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복효근



저 길도 없는 숲으로


남녀 여남 들어간 뒤


산은 뜨거워 못 견디겠는 것이다



골짜기 물에 실려


불꽃은 떠내려 오고


불티는 날리고



안 봐도 안다


불 붙은 것이다


산은,



【태헌의 한역】


丹楓(단풍)



彼處無蹊深林內(피처무혜심림내)


男女十餘人入後(남녀십여인입후)


山知太熱不堪耐(산지태열불감내)



火花泛水火星飜(화화범수화성번)


自不送目亦可知(자불송목역가지)


山卽當今正火燃(산즉당금정화연)



【주석】


* 丹楓(단풍) : 단풍.


彼處(피처) : 저기, 저곳. / 無蹊(무혜) : 길이 없다. / 深林內(심림내) : 깊은 숲 속.


男女(남녀) : 남자와 여자. / 十餘人(십여인) : 10여 명. / 入後(입후) : 들어간 후.


山知(산지) : 산은 ~을 알다. / 太熱(태열) : 너무 뜨겁다. / 不堪耐(불감내) : 견딜 수 없다, 견디지 못하다.


火花(화화) : 불꽃. / 泛水(범수) : 물에 뜨다. / 火星(화성) : 불티. / 飜(번) : 날다.


自(자) : 스스로, 직접. / 不送目(불송목) : 눈길을 보내지 않다, 보지 않다. / 亦(역) : 또, 또한. / 可知(가지) : 알 수 있다.


山卽(산즉) : 산은 곧 ~이다. / 當今(당금) : 지금. / 正火燃(정화연) : 막 불이 붙다, 한창 불이 타다.



【직역】


단풍



저기 길도 없는 깊은 숲 속으로


남녀 십여 명이 들어간 뒤에


산은 알았다, 너무 뜨거워 못 견딘다는 걸



불꽃은 물에 뜨고 불티는 날리니


직접 눈길 안 주고도 알 수 있는 것,


산은 이제 한창 불이 붙은 것이다



【漢譯 노트】


19금 계열의 시(詩)인 복효근 시인의 이 <단풍>은, 단풍을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에 비유한 고두현 시인의 <내장산 단풍>이나 무지개의 피에 비유한 김태인 시인의 <단풍>과 더불어 보는 이의 이목을 끌며 ‘즐거운 놀라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즐거운 놀라움’은 우리들 밋밋한 생각의 들에 신선한 향기를 뿌려주는 들꽃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시에서 언급된 ‘남녀 여남[십여]’ 명은 가을바람을 포함한 가을 기운을 비유적으로 일컬은 말이다. 이 가을 기운이 숲속으로 들어가 청춘 남녀들처럼 애정 행각을 벌이자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 산이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뜨거운 열기로 인해 생겨난 단풍잎 불꽃은 골짜기 물에 떠내려 오고, 단풍잎 불티는 허공에 날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인은 숲이 불타고 있음을 ‘안 봐도 안다’고 하였다.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인 상황이 숲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야하지만 속되지 않은 시인의 비유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3연 12행으로 된 원시를 한역하면서 역자는 2단락 6구로 구성된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각 단락은 3구로 구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원시에 있는 시어 일부를 누락시키고, 또 원시에 없는 내용을 일부 보태게 되었다. 각 단락마다 홀수 구에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內(내)’·‘耐(내)’, ‘飜(번)’·‘燃(연)’이다.


역자는 불이 타는 듯한 단풍 숲은 고사하고 데면데면한 단풍 숲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채 제법 여러 해를 지내왔다. 그렇다고 삶이 특별히 더 달라진 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가족은 가족대로, 또 친구는 친구대로 저마다 사정이 있어 의기투합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때에 느끼게 되는 허허로움을 달래고자 역자는 술 잔 하나 앞에다 두고 역자의 한시집 ≪술다리≫에 수록된 옛 시 한 수를 꺼내 안주로 곁들이는 중이다. 고요히 깊어가는 이제의 가을도 더없이 소란스러웠던 그제의 가을과 그리 다르지는 않으련만……



楓遊(풍유)


滿天秋氣染山紅(만천추기염산홍)


倦世騷人何不叢(권세소인하불총)


遊服華靡酒顔赤(유복화미주안적)


樹楓猶願賞人楓(수풍유원상인풍)



단풍놀이


천지에 가득한 가을 기운이 산을 붉게 물들이거니


세상에 권태를 느낀 시인들, 어찌 모이지 않으랴!


나들이 옷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술 취한 얼굴 붉으니


나무에 든 단풍이 도리어 사람 단풍 보겠다고 하겠네.


2019. 10. 29.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