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을 다녀왔다. 백두대간 인문답사지로 경북의 고택을 둘러보는 기행이었다. 아내 없이 혼자서 떠난 답사이다. 흔히 예천을 양궁의 고장으로 알고 있지만, 신라시대의 자료에도 지명이 보이는 오래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반이라고 하여, “반(半) 서울”로 불리기도 하였다.

예천 가까이에 가면 병암정(屛巖亭)을 들러보길 권한다. 큰길에서 멀지 않은 곳, 풍광이 아름다운 병암산 천연 암벽 위에 거대한 규모의 정자가 있다. 여름철에는 수풀이 우거져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가을에 가면 풍광이 더욱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2006년에 방영된 TV드라마 ‘황진이“를 찍어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황진이보다는 주연을 맡았던 ”하지원“이 ”장근석“을 만난 장소로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농염한 정자의 아름다움에 비해서 그곳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안타깝다.

조선말 망국을 재촉한 무당 진령군, 그 진령군의 수양아들 이유인이 직접 만든 정자이다. 처음에는 ”옥소정“ 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1920년경에 예천 권씨 문중에서 매입하여 ”병암정“으로 이름을 다시 지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제법 규모가 큰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마루와 온돌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정자 아래쪽으로 연지를 볼 수는 있지만, 3면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쉽게도 대청마루에서는 연지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가리려고 하는 목적이 스스로를 다시 옭아맨 것이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마루에 앉아서 보는 차경인데, 서서 보이는 풍광은 어딘가 언밸런스하다. 그 사연이 있을 것이다.

이유인은 양주 현감으로 재직하다가 한성판윤, 법부대신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인물검색에서는 항일 운동가로 나오는데, 탐관오리가 독립투사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어이가 없다. 병약한 왕자를 구실로 삼아 왕실을 현혹하여 재물을 모은 탐관(貪官)이자 오리(汚吏)였다. 이유인은 예천 금당실 마을에 아흔아홉 칸 저택을 짓고서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일꾼들에게 제대로 품삯을 주지 않아서 기둥을 거꾸로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꾸로 세운 기둥은 폐가 한다는 속설이 있다. 세상살이 다들 비슷하다. 인심을 얻지 못하고 오래 거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대궐 같은 저택은 자취가 없고, 경치 좋은 정자는 예천 권씨의 문중에 넘겨졌다. 베품과 나눔이 부족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예천 권씨도 나름의 아픔이 있었다, 원래는 예천 ‘흔’씨였는데, 고려 29대 충목왕의 휘가 “흔” 이어서, 처갓집 안동 권씨의 성을 따라서 “예천 권”으로 성을 바꾸었다. 전국에 5천 명 남짓한 예천 권씨가 있다고 한다. 안동 권씨와는 뿌리가 다름에도, 여전히 분가한 성씨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자신의 성을 바꾸어야 했던 기구한 문중, 아름다운 정자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가을이 오면 다시 찾고 싶은, 나의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고 싶은 곳이다. // 끝

이동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옥고택관리사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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