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과 무역구조 변화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전 지구적인 산업구조와 시장 환경이 급속도록 변하고 있다. 더불어 세계 경제 질서도 이전에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존과는 다른 경제구조와 경쟁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느리게 발달하던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특이점에 가까워지면서 산업과 경제사회 구조를 대폭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전파가 매우 빠르게 전파되면서 이전과 같이 단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다.

1991년에 처음으로 노트북 컴퓨터를 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월급이 적었던 나로서는 두 달 치에 해당하는 거금을 투자했다. 그 당시 노트북은 기껏해야 286급의 CPU에다가 하드 디스크 용량이 20Mb에 불과했다. 물론 인터넷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지금 내가 사무용으로 혼자서 쓰고 있는 전자제품을 보자면, 우선 데스크 탑 컴퓨터 속도 2.5GHz, 데이터 저장용량은 1테라바이트, 그리고 이 성능에 필적하는 강화된 멀티미디어 기능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스마트폰은 SD카드를 별도로 넣지 않았음에도 64GB이고, 강의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USB 메모리가 64기가바이트이다. 불과 30여 년 만에 저장용량만 따지고 보면 무려 수십만 배가 넘게 늘어났지만, 부피나 무게나 가격이 그만큼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쓸 만한 노트북 컴퓨터의 가격은 그 때나 지금이나 150만 원 내외이다. 그만큼 메모리를 이용한 전자제품의 가격과 부피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내 지식이 수십만 배로 늘지도 않았다. 그러나 수십만 배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저장하고 있다. 또한 따로 전화를 받거나 타이프를 쳐주는 비서가 필요 없게 되었으며, 사진을 찍어서 수정하는 일의 대부분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어 사진관에 갈 일이 별로 없게 되었다. 그밖에 시간을 절약함으로써 얻어지는 비용 상의 이익도 상당하다. 이제 세상은 인간의 능력을 따라가기 벅찰 정도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홍재화의 무역인문학] 기술발전과 무역구조 변화
위의 특이점에 관한 그림은 근래 들어서 얼마나 기술의 속도가 빨리 변하는 지를 보여준다.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미래에 기술 변화와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 즉 특이점이 온다고 했다.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이때, 비즈니스 모델부터 인간의 수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개념들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보다 인간은 많은 기술을 만들어냈고, 이 기술들이 변화에 기하급수적으로 속도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 십 년 내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모든 지식과 기량을 망라하고 궁극적으로 인간 두뇌의 패턴 인식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 감정 및 도덕적 지능에 까지도 이르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기술이 가장 인간다운 특성이라고 여겨지는 정교함과 유연함에 있어 인간에게 맞먹게 되고 나아가 뛰어넘으리라는 것이다.
이제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유추한다는 말이 제대로 맞는지 검증해봐야 할 때이다. 이제까지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 왔다면, 이제부터는 인간과 기계가 같이 만들어가는 전혀 새로운 규범의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세 차례 정도의 혁신적인 산업 구조의 변화가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네 번째로 등장하는 혁신적인 산업 구조 변화라는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첫 번째 산업 구조의 변화에 해당하는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산업의 변화를 의미한다. 철도, 방적기 등이 저변 확대되면서 사람과 가축에 의한 작업들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면서 발생된 변화를 일컫는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공급과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대량 생산 체제로의 변화를 말한다. 전기와 석유화학 기술의 동반 발전으로 인해 에너지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자동 생산 및 지식정보 혁명을 말한다. 디지털혁명이라고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혁명을 기반으로 하되 그 수준을 뛰어넘어, 사물과 사물 간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 공유됨으로써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생산 방식이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경제, 사회 구조가 변화하고 인간의 의식과 생활양식까지 바뀌게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1~3차 산업혁명은 동일한 산업 내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가치사슬을 변화시켜 기존 시장과 경쟁 구도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게 만드는데 주력했고, 여기서 인간이 주역이고 기술과 IT는 보조 역할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동일한 산업 분야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분야나 산업 간에 융합이나 연결을 통해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고 새로운 산업이나 분야를 창출하고, 경쟁력의 원천이나 본질을 바꾸고 선도자가 선점효과를 얻어 전체 시장의 지배권을 독점하게 되는데, 여기서 인간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되어 신기술과 ICT가 주역이고 인간은 보조역에 머물 것이다.

이처럼 3번의 산업 혁명을 겪으면서 국제 무역의 구조도 변했다.  제1, 2차 산업의 생산물은 운반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편적 의미의 무역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제3차 산업의 생산물은 서비스와 지식정보처럼 무형의 자산이다. 산업의 발달은 드디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팔고 사는 것을 시작했고, 이를 지적 재산권의 형태로 무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어떤 식으로 무역이 이루어질 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은 나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 1,2차 산업제품의 유통 구조마저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