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거제도 어느 선박제조 회사에서 사흘 동안 강의를 하면서 배를 만드는 공장에 근무하는 분들을 뵈었다.

인근에 다른 조선회사도 있었지만, 그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만 3만 명이 넘었다. 기술자와 기능직 사원과 검사요원들, 그리고 관리자들 모두 동시에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세계에서 제일 큰 배를 만들고 있었다.


강의장에 들어 오는 복장 역시 현장 근로자다웠다. 생산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관리자분들도 안전모자를 쓰고, 안전벨트와 여러 가지 작업도구들을 메고 강의실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후 모든 공구(工具)들을 풀어 곁에 놓았다. 언제든지 다시 메고 현장에 나가 일할 자세였으며, 정말 듬직해 보였다.

연세가 지긋하신 생산현장의 기술자들이나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이나 모두 같은 색깔의 작업복 차림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시간에는 현장에서 일하다 말고 급하게 달려온 듯한 외국인들이 함께 어울려 된장국과 김치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결혼식, 장례식 등 직원들의 경조사에도 작업복 차림으로 그대로 간다고 한다.


며칠 동안 묵었던 인근 호텔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 온 기술자와 검사요원(Inspector)들로 하루 종일 북적이고 있었고, 해가 진 초저녁의 바닷가는 배 위의 불빛과 거리의 조명이 조화롭게 아름다웠다. 세계 1위의 조선산업의 현장을 보면서, 노동과 기술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불이 좀 넘지만, 거제도 지역 경제의 국민소득은 3만 5천불이 넘는다고 한다. 물가도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일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벌면서, 모든 게 활기차게 돌아가는 듯 했다.



천안에 있는 어느 반도체 회사에서 여러 달 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근무하는 인원이 2만 명이 넘는다.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아파트는 아름다운 정원과 조화로운 색상이 어울려 대학 캠퍼스 같았다. 점심 식사를 위해 쏟아져 나오는 기술 기능직 사원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여기서 만드는 제품이 전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천안 지역 근처에 올라가고 있는 빌딩과 아파트, 인근 지역의 유동인구를 보면서 활력이 넘치는 경제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성수동에 있는 외국계 반도체회사를 방문했다. 깔끔한 공장 내부와 미로로 엮여있는 사무실은 40년의 긴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친절한 관리자들과 여유있게 회의를 하고, 특별한 대우로 식사를 제공해 준 점심은 “좋은 회사의 모델”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공장 입구 도로변에 직원들의 자녀양육을 위한 별도의 보육시설 건물이 있는 것을 보고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국 서너 곳의 공장에서 7천여 명의 기술자와 생산 기능직 사원들이 다양한 일을 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최고의 작품을 내놓고 있었다. 그 회사의 어느 임원은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일과 노동, 돈과 경제는 이런 곳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기계와 부지런히 땀 흘리는 사람들이 경제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 “원했던 일이 아니다.” “일자리가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이 이런 곳에 잠시라도 와 봤으면 좋겠다.


도대체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어 준다는 것인지, 복지와 무상은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돈은 어떻게 벌고 세금은 무엇으로 내는 것인지 등에 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현장에 와서 보고 듣고 느끼고 나서 깊이 생각해 본 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분들이라면 미사여구(美辭麗句)와 추상적인 언어로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눈물과 피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