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사월의 노래, 박목월

사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없는 무지개 계절아



[태헌의 한역(漢譯)]


四月之歌(사월지가)



木蓮花影下(목련화영하)


閱讀維特信(열독유특신)


雲花發岸上(운화발안상)


短簫吹一陣(단소취일진)


於乎此形骸(오호차형해)


離家遠處臻(이가원처진)


無名港口裏(무명항구리)


卽今獨乘船(즉금독승선)


回來今四月(회래금사월)


明擧生命燈(명거생명등)


季節如夢燦(계절여몽찬)


如虹淚欲凝(여홍루욕응)



木蓮花影下(목련화영하)


手書長長信(수서장장신)


軸草生岸上(축초생안상)


口笛吹一陣(구적취일진)


於乎此形骸(오호차형해)


離家遠處臻(이가원처진)


深深山谷裏(심심산곡리)


樹下看星辰(수하간성진)


回來今四月(회래금사월)


明擧生命燈(명거생명등)


季節如夢燦(계절여몽찬)


如虹淚欲凝(여홍루욕응)



[주석]


* 四月之歌(사월지가) : 4월의 노래. ‘之’는 ‘~의’에 해당되는 구조 조사이다.


木蓮(목련) : 목련. / 花影下(화영하) : 꽃그늘 아래.


閱讀(열독) : ~을 읽다. / 維特(유특) : 베르테르(Werther). 서양사람 이름. / 信(신) : 편지.


雲花(운화) : 구름 꽃. 구름을 시적으로 표현한 말. / 發(발) : (꽃 따위가) 피어나다. / 岸上(안상) : 언덕 위.


短簫(단소) : 단소, 피리. / 吹一陣(취일진) : 한 바탕 불다.


於乎(오호) : 아! 감탄사. / 此形骸(차형해) : 이 몸. 행문(行文)을 고려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말이다.


離家(이가) : 집을 떠나다. 이 역시 행문을 고려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말이다. / 遠處臻(원처진) : 먼 곳에 이르다, 먼 곳에 오다.


無名(무명) : 무명, 이름이 없다. / 港口裏(항구리) : 항구 안.


卽今(즉금) : 바로 지금, 지금. 행문을 고려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말이다. / 獨(독) : 홀로, 혼자. 행문을 고려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말이다. / 乘船(승선) : 배를 타다.


回來(회래) : 돌아오다. / 今四月(금사월) : 올(해) 4월.


明擧(명거) : 밝게 들다, 환하게 들다. / 生命燈(생명등) : 생명의 등불.


季節(계절) : 계절. / 如夢燦(여몽찬) : 꿈처럼 찬란하다, 꿈처럼 빛나다.


如虹(여홍) : 무지개와 같다,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 淚欲凝(누욕응) : 눈물이 어리려고 하다, 눈물이 나려고 하다.


手書(수서) : 손으로 쓰다, 손수 쓰다. / 長長信(장장신) : 길고 긴 편지, 긴 사연의 편지.


軸草(축초) : 차축초(車軸草)를 줄인 말. 클로버(Clover). / 生(생) : 생기다, 돋다.


口笛(구적) : 휘파람.


深深(심심) : 깊다, 깊고도 깊다. / 山谷裏(산곡리) : 산골 안.


樹下(수하) : 나무 아래. / 看星辰(간성진) : 별을 보다.



[직역]


사월의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 위에서


한 바탕 피리를 부노라


아아, 이 몸은


집을 떠나 멀리로 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이제 홀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올 사월이


생명의 등불 환히 드나니


계절은 꿈처럼 빛나고


무지개와 같아 눈물 어릴 듯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길고 긴 편지를 쓰노라


클로버 돋는 언덕 위에서


한 바탕 휘파람 부노라


아아, 이 몸은


집을 떠나 멀리로 와


깊은 산골 안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올 사월이


생명의 등불 환히 드나니


계절은 꿈처럼 빛나고


무지개와 같아 눈물 어릴 듯



[한역 노트]


<4월의 노래>는 읽는 시로서가 아니라 노래의 가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목련꽃이 피는 시절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보게 되는 이 노래는 1953년 봄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는데, 그 낭만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6.25 전쟁과 관계되는 노래라는 것을 깜빡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노래는, 종전(終戰)을 목전에 두고 서울로의 환도(還都)가 시작되던 무렵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려는 의도에서 “학생계”라는 잡지사의 청탁에 따라 만들어진 곡이라고 한다. 박목월(朴木月) 선생 역시 이 <4월의 노래>가 노래의 가사로 쓰이게 될 것을 알고 작시에 임하였기 때문에, 얼핏 보더라도 후렴구는 말할 것도 없고 시의 연(聯)과 시행(詩行)의 배치 등이 노래의 가사처럼 정교하게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전쟁으로 야기된 상실감과 상흔을 달래려고 쓴 시임에도 전쟁의 음울한 그림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박목월 선생은, “이 노래를 작시할 때 6.25 전 이화여고 재직 시 후관 앞 목련꽃 나무 밑 잔디에서 책을 읽는 여학생들의 인상적인 모습과 그들의 정서, 그리고 지루했던 피난살이와 구질스런 생활에서 해방되어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을 연상했다.”고 하였다. 이 시에서 목련꽃과 여행이 중요한 키워드로 설정된 이유가 선생의 해설을 통해 확인된 셈이다.


우리나라 1호 여류 작곡가 김순애(金順愛) 선생은,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납북 후 사망] 혼자서 세 딸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가 환도한 이후에 가재도구는 물론 피아노까지 몽땅 도둑맞은 집에서 이 <4월의 노래>에 곡을 붙였다고 한다.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하게 불가항력적인 인생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에, 또 전혀 아름답지도 못하고 낭만적이지도 못한 상황에서, 선생이 “자신의 마음의 봄”을 표현하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그려낸 음표(音標)들은, 노래를 부르는 이나 듣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언제까지나 목련꽃 같은 감동으로 피어날 것이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시에서 노래한 목련이 더 이상 4월의 꽃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시와 노래가 있어 목련은 영원히 4월을 상징하는 꽃이 되기에 충분할 듯하다. 이 빛나는 계절 4월에, 전쟁이나 진배없는 역병(疫病)으로 인해 실락(失樂)과 실의(失意)의 터널을 힘겹게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도 이 시와 노래를 통하여 결핍된 희망과 용기를 충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자는 2연 1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도합 24구의 오언고시로 한역하였다. 그러나 12구로 된 첫 번째 단락과 역시 12구로 된 두 번째 단락의 각 일곱 구는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다. 역자가 한역을 하면서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은 원시 기준으로 따질 때 각 연의 7행과 8행이다. 후렴부에 해당되는 이 대목은 직역이 여의치 못하여 부득이 의역을 하게 되었는데, 역자는 “빛나는 꿈의 계절”을 아름다운 꿈처럼 빛나는 계절로 이해하고,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을 눈물이 쏟아질 듯,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한역시는 두 단락 모두 짝수 구에 압운하였으며, 후렴부에 이르러 환운(換韻)하였다. 이 시의 압운자는 ‘信(신)’·‘陣(진)’·‘臻(진)’·‘船(선)’, ‘燈(등)’·‘凝(응)’과 ‘信(신)’·‘陣(진)’·‘臻(진)’·‘辰(진)’, ‘燈(등)’·‘凝(응)’이다.


2020. 4. 7.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