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박형진


 

마당 앞에 풀이나 뽑느라


아무것도 못 했어


 

거울 앞에 서면


 

웬 낯선 사내


 

오십 넘겼지 아마?


 

[태헌의 한역]


自畵像(자화상)


 

拔草場圃上(발초장포상)


到今無所竣(도금무소준)


對鏡有一夫(대경유일부)


庶或過五旬(서혹과오순)


 

[주석]


* 自畵像(자화상) : 자화상.


拔草(발초) : 풀을 뽑다. / 場圃(장포) : 채마밭, 정원, 마당. / 上(상) : ~의 위, ~의 위에서


到今(도금) : 지금까지, 여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無所竣(무소준) : 이룬 것이 없다, 마무리한 것이 없다.


對鏡(대경) : 거울을 대하다, 거울을 마주하다. / 有一夫(유일부) : 한 사내가 있다.


庶或(서혹) : 아마도, 어쩌면. / 過五旬(과오순) : 5순, 곧 나이 50을 넘기다.


 

[한역의 직역]


자화상


 

마당 위에서 풀 뽑느라


여태 이룬 것이 없구나


거울 대하니 한 사내 있는데


아마도 오십 살은 넘긴 듯


 

[한역 노트]


자화상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자화상을 의미하는 영어인 ‘self-portrait’는, ‘자기를 끄집어내다’, ‘자기를 밝히다’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다양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셀카 역시 포괄적으로는 이 범주에 넣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그림에서 시작된 이 용어는 급기야 문학으로까지 옮겨와 숱한 시인들이 언어로 자기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시인이 화가와 다른 점이라면 자기 외모와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자기 생각과 삶을 그린다는 것이다.


시인이 “풀이나 뽑느라”고 하며 다소 자조적(自嘲的)인 언어로 자신을 힐책하고 있지만, 기실은 고요히 은자적(隱者的)인 삶을 사는 자신에 대한 담담한 고백처럼 들린다. 시인이 얘기한 “아무것도 못 했어”는, 본업인 ‘풀 뽑기’에 열중하느라 부차적인 일에서 이룬 것이 없다는 뜻이다. ‘농민 시인’으로 알려진 시인에게 부차적인 일이라면 당연히 ‘시 짓기’일 것이다. 어쩌다 농사가 잘 안된다고 쟁기를 던져버릴 수 없듯, 시가 잘 안된다고 붓을 던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인에게 시는 또 다른 농사이다. 시인이 마음 밭에서 가꾸는 것이 바로 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도 그렇지만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소품으로는 거울 내지는 거울 효과를 내는 존재물(存在物)을 들 수 있다. 화가들이 보통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띄워두고 자화상을 그리듯, 시인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자신을 묘사하는 시를 쓰기도 하는 때문으로 보인다. “낯선 사내”와 “오십 넘겼지 아마?”라는 말은, 소략하기는 해도 시인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타자화(他者化)시켜 바라본 모습이다. 자기 얼굴을 낯설다고 한 것이나 자기 나이를 추측하고 있는 것은, 시인의 공연한 너스레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차분한 관조이다.


자신을 객관화시켜 관조하지 못한다면 이는 아직 나르시시즘(Narcissism)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이가 어지간한데도 공주병·왕자병 환자로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자기애(自己愛)가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세월의 무게를 무색하게 하며 자기애를 과시하는 일은 철없음에 다름 아니다. 한여름 날 땡볕에서 풀이라도 뽑으며, 생각이라는 뜰에서 뽑아야 할 잡초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산소의 '풀을 내리는' 벌초 시즌이다. 올해는 누구도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리거나 예초기 날에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겸하여 누구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자는 4연 5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4구의 오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의 압운자는 ‘竣(준)’·‘旬(순)’이다.


2020. 9. 8.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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