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당신에게 말 걸기, 나호열

당신에게 말 걸기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태헌의 한역]


攀話於君(반화어군)



此世無醜英(차세무추영)


亦無帶怒花(역무대노화)


有香因香麗(유향인향려)


有形緣形嘉(유형연형가)


弓腰又屈膝(궁요우굴슬)


埋心土肉裏(매심토육리)


天下許多榮(천하허다영)


悉皆休且美(실개휴차미)


君或不識此(군혹불식차)


吾人薄君傍(오인박군방)


吾君於吾何(오군어오하)


丁寧爲姸芳(정녕위연방)



[주석]


* 攀話(반화) : 말을 걸다. / 於君(어군) : 그대에게, 당신에게.


此世(차세) : 이 세상. / 無醜英(무추영) : 추한 꽃이 없다, 못난 꽃이 없다.


亦無(역무) : 또한 ~이 없다. / 帶怒花(대노화) : 노기를 띤 꽃, 화난 꽃.


有香(유향) : 향기가 있다. / 因香麗(인향려) : 향기로 인하여 예쁘다.


有形(유형) : 모양이 있다, 모양새가 있다. / 緣形嘉(연형가) : 모양(새)로 인하여 예쁘다.


弓腰(궁요) : 허리를 굽히다. / 又(우) : 또, 또한. / 屈膝(굴슬) : 무릎을 꿇다.


埋心(매심) : 마음을 묻다. / 土肉裏(토육리) : 흙 속, 흙 속에. ‘土肉’은 흙을 가리키는 말이다.


天下(천하) : 천하, 온 세상. / 許多(허다) : 허다하다, 많다. / 榮(영) : 꽃.


悉皆(실개) : 모두, 다. / 休且美(휴차미) : 아름답다, 예쁘다. 여기서 ‘休’와 ‘美’는 모두 아름답다는 뜻이다.


君(군) : 그대, 당신. / 或(혹) : 혹시, 어쩌면. / 不識此(불식차) : 이를 알지 못하다.


吾人(오인) : 나. / 薄(박) : ~에 다가가다. / 君傍(군방) : 그대 곁.


吾君(오군) : 그대, 당신. / 於吾何(어오하) : 나에게 무엇일까?


丁寧(정녕) : 틀림없이, 참으로. / 爲(위) : ~이다. / 姸芳(연방) : 예쁜 꽃.



[한역의 직역]


당신에게 말 걸기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또한 노기를 띤 꽃도 없다


향기 있어 향기로 인해 예쁘고


모양 있어 모양으로 인해 예쁘다


허리 굽히고 또 무릎도 꿇고


흙속에 마음을 묻나니


천하에 허다한 꽃은


모두 다 예쁘다


그대가 혹 이를 모를까 해서


내 그대 곁으로 다가가나니


그대는 내게 무엇일까?


참으로 예쁜 꽃!



[한역 노트]


이 시는 제목으로 살피자면 시 본문 전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말, 곧 거는 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모종의 일로 다툰 뒤의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면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버려 속상해 하며 의기소침해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 마음을 달래고자 말을 건네는 상황으로 보는 것이 아무래도 더 무난할 듯하다. 이 시의 주지(主旨)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당신은 여전히 예쁜 꽃”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여도 저마다 안으로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는 꽃이 꽃으로 피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고통을 얘기한 것이지 비굴함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 흙속에 묻은 마음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Synchronized Swimming)이라는 스포츠를 보면 수면 위의 손동작은 정말이지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지만, <주로> 수면 아래의 발동작은 그 애쓰는 모습이 보기에 애처로울 정도일 때가 많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 스포츠가 꽃이 꽃으로 피는 원리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세상의 어느 꽃이든 거저 꽃이 되는 경우는 없다. 꽃이 꽃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것이 아픔이라면, 세상의 모든 꽃은 피어났기 때문에 아름답다. ‘당신’ 또한 꽃이므로 역시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것을 잘 모르는 듯하다. 그리하여 내가 이 얘기를 ‘당신’에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젊거나 어린 아이들이 꽃으로 간주되는 일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누구에게나 꽃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꽃으로 인식되는 데는, 아무리 제 눈에 안경이고 콩깍지라 하더라도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사자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든 없든 간에…… 눈앞에 보석이 있어도 그냥 돌로 여기고, 발밑에 산삼이 있어도 그냥 풀로 여기게 되는 까닭은, 사람 눈에는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의 크기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꽃으로 보는 것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 말을 건 ‘당신’은 적어도 젊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원시의 1행과 2행을 통해 ‘당신’이 스스로를 못나 하고 화가 난다고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정황으로 살피자면, 최소한 중년 정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젊다고 다 청춘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은 그의 대표작 <청춘>에서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고,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일 수 있다고 하였다. 일찍이 홍해리 시인도 <예송리 동백숲>이라는 시에서 “나이 들어도 젊은 여자들”과 “젊어도 늙은 사내들”을 대비시킨 적이 있다. 자기의 모습을 빛나게 하고 자기의 향기를 뿜는다면 청춘이고 꽃인 것이지 나이가 도대체 무슨 대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시인은 ‘당신’을 여전히 ‘참, 예쁜 꽃’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역자는 12행의 원시를 12구의 오언고시로 한역(漢譯)하였다. 그러나 모든 행이 각기 한 구(句)로 한역이 된 것은 아니다. 원시의 3~5행을 묶어 2구로, 6과 7행을 묶어 1구로, 9행과 12행은 각기 2구로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시에 없는 내용이 일부 보태지지기도 하였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지만 4구마다 운을 바꾸었으며, 그 압운자는 ‘花(화)’·‘嘉(가)’, ‘裏(리)’·‘美(미)’, ‘傍(방)’·‘芳(방)’이다.


2020. 10. 13.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