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알파걸은 미국 하버드대의 한 아동심리학 교수가 2006년 출간한 한 저서에서 처음 정의한 말로, 공부와 운동·리더십 등 모든 방면에서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 엘리트 소녀들을 일컫는 말이다. 1등. ‘최고’를 의미하는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 ‘알파(α)’를 쓴 것이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똑똑하기로는 어떤 남학생에게도 뒤지지 않는 여학생들이 이젠 더 이상 드물지 않다. 이미 세계적인 지도자 중에 알파걸이었을 여성 지도자들이 많다.

때를 기다리며 포용하고 양보한다
우리에게는 ‘리더는 강인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결단이 필요할 땐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소신껏 일처리를 하길 바라며, 온갖 유혹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이면에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하나 더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 뒤에 유연하고 포용적이며 양보할 줄도 알고 심지어 따뜻한 감성까지 두루 갖추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두 부분이 양립하기 힘든 덕목임에도 너무 강하면 포용력이 없다고 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우면 유약하다고 한다.
분명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보통 사람도 아니고 리더라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사안에 따라 강온 방법을 달리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이상적인 방법이다.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어필해야 할 때는 강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관용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일관해야 할 때도 있다. 

독일의 첫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은 고질병으로 허덕이는 조국의 경제를 구해달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았다. 2007년 프랑스 대선의 노동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 역시 같은 조국의 요구를 받고 최고통치권 가까이 갔다가 도전에 실패한 여성리더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종이 한 장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응방식의 유연함과 경직성이 승패를 갈랐다고 할 수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병 치유를 위해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대처 식의 중도 노선을 택하는 유연성을 보인 반면, 루아얄 후보는 프랑스병의 원인이 된 사회당의 정책을 더욱 고수하는 경직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포스트 대처라는 소리를 듣지만 유연함, 포용, 양보가 그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2002년엔 총리에 오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음에도 대의를 위해서 과감히 자신의 야망을 포기할 줄 알았는가 하면, 경제지표가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도 전임자 슈뢰더 총리가 개혁정책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라는 말로 타인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다. 메르켈에게 정치적인 계산이 있는 언행이었다고 해도 국민 여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들은 메르켈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그리고 양보와 포용의 리더십을 보면서 그를 독일의 구원투수로 생각했던 것이다.

흔들림 없는 강직함 뒤에 따로 소통할 창구를 마련하라
그러나 메르켈 총리를 이야기할 때 안에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과 양보와 포용을 말하기보다 겉으로 드러난 강한 면모가 더 자주 화제가 된다. 메르켈 총리는 취약한 지지기반을 겸손과 인내로 극복하고 있지만, 일단 의견일치를 보면 단호하게 일을 추진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근래 찾아보기 힘든 직설적이고 강경한 리더로 손꼽힌다. 주요 사안에 대해서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일단 결정을 내린 후에는 추진력 있게 실행하며 입장을 번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부터 강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메르켈은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기꺼이 진지하게 경청한다. 모든 의견을 듣고 취합한 후 일단 결정을 하게 된 이후에는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단호하게 행동하면서도 때로는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 한에서 융통성 있게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메르켈은 존경과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메르켈의 직설적인 화법, 강경한 이미지는 그의 전부가 아님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대학시절 전공인 물리학에만 시간을 바치지 않고 파티와 여행, 아르바이트 등을 두루 즐기며 만끽했던 메르켈이 알려지고, 남편보다 축구를 더 좋아하며 2006년 월드컵 때 독일 축구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던 엄마 같은 꾸밈없는 표정을 가진 총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독일국민들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부드럽고 편안한 내면을 국민들이 알아봐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온 전략을 갈등의 현장에서 구사하라
이제까지 본 것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만 가지고 설득할 수 없다. 어떻게든 부드럽고 원만하게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가져야 한다. 탱크같이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오해받을 때도 있는 메르켈 총리가 국민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국제사회가 메르켈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메르켈은 자타가 공인하는 탁월한 협상가로 여러 정치 의제를 성공적으로 조율해온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막을 내린 G8 정상회담에서만 해도 여러 가지 현안을 놓고 어느 때보다 각국의 이해가 얽혀 있던 상황에서 탁월한 중재력을 발휘하여 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온실가스 감축 합의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로가 있다. 그녀의 훌륭한 협상력과 유창한 영어 실력은 미국의 외교영향력을 견제하는 유럽의 목소리로 국제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한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고 한다. 독일 내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리더가 나라 밖에서, 혹은 조직 밖에서도 커뮤니케이션에 힘을 받을 수 있다. 국민들은 독일의 위상을 다시금 국제사회에 영향력 있게 올려놓은 메르켈 총리에게 지지를 보내지만, 국민의 지지가 전혀 없이도 그런 파워가 생겼을까 반문하게 된다.

국가도, 기업도 리더 한 사람의 힘이 너무나 중요하다. 조직구성원이 자랑스러워하는 리더, 조직구성원 전체를 드높이는 리더, 원칙과 소신에 흔들림이 없는 꿋꿋한 리더의 모습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집안을 이끄는 가장 같은 메르켈 총리처럼 믿음직한 것이어야 한다. 믿음직한 경영, 소신이 흔들림 없는 경영으로, 조직구성원과 뜨겁진 않지만 은근하고 따뜻한 신뢰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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