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산책 삼아

하늘을 날던 물새들

일제히 날아 내려와

모래톱을 원고지 삼아

발로 새 시를 쓴다

섬진강 여울물은 온종일

소리 내어 읽는다

그 소리 유장하여 바다에서도 들린다


【태헌의 한역】


蟾津灘水(섬진탄수)




水鳥飛天做散步(수조비천주산보)

一齊落下作新賦(일제락하작신부)

以沙爲紙以足錄(이사위지이족록)

蟾津灘水盡日讀(섬진탄수진일독)

讀聲也悠長(독성야유장)

海畔亦可聽(해반역가청)


[주석]


* 蟾津(섬진) : 섬진강. / 灘水(탄수) : 여울물.

水鳥(수조) : 물새. / 飛天(비천) : 하늘을 날다. / 做散步(주산보) : 산보로 삼다.

一齊(일제) : 일제히. / 落下(낙하) : 낙하하다. / 作新賦(작신부) : 새로운 시를 짓다.

以沙爲紙(이사위지) : 모래톱을 종이로 삼다. / 以足錄(이족록) : 발로 기록하다.

盡日(진일) : 진종일, 온종일. / 讀(독) : 읽다.

讀聲(독성) : 읽는 소리.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悠長(유장) : 유장하다, 길고 오래다.

海畔(해반) : 바닷가. / 亦(역) : 또, 또한. / 可聽(가청) : 들을 수 있다, 들린다.



[직역]

섬진강 여울물




물새들이 산책삼아 하늘 날다가

일제히 내려와 새 시를 짓는다

모래톱을 종이 삼아 발로 적자

섬진강 여울물이 온종일 읽는다

읽는 소리 유장하여

바닷가에서도 들린다


[한역 노트]


눈이 시리도록 맑은 서정시를 대하면 역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소년이 된다. 그 옛날 청담(淸談)이 권력(權力)과 금력(金力)의 얘기가 빠진 얘기였다면, 요즘에는 이런 서정시가 바로 청담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랬듯이 세상은 혼탁하고 인생은 고달프다. 그리하여 인간이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는지 모른다.

막걸리 한 잔조차 동무할 사람 없다는 허허로움을 느끼고 있던 때에 오수록 시인의 이 시를 마주하고 역자는 다시 소년이 된 듯 기뻐하였다. 그렇구나! 새들에게는 새들의 삶이 있고,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의 삶이 있구나! 새들조차 저토록 시적으로 사는데 사람인 나도 시적으로 살아야지 않을까? …… 시를 밥보다 더 좋아했던 한 소년이 이제는 술을 시보다 더 좋아하는 서생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가 좋은 걸 보면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도 결국 하나의 고질(?)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고질이라면 또한 아름답지 않을까?

한역시는 칠언 4구와 오언 2구로 구성된 고시(古詩)이다. 전에도 언급한 바이지만 굳이 칠언구로 통일하지 않은 까닭은, 원시에 없는 내용을 부득이 덧보태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한역시는 매구(每句)에 압운(押韻)을 하였으나 2구마다 운을 바꾸었다. 이 시의 압운자는 ‘步(보)’와 ‘賦(부)’, ‘錄(녹)’과 ‘讀(독)’, ‘長(장)’과 ‘聽(청)’이다.


2019. 8. 20.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