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남秋男

늦여름부터 시작된 비가 가을까지 계속되고 있다. 요즘 비가 너무 잦다보니 좀 싫증이 나기도 하지만, 대중가요의 명곡들중에는 비를 노래한 것이 유달리 많다. 비에 관한 노래가 끊임없이 불려지듯, 비는 우리에게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아마 이 비 그치면 곧 가을 특유의 천고마비의 청명한 모습을 회복하겠지만, 가을비는 묘한 우울한 느낌을 준다.

사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는 – 춥고 굶주리던 시절의 겨울을 빼고는- 모두 특징이 있고 다 좋다. 대부분이 그러하리라고 믿지만, 덥고 추운 양극단을 빼고 봄 가을을 선호하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봄은 계절의 여왕이라면 가을은 계절의 왕이라고 할까? 사람마다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오곡백과가 주렁주렁 열리는 가을이야말로 그를 목적으로 삼고 달려온 계절의 최후 목적지가 아닐까? 가을의 절정을 향해 1년의 우주와 시간이 위계의 피라밋을 그리고 있다면 지나칠까?

그 증거는 바로 우리의 명절에서 볼 수 있다. 우리의 명절하면 대표적으로는 단연코 설과 추석이다. 어느 명절이 더 크게 쇠느냐는 다소 개인차 혹은 지역차가 있겠지만, 아마 1년의 시작인 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추석보다는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설이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과거로 되돌아가면 어떨까? 아마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면 갈수록 추석이 더 큰 명절로 쇠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근거는 한가을과 한겨울의 먹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한가을에는 먹거리가 풍부하지만, 한겨울에는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가위로 불리는 우리의 추수감사절이 바로 이 한가을에 지내던 우리 최대의 축제요 명절이 되었다.

사실 봄과 가을의 온도는 비슷하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5월과 10월의 평균 온도는 19도로 똑같다. 하지만 봄은 추운 겨울을 지나온 까닭에 따뜻하고 나른하게 느껴지지만, 가을은 무더운 여름을 경험한 덕분에 서늘하고 명랑하다. 봄은 봄비에 녹아내리는 먼산 등성이의 잔설이 아쉽고 하룻밤 동풍에 눈송이처럼 져버리는 벚꽃이 아쉽다. 가을은 차갑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가을비와 오동잎을 스치는 가을바람 소리가 애련하다. 그래서 봄은 먼들녘 아지랑이처럼 들뜨고, 가을은 지는 낙엽처럼 차분하다.

봄날의 꽃은 져서 여름에 숙성해서 가을에 結實한다. 봄꽃(花)은 화(華)려하지만 실속이 없고, 가을열매(實)는 실(實)하고 속이 차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던 예쁜 꽃은 열흘을 못간다(花無十日紅)고 하니, 화려한 봄꽃의 무상함은 예로부터 일컬어왔던 바와 같다. 그러나 가을 열매는 봄꽃에 비해 아름답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생명을 지속시키는 에너지원이 되어 참으로 실속이 있다. 동양의 지혜를 대표하는 저작의 하나인 <<老子>>에서는 눈을 위하지 말고 배를 위하며(爲腹不爲目), 화려한 자리에 처하지 말고 실질이 있는 곳에 거하라고(處其實, 不居其華) 충고했다. 그래서 우리는 화려하고 무성했던 꽃과 잎새를 모두 떨군 나뭇가지위에 열매만 덩그러니 남은 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삶의 진실을 본다.
울긋불긋 봄꽃을 보며 도취되었던 젊은 영혼은 서늘한 가을비와 잎진 가로수를 보면서 집에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 마냥 친구들과 뛰어놀다 해가 기울녁이 되면 우리 내일 만나자며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처럼.

여성이 따뜻한 봄의 양기에 감응한다면 남성은 서늘한 가을의 음기에 감응한다. 봄은 여성에 어울린다면 가을은 남성에 어울린다. 그래서 춘녀와 추남은 음양 법칙의 소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