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를 펼쳐 놓습니다.




파란 선이 가늘게 쳐진 노란 종이도 옆에 펴 놓습니다. 까만 만년필을 뽑아 들고 무엇을 써야 할지 망설이다가 잠시 밖을 내다 봅니다. 가꾸지 않은 정원에 잡초가 무성하고, 군데군데 키가 큰 풀 끝에는, 상처 나고 시들었지만, 예쁜 꽃송이가 띄엄띄엄 피어 있습니다. 흰 나비와 노랑 나비가 짝을 지어 날아 다니는데, 어디에선가 까맣고 커다란 나비도 날아 왔습니다. 자기들끼리 색의 조화를 맞추어 날아 다닙니다.






낮게 깔린 잔디밭 한 구석엔 토끼풀이 무성합니다.




어렸을 때 반지를 만들어 끼우던 흰 토끼풀꽃이 가득합니다. 풀 냄새와 꽃 향기가 가득한 마당에 앉아, 그 어떤 향수보다도 아름다운 냄새에 취해 보는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며 공간입니다. 커다랗게 자란 옥수수 밭 때문에 넘실대며 흐르는 강물은 보이지 않지만 물소리는 뚜렷하게 들립니다.




아무도 없는 곳인 줄 알았는데, 몇 마리의 새가 노래하며 날아 옵니다. 여치와 매미들도 덩달아 따라 웁니다. 우는 게 아니라 노래하는 거라지요. 도심에서는 들어 보기 힘든 소리들입니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새소리는 너무 아름다워 녹음을 하고 싶습니다.






무질서한 뜨락을 한참 바라보노라니 플로리다 남부 마이애미에 있는 비스카야궁전이 생각납니다. 웅장하고 반듯하게 정리된 고궁의 정원은 넓고 화려하여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합니다. 아무 주제 없이 자유롭게 상상하기에는 화려하고 정갈하게 가꾸어진 큰 정원보다, 이렇게 작고 아무렇게나 존재하는 마당이 한결 어울립니다. 자연의 소리와 그림과 냄새가 조화롭게 전달되어 옵니다. 귀와 눈과 코가 어우러진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 있음을 자랑하는 시간입니다.






그런 자연을 앞에 두고 하얀 종이 위에 펜을 올려 놓으니 무한한 생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생각의 자유(Freedom of Thought)”를 만끽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 보면서,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보고, 미래를 상상하고 꿈을 꿔 보는 한가로운 여유도 가져 보고 싶었습니다.




과학자도 되었다가 예술가도 되었다가 시인도 되어 보면서 백지 위에 그림과 글을 마음대로 써 보는 자유행위를 Mind-Mapping이라고 하는데, 한 번 그렇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을 때, 자연 속을 걸어 갈 때, 운전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릴 때, 목욕을 하며 온 몸의 시원함을 느낄 때, 우리의 몸은 “최고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고 강의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품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몇 권의 책도 읽으려니, 하루는 24시간으로 부족합니다. 고객의 푸념을 들어 주며, 가까이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존경과 사랑을 느끼기도 하다가, 고통과 미움을 사기도 하지만, 아직은 만나 줄 사람이 있고, 찾아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신 없이 살아 가는 시간들의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창피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하다고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때론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도 했다가, 부족함을 느끼며 부자연스러운 만남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욕심이 지나쳐 충만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지금 많이 불행한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한 어른들께서 잘 살아 주시고, 잘 자라는 아들과 딸이 출퇴근 시간에 인사를 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술 마시고 싶을 때 전화해서 만날 친구가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을 만져 줄 수 있으며, 서로의 생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도 있고, 그들의 의견에 관심을 가져 줄 수 있는 마음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쓴 글을 읽어 줄 사람도 있고, 때론 시계를 보며 달려가서 만나 줄어야 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쓰디 쓴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살이 푸념을 하다가도 시끄러운 곳에 가서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좋은 글귀를 읽던 중 감동을 하여 어딘가에 옮겨 적어 두었다가, 적절히 사용하지 못해 답답해 하기도 하고, 영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찾다가 이탈리아어라는 걸 깨닫고 인터넷 사전을 뒤질 수도 있는 건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훈련을 잘 받은 개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 가느니보다, 아름다운 것과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힘을 길러, 조화로운 품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50년 전 교육관에 밑줄을 치는 시간도 “일생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과 글을 통해 마음대로 표현하고 싶지만 적합한 언어가 생각나지 않아 가방 끈이 짧음을 한탄하다가도,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 올리며,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카리스마를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모나리자의 모델이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신의 영혼을 그린 자화상이었을 거라는 학자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은 돈과는 관계가 없는 또 하나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흙과 불, 물과 공기로 구성이 되었다는 건 오래 전에 들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브람스와 베에토벤이 흙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하고, 스트라빈스키와 쇼스타코비치는 불과 같은 선율을, 모짜르트와 바하는 바람에 가까운 음악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음악이 뇌파의 흐름과 영혼, 감성과 감수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환희입니다.




그런 시간을 좀더 많이 갖고 싶고, 좀 더 화려한 고독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TV는 끕니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들으며 미술에 관한 잡지를 넘깁니다. 지금은 왠지 뜻도 알 수 없는 그림의 색깔들이 예쁘게 느껴지면서 호기심이 생깁니다.




안경을 벗고 눈을 가까이 대고, 그림을 세밀히 살펴 봅니다. 이토록 복잡한 색과 선(線)을 어떻게 붓으로 구별해 가며 그려냈을까? 지금 100세가 다 되신 할머니 화가들께서 80여년 전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 가 자수와 재봉을 공부했다는 동경여자미술학교 동창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감탄을 합니다.




좀 더 감성적이고 호기심으로 가득찬 마음과 생각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고,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면서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좌뇌(Left-Brained Fashion)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가끔은 10분의 여유를 주면서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팔다리를 흔들어 줄 수 있는 우뇌의 휴식도 필요하다는 걸, 21세기 감성과 문화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잊지 않아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흔들리는 생각을 바로잡아 가며 겪어야 하는 직장인의 다양한 경험과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망하며 학습하는 노력의 바탕 위에서 가꾸어지는 호기심과 감수성, 예술적인 감각, 역사의 흐름을 읽는 혜안 등은 풍요로운 삶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신성적에 예체능 과목을 제외시키고 고시과목에 역사를 빼겠다는 교육당국의 주장이 들려 옵니다. 세계적인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 전인교육(全人敎育)이 시급하다는 취지에 맞는 일들을 하고 있는 건지 이 지면을 빌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 대국에 올라 있다는 자부심과 국민소득 2만불이 목표라고 떠들어 대는 슬로건에는 뭔가 중요한 게 빠진 듯한 허전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수인재를 찾는 기업에서 나이부터 묻고 학벌부터 따지면서, 감성의 리더십과 반듯한 성품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무책임하게 방치되고 있습니다.






밝게 웃을 수 있는 자세와 품위를 갖춘 대화 능력은 기업의 자산가치로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직원들의 성품과 태도에 대한 평가는 핵심기술과 수익성 판단자료에 포함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육과정에 감성과 문화에 대한 프로그램은 아직 미미합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기 위해 실천해야 할 방법이나 정성도 가르쳐 줄 수 있고 그런 것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선뜻 나서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장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겪어 보고, 실패와 역경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워가기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올 봄에는 Whole-Brain Thinker가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