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본 고베에 다녀왔다.

고베시는 일본 서부 최대 도시인 오사카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1800년대 후반 일본에서 가장 먼저 서양에 개항을 한 도시여서 사람들의 성향이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다.

일본에서 젊은 신혼 부부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3대 도시에 들어갈 정도로 고베시는 풍광이 아름답고 사회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고베와 함께 삿포로, 센다이 등이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3대 지방 도시로 꼽힌다.

기자는 정확이 10년 전인 2001년 12월1일 해외 연수를 하기 위해 고베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고베 류츠대학(유통과학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어 비지팅 펠로우십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고베는 1995년 한신대지진(오사카와 고베에서 일어난 대지진)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분위기가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도시 곳곳에 지진 잔해가 남아 있었다. 일본어 회화도 제대로 못해 슈퍼에서 물건사기가 겁이 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르곤 한다.

첫 일본 생활을 회상하면서 당시 살았던 동네를 찾아가봤다. 기차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시에서 운영하는 시영 주택이다. 20평 정도의 조그마한 일본집은 변함 없이 그대로 였다. 구멍가게, 이발소, 목욕탕, 찻집, 동네 도서관 등 모든 것이 1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본의 지방 도시, 특히 주택가에 들어가보면 시간이 멈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도 도쿄에 살 때도 자주 느꼈던 감정이다. 일본에 갈 때마다 일본은 아직도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가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신세를 졌던 재일교포와 일본인 교수들과 이틀 연속 만나면서도 그런 느낌이 또 들었다. 이들과 술을 먹으면서 일본의 소니가, 도요타가 한국의 삼성에, 현대차에 ‘마케마시다(졌습니다)’라고 연방 칭찬을 들어야 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한국 기업과 한국인을 치켜세웠다.

한편으론 가슴이 뿌듯했고, 또 한편에선 쓸쓸했다. 우리가 그토록 앞서가고 싶었던 일본과의 경쟁에서 많은 부문에서 따라가거나 앞서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로,,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주위의 친인척, 지인,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한다. 원인은 무엇일까?

시간이 너무 늦게 가는 일본 사람과 비교해 너무 빠르게 앞만 보면서 달려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우리도 외형 지상주의, 목표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도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돌아가신 법정스님 말씀처럼 다른 사람과 너무 비교하면서 살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느리게 가는 나라, 한번쯤은 뒤도 돌아보고 정체(때론 후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않는 이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묘약’은 없을 것이다. 10년 전 살았던 옛 동네를 찾아본 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불황이 이어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경제와 정치를 살릴 ‘신비의 묘약’이 아니다. 그런 처방전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정답은 20년째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의 인내심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3월 사상 초유의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살고 있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