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을왕리 어느 연수원 강의실에서 만난 그녀는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염색을 하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대충 빗어 넘긴 머리와 얼굴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강의를 진행하는 동안 그녀로부터 느낀 첫 인상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고, 화장기 없는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은 점점 아름답게 느껴졌다.

독일회사의 국내 합작회사 임원인 그녀는 유창한 영어와 독일어로 강의 내용을 요약하며 함께 참가한 직원들의 생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내게 다가와 질문을 하고 동료들을 격려하면서 열심히 학습에 참여했다. 8시간의 강의가 끝난 후에도 강의실 밖 복도까지 쫓아 나오며 배웅을 하면서 두 손을 잡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 여성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예쁜 미인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질이 물씬 배어나는 어휘력과 교양 있는 표정, 산뜻한 매너는 글로벌 인재에 손색이 없었다.

강의시간 내내 만면의 미소를 띤 그녀는 진정 프로였다. 대충 빗어 넘기면 지저분하게 보일 수도 있을 법한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과 까만 머리카락의 적절한 조화는, 밝은 표정과 적극적인 태도에 의해 더욱 멋진 연륜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주, 점심식사를 함께 한 그녀는 어느 금융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연간 수억 원을 벌고 있는 그녀의 기사는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뛰어든 직업 전선에 대학졸업장은 사치였다고 한다. 고객 한 명을 10년 이상 뒷바라지 하면서 수십억 원의 보험을 유치하는 그녀는 “나는 멍청한 여자”라고 표현했다. 외모를 볼 땐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게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뜨는 TV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추문을 뿌리는 여성 탤런트가 누구인지, 떠오르는 개그맨의 이름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할 일이 없어 주말마다 서점을 배회하면서 책을 읽고 고객 만나는 게 생활방식이라는 그녀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예쁘게 느껴지는 그녀는 요즘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신뢰는 한번에 쌓이는 게 아니며, 고객과의 대화는 말이 아니라 “누적된 행동의 일관성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강의를 듣는 듯 했다. 자신의 사업은 탁월한 비즈니스 전략이나 세계적인 상품이 아니며, 더욱이 가벼운 처세술이나 인간관계 기술은 아니라고 했다. 인간관계는 너무 잘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저 있는 그대로 순수하고 솔직하며, 정직하면 된다고 했다.

이런 유형의 여성들과 식사를 하거나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는 가볍지 않고 즐겁지 않으며 재미도 없다. 그러나 메모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깊이와 진솔한 경험에서 누적된 삶의 철학이 배어난다. 빼곡하게 메모한 용지를 주머니에 접어 넣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상세하게 전달해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