했던 건 결코 아닌데...

각설하고,,

초입부터 등로가 가파르다.
바닥엔 날카롭게 박리된 돌부리가 많아 딛고 오르기가 쉽지않다.
또한 자잘하게 부서진 푸석돌 때문에 미끄럽기까지...
초반부터 체력소진이 장난 아닐듯 싶다.
목구멍이 팍팍해오고 모자챙에 땀방울이 흥건해질 즈음
발아래 금강이 굽어보이는 능선에 닿았다.

금강, 충북  영동 가선리 방면

산기슭을 굽이쳐흐르는 금강의 부드러운 물길에 시선이 멎는다.
금강은 '잠시 쉬었다 가라'며 손짓한다.
전망 좋은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금강의 매력에 빠져든다.

금강의 물길은 승무의 옷자락 곡선처럼 때로는 힘차게 굽이치고
때로는 유연하고 매끄럽게 흘러내린다.

하천이 산지나 고원지대를 흐를 때 침식을 받아 깊은 골짜기를 이루면서
뱀처럼 휘어도는데, 전문용어로 '감입곡류(嵌入曲流)'라 한다.
금강의 감입곡류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을 지나며 절정에 달한다.

금강, 충남 금산 천내리 방면

금강의 매력에 빠져든 사이, 일행들이 모두 앞질러 가버렸다.
찬스다. 사주경계 후 잽싸게 영역표시를 했다. 한결 가뿐하다.
일행이 여럿일 때 맨 꼴찌로 쳐지면 괜스레 쫓기는 기분이다.
앞선 일행의 꼬리를 잡기 위해 잰걸음으로 숨가쁘게 걸었다.
저만치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月影山 529m'라 새겨진 시커먼 오석 앞에 무리지어 인증샷 삼매경에
빠져 있는 일행들의 꼬리를 물었다.
산 정보에 의하면, 표시와 달리 이곳은 503m의 서봉이란다.

서봉에 서니 천길 벼랑이 금강으로 내리꽂히고
강 건너 천태산의 산세도 장쾌하게 눈에 든다.

서봉을 뒤로 하고 암봉에 걸린 밧줄을 잡고 내려섰다.
능선을 따라 좀 더 진행하면 삼각점이 박힌 봉우리에 닿는다.
이곳이 529m의 월영산 주봉인 상봉이란다.
그런데 왜? 더 낮은 서봉에 정상을 내어주고 초라하게
나앉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다시 주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다가 성인봉 못미쳐
너른 안부를 발견, 배낭을 내렸다.
십시일반으로 꺼내 놓은 먹을거리가 성찬이다.

불콰해진 얼굴로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한결 넉넉해진 느낌이다. 역시 순대가 차야 여유도 생기는 법.
괜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겠나?
산새소리가 좋은 숲길을 따라 유유자적, '성인봉'에 닿았다.

성인봉(聖人峰)은 울릉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뭍에도 있었다.
한자 표기도 똑같다. 울릉도 성인봉은 아직 오르지 못했다.
일단은 꿩 대신 닭이다.

정상석에 표시된 봉우리 높이는 624m다.
그렇다면 월영산 주봉 보다 95m나 더 높단 것인데, 글쎄다.
많은 산꾼들이 고갤 갸우뚱하는 걸로 보아 오기일 듯 싶다.

산길은 성인봉에 이르러 정동쪽으로 꺾어지면서 차갑재로 내려선다.
차갑재에서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말갈기능선으로 이어져
갈기산을 일으켜 세운 다음, 또다시 북서쪽으로 틀어 금강으로 내리꽂힌다.
이렇듯 산길은 월영산, 성인봉, 갈기산을 거쳐 날머리까지 U자를 이룬다.
월영산과 갈기산을 잇는 안부, 차갑재에서 말갈기능선을 버리고
왼쪽 소골계곡으로 내려섰다.

날머리인 소골 주차장까지는 계곡을 따라 4.1km를 걸어야 한다.
휘적휘적 걷다가, 바위턱에 걸터 앉아 계곡물에 발 담그니
사바의 온갖 시름이 단박에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갈기산 걸음을 접은 아쉬움은 새소리와 물소리가 달래주고...

계곡을 벗어나 소골 주차장에 이르자, 산행 후의 치명적 즐거움(?)이
침샘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월영산 안내판에서 시작, 차갑고개에서 소골계곡(핑크라인)으로 하산...

원골 월영산 안내판-서봉-월영산-성인봉-차갑재-소골계곡-소골주차장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