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 영화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수도사들의 침묵이 마치 그들의 언어처럼 들리는 착각에 빠졌다. 침묵은 말에 속하며 그 침묵을 통해서 말은 건축으로 나아간다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리고 건축은 말 속에서 함께 침묵되며, 따라서 고독하지 않다고 단언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도사들의 침묵은 바로 그들 영혼이 건네는 언어였고, 그들이 기거하는 공간의 형식은 그들 영혼의 존재 방식이었다. 그들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이 그의 오래된 몸에 철저히 배어 있었다. 이를 보면 가진 게 엄청나게 많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의 모든 것에 하나의 일관된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평화”였다

살을 에는 듯한 알프스의 겨울 추위로 떠는 모습에는 애처로움을 금할 수 없지만, 한 달에 한 번 주어지는 외출 때 모두 눈밭에서 미끄러지며 웃는 천진난만한 모습에 나는 얼마나 위로 받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순진함이 더 슬퍼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행복은 그들의 행복에 비하면 너무도 얇고 희미하며 헛되다는 것을 영화가 끝나면서 서서히 알게 된다.

영화에는 이 문구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가진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뮤지엄 숍에 있는 <위대한 침묵>DVD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듣는 것이 시작되며, 언어가 사라질 때에만 보는 것이 시작된다.”

승효상 선생님의 수도원 순례기  “묵상” 중에서

위 글을 읽으며, 유럽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가졌던 침묵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나의 삶에 오늘 배운 침묵의 의미를 심을 시간이다.

조민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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