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윤사월, 박목월

윤사월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태헌의 한역】


閏四月(윤사월)


松花粉飛孤峰下(송화분비고봉하)


四月日長黃鳥鳴(사월일장황조명)


山守獨家眼盲女(산수독가안맹녀)


附耳門柱暗暗聽(부이문주암암청)


* 四月指閏四月(사월지윤사월)



[주석]


松花粉(송화분) : 송화 가루. / 飛(비) : 날다. / 孤峰(고봉) : 외딴 봉우리. / 下(하) : 아래.


四月(사월) : 여기서는 윤사월(閏四月)을 가리킨다. / 日長(일장) : 해가 길다, 날이 길다. / 黃鳥(황조) : 노란 새, 꾀꼬리. / 鳴(명) : 울다.


山守(산수) : 산지기. 산직(山直)과 같은 말. / 獨家(독가) : 외딴집. / 眼盲女(안맹녀) : 눈이 먼 여자.


附耳(부이) : 귀를 붙이다, 귀를 대다. / 門柱(문주) : 문설주. / 暗暗(암암) : 몰래. / 聽(청) : 듣다.




[직역]

윤사월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아래,


윤사월 해가 길어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가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사월’은 윤사월을 가리킨다.



[한역 노트]


역자는 이 시를 한역하면서 문득 소름이 돋았다. 한시(漢詩)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운자(韻字:영시의 rhyme과 유사)가 저절로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역자는 이 시가 혹시 기존의 한시를 번역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해보게 되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한국고전종합DB’는 물론 중국의 ‘Baidu’, ‘사고전서(四庫全書)’, ‘Google’ 등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이 시의 원형으로 볼 만한 한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참고로 밝히자면 가곡 ‘동심초’의 가사는 중국 당대(唐代)의 설도(薛濤)라는 여류 시인이 지은 한시의 번안(翻案)이다. 그제서야 역자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아! 선생께서 누군가 한시로 한번 옮겨보라고 이렇게 시를 지으신 것이로구나!”라고… 칠언절구(七言絶句)가 아니라 칠언고시(七言古詩)인 이 시의 운자는 ‘鳴(명)’과 ‘聽(청)’이다.


2019. 6. 27.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