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서 등등 많은 이유가 있다. 공통적인 것은 누군가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이고, 그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각자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목적은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게 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에서 너무 스킬만 생각하고 하다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감성을 울려 마음은 움직여라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싶으면 이렇게 해보라는 몇몇 조언이 있다. 술을 먹여보라, 운전을 하게 하고 옆 좌석에 앉아보라, 심지어는 밤을 새고 화투를 쳐보면 그 사람 인간성을 알 수 있다는 조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혹은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거나 암울한 위기에 빠졌을 때처럼 그 사람을 잘 알게 된다는 말처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은 별로 없어 보인다.

기업의 리더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현실에 늘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누구나 한번 이상을 맞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했는가를 돌아보라. 리더의 모습으로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했는가.

암울하고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는 딱딱하고 관념적인 형식의 소통방식으론 조직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을 그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증거를 들이밀면서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얘기함으로써 호소력을 갖고 고통분담마저도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사실 힘들다. 그러나 짐을 나눠지고 가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같이 고생을 해 보자”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동참을 요구하는데 외면할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탁월한 커뮤니케이터로 불리는 까닭은 ‘재앙’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대공황 시절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교집합인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가능한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분열보다는 단합을 유도하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라디오를 통해 대중들에게 직접 연설하면서 그의 그 유명한 ‘노변담화(Fireside Chat)’는 시작되었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형식이 아니라 난롯가에서 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듯 국민에게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연설에 붙여진 이 이름은 1933년 3월 12일 라디오를 통하여 뉴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기 시작한 담화에 처음 붙여졌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 무렵 취임하여 막연하게 두려워하지 말자,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하나하나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이 미국에 빛과 에너지를 만든 발전소였던 그가 생산한 첫 번째 희망이었다. 그 당시 미국은 구체적인 구제책보다 사람들에게 희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루즈벨트는 잘 알았다.

한 사람의 스토리를 가늠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하지만 강력한 리더십은 쉽게 독재 권력으로 치닫기 쉽다. 루즈벨트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4선까지 성공한 대통령으로 1933년 3월부터 1945년 4월까지 뇌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12년을 넘게 집권했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는 정당한지 모른다. 그러나 똑같은 조건과 시기였지만, 루즈벨트와 히틀러의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바른 목표 설정, 그 목표를 향한 자신감과 용기와 도전정신, 전체를 위해서 개인을 무모하게 희생시키지 않고 목표보다 인간을 우선하였다. 특히 반대파를 배척하지 않고 함께 설득해 동참시킨 것은 루즈벨트 커뮤니케이션의 결정판이다.

그는 어느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화제를 가지고 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을 화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실천했던 사람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럼으로써 반대파까지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루즈벨트가 가진 협상과 설득의 8할은 이 롤플레잉 기술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에게도 역사가 있듯 다른 사람에게도 삶의 흔적이나 궤적이 있기 마련이다. 한 사람, 한 조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히스토리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여러 정보를 통해 가늠해본다거나 이해하면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야할 지 알게 해준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만으로 그 끝이 언제나 불을 보듯 뻔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세세한 커뮤니케이션 스킬보다 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다.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이야기가 즐겁다
루즈벨트는 재임시절에 거의 초조해하거나 낙담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엔 두 개의 중요한 비결이 있다. 하나는 남다른 낙관주의, 그리고 또 하나는 그것을 세련된 유머로 표현하는 능력이었다. 걱정스럽다든가 마음이 초조할 때는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루즈벨트는 휘파람을 분다고 했다. 다시 기자가 대통령께서 휘파람을 부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다고 하자, 루즈벨트는 말했다고 한다.
“당연하죠. 아직 휘파람을 불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이 유머에는 루즈벨트의 여유와 배짱, 그리고 낙관주의가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의 낙관주의는 뛰어난 유머감각이 뒷받침된 견고한 심성 덕분이다. 국가의 최고 리더가 언제나 여유와 유머를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큰 상징이다. 국민들에게 긍정과 낙관을 심어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루즈벨트를 통해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힘을 배울 수 있다. 그는 “밧줄 끝까지 갔을 때는, 매듭을 묶고 매달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기업이 만약 밧줄 끝까지 밀려나 있을 때 리더는 어떻게 조직구성원을 설득해야 할까? 루즈벨트 식이라면 우선 사실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직 밧줄이 있는 상황을 낙관하며 함께 힘을 모을 것을 설득할 수 있다. 그것이 리더의 자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도, 자신의 스킬을 뽐내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솔직하고 분명한 메시지로 동의와 지원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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