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는 스포츠와 인생

 

2019 윔블던 대회만 봐도 그렇다.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선수가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꺾고 2019 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우승을 거머줬다. 조코비치 선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선수다. 2018 작년 우리나라 정현 선수와 호주오픈 4라운드에서 대결 당시 정현 선수에게 3시간 21분 만에 패했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도 영원한 패자가 없듯이 인생에서도 영원한 패자는 없는 것 같다. 조코비치 선수는 윔블던의 불교 사원에서 명상을 할 만큼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우승을 위해서는 체력과 기술은 물론이고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9 윔블던 우승자 조코비치 VS 테니스 황제 페더러 선수

 

조코비치 선수는 1세트에서 3-5로 뒤지며 세트를 내줄 위기에 몰렸었다. 그러다가 상대 페더러 선수가 실수를 했고 그 실수를 틈 타 1점을 획득했다. 이어서 조코비치 선수의 서브 게임에서 극적으로 역전하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조코비치 선수는 이어진 3, 4세트에서도 페더러 선수의 실수를 유발해내며 마지막 혈투에서 우승컵 획득에 성공했다. 조코비치선수의 우승을 축하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품격있는 매너 때문이기도 하다. 2018년 호주오픈 8강 진출전에서 우리나라 정현 선수에게 패한 후 보여준 그의 매너는 품격이 느껴졌다.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매너 클래스도 남다른 글로벌 우승자

2018년 호주오픈 8강 경기 후 승자인 정현선수와 패자인 조코비치선수의 SNS에서는 품격있고 따뜻한 매너가 돋보였다. 세계랭킹 1위였던 조코비치 선수 입장에서는 세계랭킹 58위였던 정현선수에게 패한 것이 결코 유쾌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경기 후 자신의 트위터에 정현선수와 경기에 패한 직후 서로 이야기하는 사진을 올렸다. “믿을 수 없는 퍼포먼스였다. 계속해서 분발하라. 호주오픈을 가져라”는 격려 메시지와 함께 정현선수를 태그하는 품격을 보여줬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태도

 

삶의 태도가 어떤지에 따라서 삶의 질 즉,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노래방에 가면 누구나 자주 부르게 되는 애창곡이 있다. 그 애창곡은 계속 변하기도 한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도 바뀐다. 최근의 애창곡이 무엇인지를 보면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기도 한다.

 

 

애창곡이 자신의 거울이라면

 

노래방은 자주 가지 못하지만 일하면서도 가수 김연자씨의 ‘아모르파티(amor fati)’를 자주 부른다. 멜로디도 좋지만 메시지가 끌리기 때문이다. 아모르파티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 즉, 운명애(運命愛) 적인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어려움 등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 즉 ‘운명애(運命愛)’는 체념하는 것과 같은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는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는 니체 철학을 기본으로 한 개념이다. ‘디오니소스적 긍정(Das dionysische Jasagen)’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니체 철학의 기본은 바로 동일한 것의 무한한 반복 즉,‘영원회귀(ewig wiederkehren)’ 사상이다. 따라서 아모르파티는 순간적인 만족이나 특정한 사건의 긍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삶 전체와 세상에 대한 긍정을 통해 순간의 고뇌와 허무에 용감하게 맞서고 극복하자는 메시지다.

 

 

니체 철학이 담긴 '디오니소스적 긍정'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뜻은 신화에 등장하는 디오니소스 신의 운명에서 나온다. 디오니소스는 어린 시절에 티탄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아폴론에 의해서 다시 부활한 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오니소스에게 죽음이란 존재는 삶을 다시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파괴하는 고통이라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의 부활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라는 니체의 긍정 철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보았다.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파테마타 마테마타

‘파테마타 마테마타’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격언이다. ‘파테마타 마테마타(pathemata mathemata) 란, ’고통으로부터 배운다’라는 뜻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힘든 무게의 고통들이 있다. 어떤 고통들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서 버티기 힘든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 고통과 고난들을 피할 수 없음을 느끼는 순간들을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은 더 자연스럽게 그 고통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고통을 통해서 깨우치는 것이 있음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렌즈 촛점을 스스로 유리하게 긍정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만든다.

 

 

실수를 통해서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 경우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더 빠른 길을 찾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였다! 얇은 유리판 사이에 플라스틱을 끼워 넣은 래미네이트 유리도 우연히 만들어졌다. 실수로 탄생한 이 유리는 여간해서는 바스라지지 않는 성질 덕에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을 구해냈다. 어떻게 보면, 실패란, 시도해 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다. 아무것도 시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실패도 성공도 없으므로. 다만 그것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또 다른 시도 역시 두려워하지 않기에 그것이야말로 바로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아무런 실수나 실패가 없는 인생은

 

IBM을 설립한 토마스제이왓슨은“성공하는 비결은 실패율을 두 배로 높이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실수와 실패와 우연에도 이처럼 나름의 효과가 있는 법이다. 실수는 진정한 실수가 아니며, 실패도 영원한 실패는 아니다. 정도껏 실수를 저지르자. 배우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실수를 기꺼이 환영하자. 정말 부끄러운 것은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는 것이며,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간접적으로 실패를 많이 경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간접적으로 실패를 많이 경험하는 방법, 독서

가능하다면 다양한 책을 통해서 실패를 미리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좋다. 또는 인생의 멘토들을 통해서 그들의 실패를 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 간접경험들이 인간관계에서나 비즈니스에서도 자신의 실패율을 낮추게 해줬다는 지인들이 많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지인들이 가장 많이 한 실수가 있었다. 무엇이냐면, 자신이 승승장구할 때 겸손을 잃고 기고만장했던 태도였다.

 

인간관계에서 하고 싶지 않은 실수들

 

2019 윔블던대회 우승자 조코비치선수를 통해서 본 것처럼 스포츠나 인생에서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없다.  삶 전체와 세상에 대한 긍정을 통해 순간의 고뇌와 허무에 용감하게 맞서고 극복하자는 메시지인 ‘아모르 파티’ 가  중요한 이유다.   고통으로부터 배운다는 의미의 ‘파테마타 마테마타’ 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를 머리에만 넣고 가슴에만 새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상 속에서 이런 메시지를 수시로 꺼내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지인 중에 한 명이 코팅까지 해서 지갑에 항시 넣어 갖고 다닌다는 그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신이 올라갈 때 사람들에게 잘 대하세요. 왜냐면 내려 올 때도 그들을 다시 만날 것이므로- Wilson Mizner -

오늘은 주변을 한번 더 돌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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