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 고민이 많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학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읽은 책이라고는 무협지와 만화책, 그리고 전공서적 몇 권입니다. 컴퓨터는 게임만 했으며 영화만 보았습니다. 아직 TOEIC 시험은 보지 않았지만 만약 본다고 해도 점수는 별로 높을 것 같지 않습니다. 자격증은 올 여름 방학 때 운전면허증 하나 땄습니다. 내년 봄에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부모님은 정말 기대가 크거든요.



뭐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젊은이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가 그들을 이렇게 가르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생으로써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다. 심오한 학문을 연마하여 실력을 키우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구성, 직업과 일의 신성한 의미 등을 이해하여야 하는 게 대학생의 도리이다. 자신이 4년 동안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않고 대학 졸업생으로써의 자격을 갖추지 않은 채 원하는 직업을 찾으려 한다는 건 타당한 일이 아니다.



학문의 전당(殿堂)을 떠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직업을 선택하고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인들과 사업가들, 우리의 부모님들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고 직업을 유지하면서 자녀를 키우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데서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



즉 교육의 문제이다.



2년~4년의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매년 40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문을 나서지만, 어엿한 일자리를 얻어 사회로 진출하는 학생은 반도 되지 않는다. 임시직, 아르바이트, 계약직 등으로 잠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학생은 그나마 다행이다. 나머지는 할 일 없는 실업자로 전락하여 몇 년 씩 방황하고 있다. 수억 수십 억 원의 비용을 들여 가며 취업특강을 하고 실업자 구제책을 마련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지만 소용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취업이 어려운 이유



첫째,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국가와 사회가 움직이는 데는 다양한 직업이 필요하다. 페인트 칠하는 일과 나무 자르는 작업과 기계 고치는 일이 모두 필요하고, 청소하는 사람과 공사장에서 땅을 파는 일에도 전문가가 필요하다. 트럭을 운전하고 나사를 깍는 일에도 전문가적 기술이 필요하다. 전 국민의 80%이상이 고등학교를 가고 그 중에 80%가 대학을 진학해서 아무 탈없이 졸업을 하니, 머지 않아 국민의 65%이상이 대졸자가 될 것이다.



허드렛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당연히 대졸자의 일자리는 충분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어찌 이런 현상이 졸업생의 문제요 경제 불황만의 문제이겠는가?







둘째,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없다.



명색이 대학졸업자라고 하지만 기업 경영과 기술 개발, 공장관리 등의 분야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졸업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협상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며 물건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역할을 할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자 하는 인내심이 없다. 신입사원의 28%가 1년 이내에 뛰쳐 나간다.



잔디밭에서 노래 부르며 맥주 집에서 푸념을 늘어 놓고, 미장원과 병원에서 얼짱 몸짱을 만들어 가느라 정신이 없다. 어영부영 책만 들고 다니는 학생이 대부분이고 강의시간에 졸면서 잠자는 학생이 부지기수라 한다.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책상에 엎드려 잠자는 대학생도 있다.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로 학창생활을 즐기면서 나약하고 게으른 고민만 하고 있다. 2~4년 동안 50권의 책을 읽지 않고, 10권의 원서를 읽지 않는 대학생이라면 그들의 실력은 따져 볼 가치조차 없다.



대학은 직업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학생으로써 지고(至高)한 학문의 이해와 지식을 충분히 쌓고 있는지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직업을 갖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취업은 대학문을 나서면서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기업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업은 인재를 필요로 하며 우수한 인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셋째, 실업률이 높아지는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원인인 일자리가 없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도둑놈이요 기업가는 사기꾼이라고 하면서 취직을 시켜달라고 하는 건 아이러기가 아니라 무식한 자들의 변명일 뿐이다. 일자리 만들기 위해 공공부문에 돈을 퍼붓고 있지만, 기업을 살리겠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많은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 사무소와 공장엔 해외 현지 인력으로 채워지고, 우량기업은 외국계 기업들의 눈독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고, 중소기업은 자금이 딸리고 일손이 부족하여 시름시름 앓고 있다.



수백 명의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 지도자들은 수천억 원의 국고를 낭비하면서 실업대책을 세운다고 난리법석을 떨지만, 그들이 수립하고 추진하는 여러 가지 정책은 일자리 만든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 돈 많은 기업을 옥죄면서 재투자를 하라며 강요하지만, 죽을 고생을 하면서 벌어 모은 돈을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할 바보 같은 사람은 없다.



지금 해야 할 일



이와 같이 고학력 실업의 원인이 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앞서, 학생으로써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실수와 오류를 빨리 깨닫고 올바른 길을 찾아 가야 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학력과 성별과 관계없이 자신이 해아 할 일을 바르게 정의(定意)해야 한다. 원하는 꿈을 찾고 가치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철저한 자기 관리(Self-Management)이다.



시간을 관리하고 목표를 관리해야 한다. 촌음을 아껴서 학습에 임해야 한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고민하면서 수다떠는 순간들을 아껴야 한다. 지하철 역 근처에서 지방대학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바라본다. 수 많은 학생들이 길게 늘어서서 버스를 기다리지만 책과 노트를 펴 들고 공부하는 학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거나 길거리에 뿌려지는 신문 조각들을 뒤적이고 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학생들과 스쿨버스를 함께 탄다. 어두침침한 버스에서 책을 읽는 학생이 드물다. 모두들 잠에 골아 떨어졌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 매일같이 하루 서너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그 넓은 캠퍼스를 책 들고 뛰어 다니는 학생이 없다. 여유 있게 걸어 다니거나 잔디밭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럴 시간이 있는가? 목적이 불분명하고,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한 공부를 하는 척 하는 건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러시아의 과학자 류비세프는 1분 1초를 따져 가며 시간을 기록하며 살았다. 한국 기업의 CEO중에 10%는 5시 이전에 일어나고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한다. 필자가 잘 아는 친구 중에 20년간 직장생활을 한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칼럼을 쓰고 기업 컨설팅을 하는 분이 있다. 평소 5시 에 일어나 하루종일 움직이다가 11시 반이 넘어서야 잠에 든다고 한다. 한 달에 대여섯권의 책을 읽고 서너 편의 글을 쓰고 있으며, 일을 하고 싶어 잠이 오지 않는다며, 그러면서도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해 고객으로부터 항상 핀잔을 듣는다고 하소연한다.

젊은 친구들이 어찌하여 고민과 갈등 속에 빠져 방황할 시간이 있는가?



둘째,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따라야 한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



배우고 깨닫는 데 비결이 있을 수 없다. EBS 방송 화면을 보면서,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이해는 했지만, 직접 책을 읽고 사전을 찾아 가며 눈을 비비면서 필기를 하지 않는 학습방법에 익숙한 신세대 젊은이들의 사고력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질문도 하지 않고 글씨도 쓰지 않으면서 100분에 100문제를 풀어 내는 수능시험은 문제를 이해하고 생각하면서 풀어 가는 게 아니라 직관에 의해 암기한 답을 찍어내는 기능만 발달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세상을 크게 보아야 한다.



이 지구상에 63억 명에 이르는 인구가 250여 개 국가에 나뉘어 살고 있으며, 우리 나라 인구는 고작 4,7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수억 년을 이어 온 인류 역사에 한 사람은 겨우 100년을 살지 못한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혼자 살기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아무리 급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여유와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으며 탁월함과 위대함을 보여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공직자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아시아 최하위 신뢰도를 유지하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지만,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 더욱 고달팠던 세월을 참고 견디며 살아 온 선인(先人)들이 있다. 3년간의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총탄을 피해 피난을 가고 굶주림에 떨었지만, 유엔(UN)이 지원하는 밀가루를 먹지 않고 모았다가 팔기도 하고, 모포와 이부자리를 아껴쓰며 되팔아 돈을 번 사람들이 지금 부자가 되어 있다.



IMF 구제 금융을 받으며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급증할 때에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돈을 번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발레리나 이수영씨는 게임개발업체 사장이 되어 수백억 원의 돈을 벌고, 서울역에서 굶주리던 노숙자가 S-보드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상품으로 내놓아 또한 수백 억원의 재산을 모으고 있다.



돈 없는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는 병원을 설립한 목사님도 있고, 그 병원에서 수년간 무료로 봉사진료를 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 달려 오는 철길에 뛰어드는 사람을 구출한 대가로 자신의 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감수한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봉사단원이 있다. 어찌 세상이 험악하고 힘들다 할 수 있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씩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본과 중국에 있는 여러 기업에 동시에 취직이 되어 갈 곳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 다음 편에 계속



(다른 신문에 올린 필자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