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인지 모르는 새벽에 알람이 울린다.

급하게 꺼 놓고 잠이 든다. 3분 후 다시 울린다. 억지로 눈 비비며 일어 나 앉는다.

“더 잘까, 그만 일어 날까?”

잠시 망설인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거실 소파에 앉아 또 망설인다.



“그냥 더 잘까 일어나 뭐라도 할까?”



5분 정도 망설이다 책상 앞으로 다가가 두 개의 조명을 밝히고, 책꽂이를 둘러 본다. 사 온 책과 얻어 온 책이 있고, 누군가 보내온 책들도 있다. 사다 놓고 몇 달동안 읽지 못해 미안한 책도 있다. 그 중의 한 권을 꺼내 든다. 어제 한경을 방문했다가 정 팀장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온 책이다. 아직 따끈따끈하다.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표지가 멋있고, 제목이 좋아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그렇게 얻어다 쌓아 놓은 책도 한두 권이 아니다.



파란색 볼펜을 들고 책장을 넘기며, 의미를 생각하며 읽어 내려 가는데 갑자기 허전한 느낌이 든다.

빠진 게 있다.

음악을 틀어 놓는다. 이런 새벽엔 클라리넷 협주곡이나 첼로 독주가 어울린다. 덥지 않아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되고, 춥지 않아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좋다. 가벼운 옷차림이다. 온 몸이 시원한 상태다. 마음도 시원하다.


잠시 후, 신문을 던져 놓고 가는 젊은이의 급하고 투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대단한 손님이나 온 것인 양, 얼른 문을 열고 조간신문 두 개를 집어 먼지를 털고 들여 온다. 맨 뒤 사설부터 펼쳐 읽기 시작하면 금방 한 시간이 흘러 간다.



신문을 읽다가 문득, 조금 전에 읽던 책의 어휘가 생각난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표현으로 산란하고 복잡한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위로하는지 모르겠다. 얼른 신문을 덮고 다시 책으로 눈과 손이 간다. 두어 장 더 읽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지금 뭐하고 있나?”



할일 이 너무 많은 요즘이다. 출판하기로 계약한 책의 원고도 써야 하고, 강의 준비도 해야 하고, 중간고사 과제도 출제해야 하고, 밀려 있는 고객들의 e-mail도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지금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다니?



잠시 후, 바깥에서 청소하는 분의 빗자루 소리와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책장을 덮고 어질러진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기지개를 한 번 편다. 이제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다. 배고플 때 푸짐한 밥상을 받은 것보다 더 푸짐한 느낌이다.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 간다. 발걸음이 가볍다.



하루, 24시간 중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가끔은 고독할 필요도 있고, 때로는 100년 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도 필요하다. 철학자와 만나기도 하고, 음악가와 만날 수도 있는 게 독서다.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좋다. 아무리 해야 할 일이 많고 바빠도 잊지 않고, 빠뜨리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렇게 시원하고 충분한 시간에 바쁜 일에 얽매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더 급하고 더 바쁜 일들은 많은 사람들과 시끄럽게 움직이며 바쁜 시간에 해 낼 수 있지만, 그런 시간에 이렇게 소중한 책의 뜻 깊은 어휘를 음미하며, 생각과 메모를 함께하며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가을 새벽 독서, 정말 좋은 선택이다.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가을 새벽 독서의 사랑에 빠져 볼 것을 권한다. 물론, 부르흐나 맨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바하의 첼로 독주를 들으면서 읽는 글의 의미는 더욱 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