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970년대는 산업사회로의 이동이 급진적으로 이뤄진 시기다.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노동력 착취에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은 차단됐다. 한국 사회는 가난한 소외 계층과 공장 노동자의 희생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에 그 참담한 현실이 잘 나와 있다. 담담한 문장과 참혹한 서정으로 드러낸 것은, 인간으로 살아갈 기본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삶과 그것이 빚어낸 공포였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강제철거로 집에서 쫓겨나는 난장이 가족을 중심으로 부정부패를 통해 부를 이룩한 관리나 중산층들과 힘의 논리로 약자를 짓밟는 은강그룹 강자들, 깨어 있기에 약자에 공감하며 분노하는 70년대의 어두운 면면을 비추는 이야기다.

빈부격차와 소외계층문제는 현재진행형이기에 이 작품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지금 70년대 경제정책을돌아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는 변화에 동의하기 쉽지 않다. 40년 동안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은 거의 예외 없이 거시경기적으로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고성장의 신화는 이러한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경제학의 미시구조적 관점에서 19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겪었던 기업부실 문제, 70년대 말의 중동건설 실패, 80년대 중반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어려움에 빠졌던 상황, 90년대 후반에 겪은 외환위기 같은 것들이 소위 ‘위기’다. 경제체질이 약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대체로 잘 견뎌왔다. 그러나 그것은 경기부양책을 사용하여 경제가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해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경제학은 언제 어디서나 들어맞는 법칙과 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을 가진 거대과학이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수많은 모델의 모음이다. 경제학은 이전의 모델이 설명하지 못한 특징을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과 함께 수평적으로 발전한다.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근본 정리인 ‘보이지 않는 손’ 모델은 완전경쟁시장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현실의 시장은 불완전한 경우가 많기에 수많은 불완전경쟁시장 모델이 발전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비대칭적 정보가 모델화됐고 오늘날에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기반한 행동경제학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새로운 모델이 이전 모델을 대체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환경에서 더 적절한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델들이 축적되며 경제학이 통찰하는 범위는 더 확대된다.

행동경제학은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를 전제로 한 경제학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했다. 애덤 스미스 이래 실제의 경제에서 현실과의 괴리를 보였다. 이는 사람이 갖는 여러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이유와 편향에 의해 일어나는 심리학적 현상에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토머스 모어는「유토피아」라는 소설을 통해 이상 사회를 꿈꾸었고, 올더스 헉슬리는「멋진신세계」를 통해 과학 기술 문명이 인류를 궁극적으로 인도할 곳은 디스토피아라고 결론짓는다. 영원한 젊음, 고통 없는 삶, 행복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언뜻 보면 누구나 꿈꾸는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하지만 출생 전부터 결정되어 버리는 미래, 인위적인 성장 촉진, 알파·베타·감마 등의 계급, 게다가 감정이 없는 이상향, 무조건적으로 누려지는 행복 …… 그 속에서 우리는 자아에 대한 고민이나 삶에 대한 반성 같은 것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눈물겨운 고뇌와 진정한 감동이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서 우리는 인간답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갈수록 똑똑한 사람은 흔해도 용기 있는 사람은 드물고 성공한 사람은 많아도 행복한 사람은 적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물질적 풍요 속에 모두 정신적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할수록 허황된 행복들이 난무하면서 오히려 행복이 멀어지는 역설이 생겨 난다. 따라서 행복은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만이 다가 아니다. 현재의 경제체계에서 그저 성장만 축구하는 정책은 결국 소득 불균형의 심화만 초래하게 되어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이다. 먹고사는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수 없을까? 그저 노후 연금으로 몇십만원 더 준다고 해서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저성장의 시대에는 맹목적이고 고성장보다는 힘들더라도 조금 더 같이 잘 살기 위한 배려와 괸심, 나눔이 필요하다.

양현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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