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로부터...
칼럼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랜만이지요. 8월 휴가도 다녀오셨을 것이고 다시 9월을 맞을 채비하고 계시지요? 저도 올 여름에는 건강 튜닝을 했답니다.^^ 치아 치료 받느라 꼬박 석달을 투자하는데요. 이렇게 하면 앞으로 10년은 튜닝 걱정 없겠지요? 덩달아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정기적으로 치과를 다녀오라고 합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치과 역시 지날수록 견적(?)이 늘어나더라구요.
이번부터 정치인 특집 원고를 업뎃합니다. 한 나라의 리더는 말부터 다르다. 바로 정치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이지요. 말하기, 유머, 감성, 개성... 여러 측면에서 한 나라의 리더들은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부터 1주일간 매일 업뎃입니다! 늘 좋은날 만드세요!!!
- 아직은 땡볕인 일요일 오후에... 전미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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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빌리 브란트-
백 마디를 능가하는 한 가지 행동을 하라

정치는 ‘말 잔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말로 주장되고 말로 표현되며, 서로 정치적 수사로 심리전을 펼치고 지도자의 말 한 마디로 국가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주식시장을 출렁이게 하기도 한다. 운동이나 노동처럼 몸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머리와 말로 하는 것이 정치의 모든 것처럼 보인다. 청중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물론, 정적에게 승리하기 위해 고도의 심리전에서도 화려한 상징과 비유를 쓴다. 따라서 말을 잘하는 정치 지도자는 큰 자산을 갖는 셈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현란한 수사를 그쳐라
하지만 정치는 ‘말’이 전부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반드시 그 말을 뒷받침하는 실천적인 행동이 필수적이다. 좋은 정치인과 나쁜 정치인을 구분하는 기준 중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느냐 하는 문제일 때가 많다. 자신은 감출 것이 없고 정직하고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더러운 부정부패 게이트에 연루되거나 뇌물을 받아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히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또 어떤 문제에 대해 잘못했다고 하면 그에 따른 적절한 속죄의 행동 또한 따라야 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늘 과거사에 대해 ‘유감’ 표명은 하지만, 그게 형식적인 수사에 불과하거나 그마저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어떤 책임도 속죄도 보상도 하지 않고 있고,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망발을 아직도 잊을 만하면 들어야 한다. 보상이나 속죄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유감표명이나 사과는 ‘빚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리더의 행동이 따르지 않는 현란한 수사는 전 국민, 혹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대형사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한 가지 행동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우가 독일과 폴란드 사이다. 폴란드가 독일에게 받은 상처와 분노의 역사는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폴란드 국민들이 느끼는 독일에 대한 감정은 우리보다는 훨씬 감정적으로 순화되어 있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한 관계가 되기까지 거기엔 독일의 빛나는 한 정치 지도자의 노력이 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이다.

빌리 브란트는 1970년 독일과 폴란드 관계정상화를 규정하는 ‘바르샤바 조약’ 체결을 위해 독일 총리로는 처음으로 폴란드를 방문하게 되는데,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깊게 자리 잡은 폴란드 국민들은 매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가 나치 희생자 기념관에 안내되었을 때, 전 세계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비에 젖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은 브란트 총리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폴란드 국민들은 함께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바로 ‘브란트의 무릎 꿇기(Kniefall in Warschau)’ 사건이다. 국가권력의 정점에 있던 독일 총리가 무릎을 꿇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사랑의 고백’은 화해의 상징으로 기록돼 역사에 남아 있다. ‘유감의 뜻’을 표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사과가 아니다.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를 더할 수 없이 확실한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폴란드 국민들의 응어리진 아픔을 크게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때때로 한 마디 말이나 한 가지 행동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그 한 가지에 얼마만한 진심의 무게를 싣느냐가 관건이다. 그 판단은 상대가 한다. 상대가 아주 악의적으로 외면하지 않는다면 진심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한 가지 행동 뒤엔 백 가지 신뢰가 있다
막힌 커뮤니케이션의 ‘한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같은 ‘한 가지 행동’은 그렇게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한 가지 일이 성공하려면 백 가지 작은 일이 잘 이리 맞춰지고 저리 맞춰지고 해야 한다.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는 것도 무수히 작은 행동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의미다.

무엇인가 조금 노력하다가 ‘나는 할 만큼 했다’고 한 적은 없는가? 크게 인심 써서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상대가 단번에 흔쾌히 받아주지 않으면 다시 금방 화낸 적은 없는가? 오랜만에 직원들에게 최고경영자로서 크게 처우 개선을 해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직원들은 감사하게 여길 줄 모르고 더 좋은 것, 더 큰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해주려고 했던 것까지 해주고 싶지 않았던 경험은 없는가?

오래된 상처는 오래 치료해야 한다. 오래 마음을 닫고 있는 대상에겐 사랑하는 사람에게 끈질기게 구애하듯 마음의 문을 두드려야 하듯, 문이 열리고 시원한 소통의 바람이 부는 것은 생각지 못한 어느 순간 시작될 수 있다.

‘무릎 끓기’ 한 방으로 체증처럼 짓누르던 폴란드의 상처가 크게 회복되었던 것은 빌리 브란트가 1970년부터 ‘동방정책’을 내세우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끊임없이 화해와 친선을 추구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왕따 당하기 십상이었던 독일을 용서하고 유럽사회 안에 받아들여달라는 무언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동방정책 이후로 20년 남짓 후에 통일이 되었지만 빌리브란트의 끈질긴 화해요청과 용서받기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다. 갈등과 상처의 열쇠는 강자, 혹은 가해자에게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용서와 화해의 정도가 유동적이다.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소통의 절정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경영자나 리더도 마찬가지다. 직원들과 아무리 큰 갈등이라도 평소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관리해왔느냐에 따라 단 한 번의 강력한 행동으로 ‘상황 끝’을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행동 뒤에 평소 백 가지 신뢰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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