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어디를 걸을까 역사를 찾아서 걷기

역사를 찾아서 걷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에 역사를 더하는 역사적 행위이다.

걷는 행위가 물건을 가지고 이 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행위, 더 높은 지위와 특권을 누리면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노예와 서민에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라고 강제된 행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때 자발적인 의지로 걸어가기는 인간이 드물게 하는 행위가 되었다. 걷기가 강제적이고 노동에서 자발적이고 쾌락이 되기까지는 무려 300여 만 년이 걸렸다.

인류는 300여 만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약 2000년 전 인간은 불을 이용해서 청동기를 만들고, 문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역사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무도 흔쾌하게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역사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리 주위에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하늘 높이 쌓여있기도 하며, 우리 뱃속에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생겨나서 자유롭게 걷는데 300만 년이 걸렸고, 이 땅에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우고 역사를 시작한 지 4353년이 되었다. 역사적인 행위로 역사적인 유물과 조상들을 만나는 역사 찾아 걷기야 말로 역사에 역사를 더한 역사적 행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역사적 행위는 혼자 해도 좋지만 여럿이 하면 더 좋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는 삼남대로 영남대로 강화대로 그리고 의주대로를 걸으면서 시작했다. 1년 반에 걸쳐서 삼남대로는 과천 남태령에서 천안까지, 영남대로는 청계산에서 안성까지, 의주대로는 구파발에서 파주까지 그리고 강화도까지 걸었다. 장사하는 관계로 끝까지 그 길들의 끝까지 걷지는 못하고 서울에서 당일치기할 수 있는 거리만을 걸었다. 대략 거리로 치면 하루에 10-20킬로미터 정도씩 1주에 한 번을 대략적인 주기로 하여 약 1년 반에 걸쳐서 계속하였다. 이때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것, 지방의 어려움과 변화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그 감흥을 블로그에 적어 놓았고, 때때로 다시 보면서 이 책을 쓰는 것처럼 글감으로 쓰기도 하고 있다.

삼남대로는 서울 남대문에서 시작하여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삼남지방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에는 동작진-천안-통영으로 가는 통영로와 동작진-천안-해남·제주로 가는 해남로가 있는데, 동작진에서 천안까지를 삼남대로라 한다. 조선시대 육로 교통의 중심축이었던 삼남대로는 선비들이 과거길이었고,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이 이 길을 통해 유통되었다. 특히 이 길은 춘향전에 이몽룡이 서울과 남원을 오간 길이기도 하다. 삼남대로 평택 구간에는 ‘춘향이 길’로 불리는 옛길이 있다. 비전동 배다리 저수지에서 죽백동 3통으로 넘어가는 ‘재빼기 구간’이 그것이다. 이 구간을 지나갈 때는 같이 동행했던 분이 춘향가를 구성지게 불러서 기분이 한껏 고취되기도 하였다. 오산의 독산성길에서는 독산성에 올라 오산시 전체를 조망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쌀로 말을 씻기는 일명 ‘세마병법’의 지혜로 왜군을 물리쳤던 기록이 남아 있다. 서울-수원 구간은 거의 전 구간마다 정조의 수원행차에 대한 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만일 정조가 없었다면 수원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차를 타고 경부선을 지날 때마다 그때 걸었던 길들이 보이기 때문에 아주 정겨운 추억으로 남는다.

영남대로 동래(오늘날의 부산광역시)로 가는 길이라 하여 '동래로(東萊路)'라고도 하였다. 한양의 남대문에서 출발해 문경새재를 넘는 중로(中路)를 택하면, 용인~안성~충주~문경~상주~칠곡~대구~청도~밀양~양산~동래까지 걸어서 15~16일이 걸렸다고 한다. 이 구간 중에서 나는 청계산에서 안성까지 8번에 나누어서 걸었다. 이 구간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양지사거리-은이성지-용인 백암까지 구간이었는데, 미세먼지가 짙은 안개처럼 길을 감추었던 데다가 중간에 식사할 만한 식당마저 없어서 점심을 굶어가며 걸었다.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에 대하여는 특이하게 일본인 사학자가 걸은 책이 있다. 도도로기 히로시가 지은 영남대로 답사기와 삼남대로 답사기이다. 파발마가 지나고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걷고 묵던 그 옛길의 흔적을 쫓아, 때로는 논밭 속으로 사라지고 풀숲으로 변하고 고속도로에 파묻혀 버린 옛길을 걸으며 도도로키는 하나하나 우리의 문화, 역사, 지리를 복원해 간다. 그가 쓴 이 두 권은 이 책에는 풍부한 자료 사진과 함께 출판사에서 직접 제작하여 대한측량협회의 심사필을 받은 지도가 삼남대로 복원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이처럼 역사를 따라서 걸을 수 있는 길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서울 한양도성길(19.4km), 이순신 백의종군길(676km), 조선 통신사 옛길 (1,131km), 다산길 (111km) 등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얼마 전에 친구들과 ‘문화순례 모임’을 만들었다. 서울과 서울 근교의 문화를 찾아가며 의미를 새겨보는 모임이다. 마침 동국대에서 불교학 강의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이런 역사 문화 모임에 많이 초빙되기도 한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같이 성북구 보문동, 미타사, 청룡사로 해서 동묘를 걸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가 없었다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유물들을 보고, 보문사의 석굴암에 직접 들어가 보기도 하였다. 보문사에는 여러 번 가보기는 하였지만, 석굴암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동행중에는 건축 전공, 토목을 전공한 친구들이 있어서 옛날 건축물들의 시대적 구조의 차이와 건축 원리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렇게 걸으면서 이어녕 교수님이 쓰신 책 ‘한국인 이야기’에서 국토 걷기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대학생들의 국토 대장정을 앞두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쓴 문구가 생각난다. “(국토를 걷는 것은)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어낸 생명체들의 생사 끝없는 순환을 되풀이하면서, 이 땅의 흙을 만들어내는 역사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국토를 걷는다는 것은 이 슬프고 장엄한 과거를 통해 희망의 미래를 읽는 ‘흙의 독서’행위입니다. ...... 걷는다는 것은 내가 자유로운 인간이요, 한국인이라는 것을 지구 위에 새기는 황홀한 도전인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역사 답사를 하며 어렴풋이 궁금했던 의문이 풀렸다. 왜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낯선 길을 걸으며 과거의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헤매야 하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역사 답사를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대하여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의 말이 진실임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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