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아름다운 산이 있다. 서울을 둘러싸고 넓게 펼쳐져 있다. 서울의 허파로 숲이 울울창창하다. 한강과 삼각산이 한눈에 보이는 영산이자 명산이다. 소나무를 많이 볼 수 있어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리었다. 목멱산 잠두봉에서 바라 본 서울은 산과 산이 연결되어 아늑하다. 안산에서 무악재 너머 인왕산 곡성과 정상이 보인다. 인왕산 기차바위를 따라 저 멀리 삼각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하늘 아래 비봉과 향로봉, 보현봉 그리고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한 뼘 눈앞에 펼쳐진다. 도봉산과 수락산도 문필봉 옆에 이어지니 서울은 마치 거대한 산과 같다.



  서울의 상징인 목멱산 N타워는 방송과 통신의 주요 거점이다. 600여 년 전 전국의 봉수가 5군데로 모여 목멱산 봉수대에 연결 되었다. 목멱산 경봉수라 불리었다. 연기와 횃불로 신호를 전하여 경복궁 정전에 빠르게 알렸다. 도성 안 가장 중요한 산이다. 목멱산의 정상에 팔각정이 있다. 목멱대왕이라 칭한 목멱 산신에 1925년까지 제를 올린 공간이었다. 성신(星辰)에게 왕이 직접 제를 지내는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곳이다. 기우제와 기청제를 지냈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서울의 관문으로 한강을 건너 꼭 지나야 하는 길목에 목멱산이 있다. 도성을 경계로 장충동과 한남동이 접한다. 이태원동과 필동은 터널로 하나가 되었다. 회현동과 후암동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숭례문에서 성곽길 따라 걸으면 백범광장을 만날 수 있다. 드넓은 광장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마주한다. 독립운동의 상징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해방 후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 선생 상(像)이 있다. 바로 옆 백범 김구 선생 상이 오른팔을 펼치며 한강과 효창원을 바라보고 서 있다. 목멱산 자락은 역사 공간이자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100여 년 전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언덕을 오르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보인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시기 전에 쓴 유묵이 돌에 새겨져 우뚝 서 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등 안 의사 광장에 ‘장부가’가 울려 퍼진다. 의군, 안중근 의사 상이 아침 햇살에 금빛으로 비치니 장엄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바로 옆에 조선신궁이 있었다. 을사늑약 이후 목멱산에는 일본공사관과 통감부 및 통감관저도 있었으니 아이러니 하다. 조선총독부가 신축되기 전까지 총독부 건물도 있었다. 남산신사는 1925년 조선신궁이 건설되며 국사당이 인왕산 선바위 옆으로 이전된 후 초라한 굿당이 되었다.

 



  왜성대공원으로 문을 연후 한양공원이 되었으나 곧 남산공원으로 불리어졌다. 600여 년 동안 역사 속 목멱산은 남쪽의 산인 보통명사 남산(南山)으로 격하됐다. 일제강점기에 건설 된 순환도로에 벚나무 600그루를 심고 ‘남산 순환도로’로 불리어졌다. 해방 후 목멱산에 뚫린 터널은 모두 남산터널로 불리어지고 있다. 아쉽고 늦었지만 이제 원래 이름으로 불러주면 어떨까?

  이제 그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목멱은 아침 해를 찬란히 비추어 줄 것 같다. 서울 한복판에 목멱산은 ‘아름다운 산’ 나아가 ‘지혜로운 산’으로 불리어지면 좋겠다.

   말에는 역사가 묻어 있다. 더욱이 이름엔 더더욱 그러하다.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것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남산은 목멱산이다. 참 좋은 이름이다.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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