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박진영 씨가 나와 그의 현재를 있게 해준 몇 가지 행운 중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 태어난 것’을 꼽은 일이 있다. 학창시절에 손 편지도 열심히 썼지만 삐삐에서 핸드폰을 거쳐 스마트폰을 시대까지 모두 체험했고, 음악도 카세트테이프에서 CD플레이어, MP3 파일에 이르는 재생도구를 모두 경험했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 혜택도 함께 누리는 세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상상력이나 창의력의 폭이 넓다.

박진영 씨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마도 3,40대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문화 예술의 생산주체도 결국 이 세대의 사람들이 주류라 할 수 있는데, 현재 ‘신(新)복고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8,90년대 문화를 추억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 <써니> <건축학개론>의 흥행과 방송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시작했을 무렵의 뜨거운 반응이 대표적이다.

아이돌그룹이 대세인 음악시장에서 신인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뜨거운 열풍도 이즈음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다. 기계음을 덜어내고 다소 거칠고 촌스러운 생목소리로 난해한 가사 대신 서정적 가사로 청춘을 노래한다. 멜로디를 어렵게 꼬지 않고 흥얼거릴 수 있는 쉬운 라인으로 정리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7,80년대 대학가요제에서 들을 법한 그런 사운드다. 아날로그가 가진 신선함에 사람들은 열광하며 음반을 사고 음악파일을 다운받고 콘서트 티켓을 단숨에 매진시킨다.

한 세대가 뜨거운 청춘의 시대를 지나 기성세대가 되면 자신의 청춘을 추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로다. 돌아가지 못할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지만 아쉬움과 애틋함의 코드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요즘 추억하는 과거의 코드는 단순히 8,90년대가 아니다. 디지털 이전의 시대다. 말하자면 관계나 소통의 면에서 조금 더 ‘스킨십’이 강했던 시절이다.
사람들 손마다 개인 휴대전화가 있는 시대와 없는 시대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휴대전화가 없을 땐 연애를 한다고 해도 실시간 문자를 할 수 없으니 부모님 몰래 이성과 교제한다면 전화통 앞을 지키고 있었어야 한다. 영상통화를 할 수 없으니 보고 싶으면 거리가 얼마나 되던 그냥 직접 만나는 방법밖에 없다. 혹시 약속이 어긋나거나 한쪽에 사정이 생겨도 무작정 기다리거나 못 만나는 일이 쉽게 생긴다. 지금 생각하면 답답하고 불편한 일이 아주 많다.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지금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못한다고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복고’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유행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 하나의 조류로서 자리잡았다. 일반적으로 복고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로 표현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단순히 과거가 그리워서라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야기도 된다. 단순히 살펴보더라도 지금의 시대가 주는 스트레스와 불만, 여유 없음이 훗날 어떤 보상을 해주지 못할 때 이미 지나간 과거가 사람들 머릿속에서는 행복하고 따뜻하게 이미지화된다. 차라리 고달프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요즘보다는 너도나도 그저 그렇게 비슷비슷하게 가난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의 불만이 모두 과거로의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아지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현재보다는 미래의 불투명함, 절망이 복고와 향수를 더욱 부채질하기도 한다. 미래는 막혀 있고 그나마 자기위안을 삼을 것은 과거의 자신의 행동이나 일이 타인들로부터 인정받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뿐이기 쉽다.

현실의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우리는 ‘복고 스타일’로 한층 가볍게 이겨낼 수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기나 소통에서 디지털을 좀 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무리 SNS를 통해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도 그 끈끈함을 유지하고 그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가기 위해선 온라인 밖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스마트폰 안에서 친한 사람이라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친밀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하루에 여러 통의 메일을 주고받지만 1년 이상 만나지 않은 두 사람과, 편지는 쓰지 않지만 일주일에 2,3회 꾸준히 만나는 두 사람 사이의 심리적 간격은 차이가 크다.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일은 사소하지 않다. ‘글정’도 쌓아야 하지만 ‘밥정’도 많이 쌓아야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고 돈독하다.

또한 만나서 마음을 제대로 열어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 단점보다는 장점을 많이 보려는 긍정적인 사고, 상대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하는 여유와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오해가 있다면 진심을 다해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수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하는 가운데 디지털 기기들은 사람 사이를 더 단단하게 이어주는 진정한 소통의 도구로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소통하는 방법은 많아졌지만 외로운 사람은 더 많은 오늘날이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건 디지털 문자로 찍히는 아날로그 마음이다. 오늘은 당신의 스마트폰 속에 있는 따뜻한 손을 가진 그 사람을 불러내보자.
“우리 오늘 오랜만에 좀 만날까?”

전미옥 / CMI연구소 대표, jeon@myc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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