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인간이 욕망으로 들끓는 이드와 완벽하고 높은 도덕성을 추구하는 초자아 사이를 에고가 적절히 분출하거나 통제하게 함으로써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했다.

욕망을 분출하려는 이드(id) 와 이를 통제하려는 초자아(superego) 사이의 압력에서 자아(ego)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산산이 깨진, 거울 조각 같은 여자가 있다. 영화 <블랙스완>의 주인공 니나이다. 니나는 선배 프리마돈나 베스가 은퇴하자 <백조의 호수> 주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에 도전한다. 발레단 예술 감독 토마스는 니나가 순수한 백조로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지만 자유분방하고 관능미 넘치는 흑조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니나는 결국 배역을 따 내지만 자기 안의 흑조를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 앞에서 심적 부담을 느낀다. 스물네 시간 딸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엄마는 니나를 숨 막히게 하는 또 다른 짐이다. 다 큰 딸의 옷을 입혀주고 시시각각 딸의 거취를 확인하며 손발톱까지 직접 깎아주는 엄마로 인해 니나의 사생활은 통제되고 개인적 욕구는 억압당한다. 니나의 엄마는 니나를 임신한 뒤 발레를 포기했고 자신의 못다 이룬 욕망을 딸에게 고스란히 투사했다. 엄마가 니나에게 하는 말, ‘나의 착한 딸’ 은 언제까지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남으라는 명령의 다름 아니었다. 엄마의 언어를 내사 한 니나는 ‘착한 딸’로 남기 위해 매사에 완벽을 추구했고 발레에서도 완벽에 집착했다. 죽음 앞에서조차 그녀는 ‘나는 완벽하다’고 외칠 만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은 개별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여러 가지 심리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공생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니나와 엄마의 관계에서는 분리 개별화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에게서 독립하는 순간 엄마가 견디지 못하리라는 것을 니나는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엄마의 욕망대로 영원히 착한 딸로 남아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죄책감’이라는 또 다른 굴레가 그녀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니나 모녀처럼 가족 간의 경계가 불분명할 경우 아이의 정체감 형성은 방해를 받게 되고 자존감 낮고 불안정한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

초자아로 상징되는 엄마에 의해 통제된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완벽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백조 역할은 너무나 쉬웠지만 욕망을 분출해야 하는 리비도인 흑조를 연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토마스의 ‘분출하라’ ‘너 자신을 놓아버려라’라는 요구를 니나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드의 상징인 릴리는 니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릴리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매력으로 남자들을 유혹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며 필요하면 마약도 서슴지 않는다. 릴리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니나는 욕망에 잠식당할 것 같은 두려움으로 불안에 떤다. 마약에 의존해 릴리와 성적인 접촉을 하고 억압된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지만 결국 초자아로 대변되는 엄마가 베개로 누르는 장면으로 끝남으로써 니나가 욕망 분출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니나가 자아통합에 성공하지 못했음과 동의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내 안의 이드를 적절하게 활용할 경우 생기 넘치고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성격 안에서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자아가 적절하게 중재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초자아가 발달한 니나는 욕망이 거세당한 채 이분법적 세계 속에 갇혀 있었기에 제정신으로는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없었다. 흑조가 표현해야 하는 충동, 공격성, 성적 본능, 파괴성, 질투의 감정을 자기 안에서 일깨워야 했지만 슈퍼에고로 무장한 니나는 이드의 욕구를 인정하는 데서 오는 자아의 불안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온갖 방어기제를 동원해 맞서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니나는 대역을 맡은 릴리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다가 그녀를 찔러 죽이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찌른 것이었고 이드로 대변되는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면하지 못하면 자아는 파괴되어 스스로를 할퀴고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불안’은 이드와 에고, 슈퍼에고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비대해진 것에 대한 심리적 경고이다. 욕망은 억압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과도하게 팽창한 이드와 이를 막으려는 초자아 사이에서 불안을 느낀 자아가 방어기제 사용에 실패하게 되면 자아는 깨진 거울 조각처럼 산산이 분열된다.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니나는 결국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 안의 흑조를 죽이지 말고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에게도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욕망의 부름에 적절하게 답해 주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욕망조차 인정하지 않는 삶은 경직되고 차가운 석고상과 다름없다. 과도한 초자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마저 부인하게 함으로써 삶을 불안의 테두리 속에 가둬버린다.

‘기필코’ ‘꼭’ 이란 부사를 달고 사는 삶은 피곤하다. 오늘은 퇴근 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맥주 한 캔 하고 싶은 내 안의 욕망을 충실히 따르련다. 해야 할 일을 조금 미뤄둬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은 채 말이다. 이제 내 안의 흑조에게도 자유를 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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