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걸을까 혼자 걷기

“평화롭게 걸으세요.

행복하게 걸으세요.

.......

걷는 매 순간마다 평화의 감촉을 느껴보세요.

걷는 매 순간마다 행복의 감촉을 느껴보세요.

.......

당신의 발바닥으로 대지에 키스하세요.

대지에 사랑과 행복의 자국을 남겨주세요.” (탁닛한의 걷기명상 중에서)

걷기에 좋은 신발, 그 것도 신발의 느낌을 최대한 제거하고 맨발로 걷는 것처럼 발바닥의 감각을 최대한 살리는 신발을 파는 장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많이 걸으려고 한다. 걸어도 그냥 걷는 게 아니라 걸음 걸음마다 신발과 발바닥의 느낌 사이의 어떤 고리를 찾으면서 걸으려고 한다. 그 감각을 찾기 위해서 그냥 걸을 때도 있지만, 걷는 의미, 내 신발이 건강과 삶에 주는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이제까지는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 위한 수단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부러 산길을 걷는다거나, 도심의 새로운 것을 찾아서 걷는 것은 또 일상적인 걷기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기’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여행’이나 ‘건강’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탁닛한의 책들은 ‘걸으면서 명상을 하는 내용’이다. 일종을 ‘걸으면서 도 닦기’이다. 이 책을 처음펴면서 ‘아, 내가 찾던 책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책은 동대문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꾸준히 봐야 할 책이라 샀다.

걷기명상은 걸으면서 하는 명상이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편안하게 걷다보면, 마음 속 깊은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탁닛한 스님에 의하면 걷기명상의 주된 목적은 걷는 경험을 온전하게 만끽하는 데 있다고 한다. 우리는 늘 걷지만 우리의 걸음은 쫓기듯이 거의 뛰는 것에 가깝다. 우리의 걸음은 종종 불안과 슬픔의 무거운 짐에 눌려 있곤 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편안마음으로 걷고자 할 때 걸음은 평화와 기쁨, 그리고 조화의 신선한 미풍을 만들어 낸다.

다비드 드 브르통은 그의 책 ‘걷기 예찬’에서 “바쁜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가로이 걷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시간과 장소의 향유인 보행은 현대성으로부터의 도피요 비웃음이다. 걷기는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삶속에서 질러가는 지름길이요 거리를 유지하기에 알맞은 방식이다” 라고 한다. 나 역시 이 말에 동감한다. 나도 느긋하게 걸으면서 주위를 돌아보는 걷기를 좋아한다.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 난 그게 좋다.

언젠가 팔당역에서 운길산역까지 철길을 따라 걸었던 적이 있다. 그 날은 걷기에 참 좋은 날씨였던데다가 주변 풍광도 좋았다. 게다가 강변을 따라 이어진 철길을 걸을 때는 모든 것이 환했다. 그리고 한강의 물이 반짝거리는 멋진 강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철길에 카메라를 바짝 놓고 그 끝없이 이어지는 길의 의미를 찾으려고도 했다. 그 날 내가 걸은 철길은 9킬로 남짓으로, 자전거로 30여 분,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 채 10분이면 될 길을 5시간 동안 걷다가 먹다가 쉬다가 하면서 즐겼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 개념이 없는 행위이다.

철길위도 걸어보았다. 맨 땅을 걷는 것도 기적이라고 하는데, 철길을 걷기는 더 힘들었다. 브르통은 ‘걷기는 언제나 미완상태에 있는 실존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불균형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보행자는 규칙적 리듬으로 바로 앞서의 운동에 그와 상반되는 또 하나의 운동을 즉시 연속시켜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을 때마다 항상 불안정한 상태가 출현하면서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발한다. 요컨대 너무 빨리 걷거나 너무 천천히 걸으면 단절이 생길 수 있으므로 우리는 먼저 발걸음에 다음 발걸음이 적절히 따르도록 조화를 기해야만 비로소 잘 걸을 수있게 된다.’ 는 말이 실감이 났다.

혼자 걷기는 걷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바를 모두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혼자걷기의 장점은 동행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몰입하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라무르의 ‘걷기철학’에서 ‘걷기는 사유를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활발하게 한다’고 했다. 걸음은 여행의 공간뿐만 아니라 명상의 공간까지도 열어젖힌다. 아름다움, 침묵, 그리고 느림에 다다른 정신은 숨을 고르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들과 다시 조우한다.

걷기명상이라는 말이 있다. 걷기 명상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며 내가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쉽고도 간단한 일이다. 산이든, 숲이든, 도시 한복판이든 상관없다. 이제까지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두 어번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안의 나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눈을 떠보자. 그러면 조금 전까지 부산스럽게 지나가던 사람들, 차들의 속도가 느려진 것처럼 보인다. 느려진 세상을 바라보며 코로 심호흡을 천천히 깊게 한다. 걷기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코로 호흡하기를 권한다.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은 바쁘게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할 때이지만, 몸과 마음을 흥분시킨다. 의식적으로 코를 통해서 세상의 기운을 받아들이려고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코숨이 된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다. 한 발 두 발, 발을 땅에서 띠고 발을 다시 땅에 붙이고를 반복하며 발과 땅 사이의 접촉을 느껴본다. 두 다리의 움직임과 코숨의 리듬이 맞춰지며 편한 속도의 걸음이 된다.

우선은 걷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하며 걷는 데만 집중해보자. 그럼 마치 세상이 조용해지면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제 걸을 주위를 돌아보자. 다행히도 걷는 동안에는 풍경이 꾸준히 변한다. 지루하거나 힘이 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걸을 때 보거나 보이는 사람들, 자동차, 가로수, 거리의 간판들이 그저 스쳐지나가지 않고 선명하게 보이는 사물이 있다. 그럴 땐 "왜 저럴까?" 하는 의문도 가져보며 지나가보자. 이렇게 걸으면서 숙고하는 명상은 전 인류의 역사를 거쳐서 많은 철학자들이 사색하는 방법으로 즐겨 사용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동양의 철학자들은 걷는 것 자체를 명상으로 생각했다면, 서양의 철학자들은 사색하기 위하여 걸었다는 차이일 뿐이다.

혼자걷기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있다. 그리고 내 호흡을 내 발에 맞추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리드미컬하게 발 뒤꿈치, 발바닥, 발 앞볼 그리고 발가락의 순서대로 대지에 닿는 느낌에 집중해보자. 이렇게 걷기 명상을 하다보면 잡념이 생겼다 사라지는 무수한 과정이 반복되고, 어느 순간 내가 고민했던 일에 대한 ‘어떤 퍼뜩’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 순간의 쾌감 때문에 현인들은 걷기를 즐겨했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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