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직원들과 같은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의 일이다.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한 여직원이 음식 하나를 가리키며 점원에게 ‘이거 맵나요?’ 하고 묻는다. ‘매운 걸 잘 못 먹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별로 맵지 않다’는 점원의 대답에 이 직원은 계속 다른 메뉴들을 가리키면서 매운지를 묻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운 음식을 거르려는 것이 아니고 맵지 않은 음식을 거르려는 시도였다. ‘매워야 먹는다’는 것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한국으로 휴가 중인 나에게 닭고기맛 매운 볶음라면이 보통 맛보다 두 배 더 매운 것이 있다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올 때 사달라는 부탁이었다.

매운 맛을 사랑하는 직원은 또 있었다. 고객 방문을 하면 이 직원과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한 번은 짜장면을 먹는데 이 직원이 점원에게 고춧가루가 있는지를 물어 짜장면 위에 척척 뿌려 먹는 것이 아닌가? 짜장면에 고춧가루라.. 이런 건 도대체 어디에서 배웠을까? 한국 드라마에 이런 장면도 나오던가? 사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배운 적도 없다. 그저 지극한 매운 맛 사랑 때문이다. 처음 먹어 봐서 맛도 모르는 음식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춧가루를 뿌려먹을 정도이다. 일식집에 가서 가락국수(우동)를 먹을 때도 똑같았다. 또 국수 위에 고춧가루를 뿌린다. 짜장면과 가락국수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모습이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다.

매운 맛을 사랑하는 위 두 직원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서부 수마트라 빠당(padang) 지역 사람이다. 인도네시아는 넓고 섬으로 이루어져 지방마다 종족마다 음식의 특색이 뚜렷하다. 예를 들어 현지인들에게 ‘족자(족자카르타)’ 음식이 어떠냐고 물으면 ‘달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음식이 매운 곳을 물으면 빠당과 마나도를 꼽는 경우가 많다. 빠당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인도네시아 열도에서도 서쪽에 있어 아랍과 인도 문물이 들어오기에 유리했고 가장 먼저 이슬람화 된 곳 중 하나이다. 음식도 아랍과 인도의 영향을 받아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고 커리풍의 레시피가 많다. 마나도는 북부 술라웨시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동부지역의 향신료들이 거쳐가는 무역항의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에 향신료를 많이 쓰게 되었다. 그래서 음식이 맵게 느껴진다.

인도네시아에도 매운 맛이 있다는 걸 몰라 낭패를 본 일도 있다. 학생 때 인도네시아를 잠시 찾아 갔을 때의 일이다. 작은 이벤트가 있어 참여했더니 간식으로 튀김이 준비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튀김에 작은 고추를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다. 몇몇 친구들이 튀김과 함께 나온 고추를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온 나에게 매운 고추를 먹을 수 있는지 묻다니. 이거 왜 이래 하고 매운맛 부심을 부리며 작은 고추 하나를 입에 넣었다. 몇 초가 지나자 신호가 왔다. 얼굴이 빨개지고 딸꾹질이 났다. 호흡곤란이 왔다. 매워도 너무 매웠다. 다들 웃고 난리가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고추는 우리 풋고추 베어 물듯이 덥석 삼킬 것이 아니라 튀김을 먹으며 조금씩 베어 먹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튀김의 느끼한 맛이 개운하게 싹 가신다. 콜라보다 훨씬 낫다. 보통 큰 튀김 하나에 작은 고추 하나 정도를 주는데 그 정도가 적절한 조합이다. 한국 고추만 매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도 옛날과 비교하면 최근 음식이 점점 매워지는 추세라고 한다. 화끈한 매운 맛을 자랑하는식당도 제품도 많다. 인도네시아도 요즘 매운 맛이 뜬다. 한 번은 족자(족자카르타)로 출장을 가서 차를 타고 가는데 같이 동행한 매니저가 길 옆에 있는 한 식당을 가리켰다. 요즘 핫 플레이스라고 한다. 닭고기 요리를 파는 가게인데 매운 맛을 레벨1부터 레벨10까지 골라서 주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도 이 가게를 소개하는 것을 보니 핫하긴 핫한 것 같다. 원래 족자 음식은 달다는 인식이 있는데 요즘엔 매운 맛도 뜨는 모양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족자에서 먹어봐야 할 10가지 매운 음식 같은 아이템도 나온다. 우리도 젊은 층들이 매운 맛에 더 열광하는 것처럼 족자가 젊은 학생들이 많은 도시여서 매운 맛 식당들이 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매운 맛들도 각광을 받는다.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닭고기맛 매운 볶음라면은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맛보아야 할 품목이 되었다. 마트에 가면 라면 코너에서 잘 보이는 곳에 까맣고 빨간 매운 볶음라면 봉지가 꾸러미로 진열되어 있는 것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불닭 같은 음식에 치즈 같은 토핑을 얹은 품목들도 꽤 인기가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고급 대형몰에 이런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입점해 있는데 줄을 서서 웨이팅을 걸어가며 사 먹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다른 몰들에도 이런 식당들이 많이 입점해 있고, 항상 친구끼리나 가족단위로 온 손님들로 붐빈다. 요즘 우리나라 매운 맛은 약간 달면서도 매운 맛인데 이 것이 단 음식을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다. 거기에 치즈라도 얹으면 완벽한 조합이다.

인도네시아의 매운 맛은 뜻밖이다. 그런데 그건 우리가 몰라서 그런 것이다. 나시고렝이나 미고렝, 사떼 같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 음식들이 그다지 맵지 않아서 그렇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음식 중에는 매운 음식들이 원래 많았다. 우리가 이 곳의 매운 맛이 뜻밖이라고 하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할 것이다. 빠당이나 마나도가 음식이 유명한 곳이어서 매운 맛이 유명하다고 할 뿐, 열도 여기저기에 매운 맛을 자랑하는 곳들은 많다. 삼발 같은 소스만 해도 매운 것은 속이 쓰릴 만큼 맵다.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먹어야 할 정도이다. 이렇게 매운 맛에 익숙한 배경들이 있으니 매운 한국 음식들도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음식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인도네시아가 보기보다 화끈하고 얼얼한 뜻밖의 매운 맛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매운 맛처럼 우리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뜻밖의 접점이 또 있을지도 궁금하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crosus@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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