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이웃집 아가씨, 소현

이웃집 아가씨



소현



얼굴이 예쁜


이웃집 아가씨


시집도 안 갔는데


벌써 엄마 되었나 봐


푸들 데리고 산책 나와선


자길 자꾸 엄마라고 부르네



[태헌의 한역]


隣家女(인가녀)



韶顔隣家女(소안인가녀)


未嫁已爲母(미가이위모)


率犬出散步(솔견출산보)


稱己曰阿母(칭기왈아모)



[주석]


* 隣家女(인가녀) : 이웃집 여자, 이웃집 아가씨.


韶顔(소안) : 예쁜 얼굴. 보통 젊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未嫁(미가) : 아직 시집을 가지 않다. / 已(이) : 이미, 벌써. / 爲母(위모) : 어미가 되다.


率犬(솔견) : 강아지를 거느리다, 강아지를 데리고. 원시의 ‘푸들’을 역자는 그냥 ‘犬’으로 한역하였다. / 出散步(출산보) : 산보를 나오다, 나와서 산보하다.


稱己(칭기) : 자기를 일컫다, 자기를 칭하다. / 曰阿母(왈아모) : ‘엄마’라고 하다.



[한역의 직역]


이웃집 아가씨



얼굴이 예쁜 이웃집 아가씨


시집도 안 가 벌써 엄마 됐나


강아지 데리고 산보 나와선


자길 칭해 엄마라고 한다네



[한역 노트]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역자는 디카시(詩)를 준비해보았다. 요즘 사람들이 편폭이 긴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디카시가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디카시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완성도를 더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 속의 주인공 아가씨 얼굴이 예쁘다는 것이 글쓴이가 알고 있는 주관적인 정보라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다는 것은 객관적인 정보이다. 그런데 불쑥 “벌써 엄마 되었나 봐”라는 뜻밖의 말을 후속(後續)시켜 독자들의 궁금증이 갑자기 증폭되게 하였다.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가씨가 무슨 사고라도 쳤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아래 2행에서 다소 능청스런 반전을 설정하여 시를 읽는 이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하였다. 이 시의 재미는 바로 이 반전에 있다.


시 속의 아가씨는 다른 가족 없이 혼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가족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 가족이 누구든 미혼인 아가씨가 사용하는 엄마라는 호칭에 대해 쉽사리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추측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호칭 사용 문제만큼은 혼자일 때가 가장 자유롭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자기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에게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하는 것이 글쓴이에게는 상당히 의외로 여겨졌을 것이고, 그 의외성이 바로 이 시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역자가 보기에 애완용 동물을 키우는 이는 정이 많은 사람이거나 정이 그리운 사람이다. 그리고 동물을 먹이고 산보도 시키고 목욕도 시키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또한 집안에 날리거나 옷에 달라붙는 짐승의 털과 그 짐승의 배설물 냄새 등을 충분히 각오할 수 있을 정도로 인내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역자의 친구 하나는 애완동물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인간 소외의 한 표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한다. 역자는 그 친구의 말을 곱씹어보면서 인간 소외의 원인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람 개개인은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외롭고 정이 그리운 존재인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세상은 또 왜 그리 비정하고 삭막한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눈만 뜨면 벌어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까? 역자는 세상은 온통 의문부호라는 생각을 하다가, 인생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노여움이든 즐거움이든 감탄부호로 귀결된다는 생각까지 해보면서 불현듯 아래와 같은 시 한 수를 지어보았다.


把杯(파배)                      술잔 잡고서


世上疑問號(세상의문호)   세상은 의문부호


人生嗟歎詞(인생차탄사)   인생은 감탄사!


事或非如意(사혹비여의)   일이 혹 뜻 같지 않으면


把杯笑最宜(파배소최의)   술잔 잡고 웃는 게 최고


허허로운 세상을 술로 덮어 잊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시 속의 아가씨처럼 강아지라도 키우면서 작은 따스함이나마 만들어가는 것이, 이 소외의 시대 한 가운데를 가야하는 고독한 나그네에게 하나의 방법론이 될 듯도 하다.


역자는 연 구분 없이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4구의 오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이 한역시는 짝수 구에 같은 글자 ‘母(모)’로 압운하였다.


2020. 12. 8.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