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가장 지리적으로 가까운 외국은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만큼 한국인들로부터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나라도 드물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처해진 입장에 따라 ‘일본’을 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갈린다.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고조된 ‘한류 열기’로 인해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호의적 평가도 늘고 있다.

올 3월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과 일본인들을 평가하는 시각도 크게 다르다. 잇따른 여진과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에도 차분한 일본인을 훌륭하게 보는 사람도 많다. 반면 정부의 태만한 지원 시스템에 화를 내지도 않는 일본인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많다. 과연 어느 쪽이 진짜 ‘일본인’일까.

일본에서 현장 취재를 하고 있는 한국 특파원들도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놓는다. 필자와도 일본에서 같은 시기에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두 민완 기자가 최근 돋보이는 일본 관련 칼럼을 썼다. 오랜 일본 경험을 통해 국내 언론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일본통’ 두 기자의 글이 매우 흥미롭다. 꼭 한번 필독을 권하고 싶다.

여러 분은 어느 시각에 점수를 줄지 궁금하다. 필자의 견해는 글 뒤에 붙인다.

◆중앙일보 김현기 도쿄특파원(7월26일)

며칠째 기분이 영 개운치 않다. 3주 전 모처럼 가족이 외출해 먹은 쇠고기가 주범이다. 당시만 해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이른바 ‘세슘 쇠고기’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을 때다. 하지만 일종의 직업병이 작동했다. 음식점에 들어가면서 가족들 몰래 종업원에게 물었다. “여기 쇠고기 어디산이에요.” “네, 니가타(新潟)산입니다.” 그 말에 안심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 200㎞가량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얘들아, 많이 먹어라.” 그날 가족 모두 배부르게 니가타산 쇠고기를 먹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후쿠시마산 쇠고기에서 세슘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별로 놀라진 않았다. 후쿠시마현만의 일이거니 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충격이었다. 후쿠시마 인근 미야기(宮城)현, 야마가타(山形)현으로 번지더니 드디어는 니가타현 이름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니가타현 소 일부가 세슘에 오염된 후쿠시마산 볏짚을 사료로 먹었고, 도쿄 등 10개 광역 지자체에 유통됐다”고 한다. ‘후쿠시마 쇠고기’는 피해 갔지만 ‘후쿠시마 볏짚’에 당할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 가족들에겐 말도 못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볏짚보다 분통이 터졌던 건 일본 정부의 대응이었다. 일 정부는 세슘 오염 최대 허용치를 쇠고기 ㎏당 500베크렐로 정했다. 독일 등 유럽 국가(성인 8베크렐, 어린이 4베크렐)에 비해 무려 62~125배나 높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이번 ‘세슘 쇠고기’에선 최고 4350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 무릎 꿇고 국민 앞에 사죄해도 시원치 않을 일이다. 그런데 일 정부는 고자세다. “장기간 계속 세슘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원전 주변 볏짚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근데 더 이상한 게 있다. 바로 일본 국민이다. 음식점·수퍼마켓·급식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자녀 입에 세슘 쇠고기가 들어갔는데도 도대체 화를 내지 않는다. 전국 언론사 사이트를 죄다 검색해 봤지만 축산농가나 소비자들의 데모가 있었다는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쯤 되면 비정상이라기보다 비상식적이다.

돌이켜보면 재해지역 쓰레기더미를 치우겠다고 예산을 잔뜩 잡아놓고도 5개월이 다 되도록 실제 예산 집행이 7%에 불과한 것, 모금된 성금이 이재민에게 20%도 채 전달이 되지 않고 있는 것도 원인은 같다. 국민이 “이건 잘못됐다”고 화를 내지 않으니 정부가 태만하고 멋대로 은폐하는 것이다. 그래도 꾹 참고 정부 하라는 대로 절전 열심히 하며 땀 흘리는 일본인들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다. 일 정부가 대한항공 이용 금지와 같은 몰상식한 일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견제장치가 작동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다.

실체도 없는 광우병 쇠고기에 흥분해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던 한국 국민도 거듭 각성해야 하지만 실체가 분명한 세슘 쇠고기를 먹고도 쥐 죽은 듯 조용한 일본 국민은 더 큰 문제다. “일본인 여러분. 화 좀 내세요.”

◆조선일보 선우정 산업부 차장(7월 27일자)

지난 18일부터 사흘 동안 일본 후쿠시마를 취재했다. 3·11 일본대지진 당시 피해 현장에서 취재하다가 원전(原電)이 연쇄 폭발하면서 피해 나온 이후 4개월 만이었다. 그때 도쿄로 가는 국도가 한산해 놀란 기억이 있다. 도시의 방사선량이 정상을 훨씬 넘은 상황인데도 밖으로 나가는 도로는 정체되지 않았다. 석유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3∼4시간 기다리면 피난에 필요한 석유를 구할 수 있었다. 기자 역시 그렇게 석유를 구해 후쿠시마를 떠났다.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일본인은 정확한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그래. 정부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길은 곧 피난차들로 마비되겠지.” 외국에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체르노빌 수준이라고 평가할 때였다. 일본 정부는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귀국 직후, 일본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지진과 쓰나미 피해는 복구할 수 있지만, 원전 위기는 큰 혼란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말했다. 기자가 떠나올 때 원전에서 50㎞ 정도 떨어진 후쿠시마시(市)의 대기 중 방사선량은 시간당 18마이크로시버트(μSv)였다. 사흘이면 평상시 기준 1년 허용량을 넘었다. 이런 상황을 인내할 수 있을까? 도쿄로 밀려드는 피난민들의 소요까지 상상했다.

하지만 이런 예측은 틀렸다. 그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잘했기 때문일까? 오염수 방류와 오염 쇠고기 파문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버릇처럼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일어난 광우병 파동을 연상했다. 보이지 않는 공포란 점에서 비슷한 듯했다.

19일 후쿠시마시에서 출발해 출입이 금지된 원전 반경 20㎞ 선상(線上)의 바리케이드까지 접근했다. 통제하는 경찰 2명은 방호복을 입은 듯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비옷이었다. “방사선량이 높지 않으냐?”고 묻자 측정기를 보여줬다. 후쿠시마시와 비슷한 1μSv였다. “거리보다 기류가 문제예요.” 그들은 기자를 세워놓고 바리케이드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줬다.

후쿠시마의 기업인과 공무원, 기자와 주민 등 16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중 일본 정부의 관리능력을 신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정부가 제시한 비상시 방사선량 허용기준을 자신의 생활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평상시 허용기준의 10배로 알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20배로 알고 있었다. 물론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 중 2명은 가족을 수도권의 친척 집에 피난 보냈다고 했다. 모두 어린이에 대해,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지만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후쿠시마의 대처방식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크게 소리를 치지 않아 해결이 늦어진다는 견해가 있고, 반대로 그들의 조용한 적응 때문에 국가가 더 큰 위기에 몰리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런 가정을 해 본다. 200만 후쿠시마 주민이 원전 문제에 일부 우리 국민이 보여준 광우병 방식처럼 대응했다면 지금 일본은 어떤 처지였을까?

후쿠시마는 “국가는 누가 지탱하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는 “원전과 리더십 위기에도 불구하고, 누가 일본이란 국가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는가”란 질문과 비슷하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자면 그것은 국민인 듯했다. 그들의 방식이 옳든 그르든, 일본이란 국가의 지속성과 가능성은 결국 그런 국민에게 나오는 듯했다.

*** 일본을 매우 통찰력 있게 분석한 훌륭한 글이라는 생각이다. 동료 두기자의 고견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굳이 둘 중에 한 쪽의 견해를 택하라면 기자는 후자 쪽이다. 각국은 그나라 마다 고유한 자연 환경과 성장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시각으로만 ‘일본’과‘일본인’을 보면 겉만 보고 속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진짜 일본인들이 무서운 것은 그런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 체념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연의 위대한 힘’은 ‘인간’이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