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람없다. 무람없어』

요즘 현대인들에게 점점 없어지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편지이다. 물론 편지를 쓰기는 쓰겠지만 주로 카톡이나 이메일로 쓴다. 그것도 많이 쓰지를 못한다. 편지는 서로 소통하는 사람간의 속마음을 오롯이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손 편지를 고스란히 남겨, 그 때 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글들이 있다. 선비들의 글들인 문집이다. 그런 문집가운데 편지, 즉 서간 또는 간찰. 척독이란 것이 있다. 선비들의 편지를 읽다가 연암 박지원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 우선 글을 보자.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 마다 먹으면 좋을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보내는 물건 포 세 첩, 곶감 두 첩. 장 볶이 한 상자. 고추장 한 단지”. 다음 편지를 보자.“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 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 간에 반찬으로 하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 첩이나 장조림 따위의 반찬보다 나은 것 같더라.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 하겠다”.

위 글은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인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에서 인용했다. 이 글을 읽다가 무람없다 라는 단어를 몰라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 뜻은 이렇다.‘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없다’이다. 아버지 연암 박지원은 고을 수령이 되어 객지로 나가 살면서 아들에게 직접 담근 고추장 단지를 보내고 은근히 “아버지 고추장 잘 먹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쩌면 그렇게 고추장 담그는 손맛이 일품입니까? 고추장 잘 먹고 다 떨어지면 다음에 또 담아 주세요.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기대를 했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들은 잘 받았는지, 잘 먹고 있는지, 맛이 좋은지 나쁜지 전혀 대답이 없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람없다 한다. 아버지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서운한 아버지의 마음, 어쩌면 아들 너는 그렇게 예의를 지키지 못하느냐고 나무라는 투의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버지인 하나님과 자녀인 우리 성도가 오버랩이 되었다. 아마도 하나님 아버지 역시 우리들을 향해 수백, 수천 번 무람없다 무람없어 라고 하지 않을까? 어떤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감사이다.’ 맞는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도 주거나 보냈으면 잘 받았는지 어떤지 반응을 기다리는 것인데,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주어도 너무 많이 주셨다. 우리가 한번 헤아려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안 받은 것이 없을 만큼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수도 없이 받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무람없다 무람없어 라고 서운해 하지는 않는가? 무람없다. 라고 나무라지는 않는가?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의 차이점 중 하나는 동양 사람은 표현을 잘 안한다고 한다. 마음에 묻어 두고 있으면 되었지, 구지 입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냐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다보면 그렇지 않다.표현을 해야 한다.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몇 가지가 있다. 그러나 흔히 두 가지이다.하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글이다. 조선시대에는 말로 표현하려면 직접 만나지 않는 한 어렵다. 통신전달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글이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연암 박지원은 아들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맛있게 담그셨습니까?’그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편지를 통 해서. 그런데 그것이 안 되었기에 무람없다고 꾸중하였다.

오늘 우리들은 어떤가? 아버지 하나님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은혜를 주십니까?’ 를 표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무람없다 무람없어’ 라는 소리를 듣는 자는 혹시 아닌가?

고병국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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