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과 성숙된 경험

실패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성공확률이 180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끝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를 성공의 발판기회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실패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실패는 결코 달콤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론 쓰리고 때론 너무 아프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잘 숙성하면 성숙된 경험이 된다.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게 되면서 한발짝 더 발전하게 된다.

전진하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는 자벌레처럼

얼마 전 야심차게 준비한 도전에 쓴맛을 봤다. 기분이 무척 상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우리 회사의 문제점과 보완할 점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기에 수업료를 낸 셈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사하지만 예산규모가 더 큰 프로젝트에 입찰할 기회가 왔고, 나는 예전 프로젝트에서 의논하고 준비했던 자료를 토대로 입찰을 보기 좋게 따냈다. 한 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우리는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벌레가 전진하려면 몸을 뒤로 젖히듯이 발전을 위해서는 실패라는 용수철을 밟아야 반동의 힘을 얻는다.

실패라는 용수철의 반동힘


나팔꽃은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때 햇살을 받고 핀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밤중에 아침햇살 같은 인공 먼동을 꽃잎을 접고 있는 나팔꽃에 비쳤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곧 나팔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햇빛이 아니라 어둠임인 것이다. 어느 만큼의 어둠을 쪼여야만이 나팔꽃은 핀다. 인생이 피려면 어느 만큼의 실패가 있어야 함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살짝 미끄러졌을 때 뭐라도 줍고 일어서는 사람들

넘어졌을 때 그대로 주저앉아버리면 그것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살짝 미끄러져서 넘어졌을 때 무엇이라고 줍고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생레슨이다.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도 자유투 100%를 성공하진 못한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851개의 홈런을 쳤지만 1330번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도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그 실패들을 한 번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는 그 실패들을 성공에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데 도움을 주는 성공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실패한 사람들과의 가장 큰 차이다. 바로 이런 사고의 차이, 실패와 성공을 구분하는 잣대가 달랐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조차도 또다른 성공의 발판, 즉 기회으로 생각하는 힘! 그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 실패력이다.

실패를 기회로 여기면서 극복하는 힘, 회복 탄력성!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 그 성공 완벽주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인생 전반에 걸쳐 실패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회복탄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백만을 받았던 학생보다는 70점도 받아봤던 학생이 느끼는 올백의 가치는 더 크지 않을까? 30평에만 살았던 사람보다는 지하단칸방에서 살아봤던 사람이 느끼는 30평의 행복이 더 크지 않을까?

성공의 한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습관

내가 존경하는 한 지인은 아내와 둘이 모은 돈을 가지고 사글세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한푼 두푼 모아 점차 전세로, 살림을 늘려나가면서 가족과 이루는 성취감에 행복했다고 한다. 평상시 내게 가슴에 새길 말을 자주 해주는 선배는 나를 만날 때마다, 실패를 모르는 성공인은 절대 본받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아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진짜 성공인의 떳떳한 실패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성공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거듭되는 실패를 겪어야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극복하지 않고 성공한 예는 찾기 어렵다.
우선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실패의 원인과 유형을 분석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을 우리는 ‘진짜 성공인’이라 부른다. 이제부터는 우리도 떳떳하게 실패하자.‘무지개는 비 온 뒤에 뜬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을 떠올리면 실패를 해도 실수를 해도 위안이 되고 힘을 얻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사촌

맞는 말이다. 실패를 완벽하게 피해가는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라 성공의 사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해서 보통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어쩌면 우리는 성공만을 보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성공했는지 알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다빈치의 스케치, 피카소의 습작,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공통점이 뭘까?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엄밀한 관점에서 보면 완성에 이르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사실이다.

소풍을 가기 전날의 셀렘이 더 진하듯

나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순간은 실패에서 성공으로 변화해가는 그 과정의 순간이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 비록 한 발짝 걷고 넘어지고 두 발짝 걷고 넘어지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어제보다 몇 발짝 다 걸은 것에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듯이. 소풍을 가는 날 보다 소풍을 가는 전날에 설렘이 더 진하듯이.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가 가장 행복하듯이, 상상한 언덕위의 집이 더 아름답듯이. 실패를 겪은 후에 얻는 성공은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준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로 실패를 변명 하기 바쁘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행동으로 표현한다.

결여와 실패는 행복감 증폭제

어렸을 때 간절히 갖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빨간색 긴 부츠였다. 왜냐하면 친한 부잣집 친구가 빨간색 부츠를 내게 자랑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었던 부잣집 딸이었던 친구에게 그 빨간색 긴 부츠는 별 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며칠을 조르고 졸라서 겨우 살 수 있었던 나의 어렸을 적 빨간색 발목까지 오는 반부츠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록 내가 원했던 무릎까지 오는 긴 부츠는 아니었지만 그 빨간색 발목 부츠는 내게 지금까지도 ‘행복한 선물’로 영원히 기억된다.

향수가 느껴지는 빨간색 부츠

내가 신고 싶었던 것은 무릎까지 오는 빨간 부츠였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복사뼈 조금 위까지 오는 반부츠를 사오셨다. 그 당시에 살짝 실망했었다. ‘엄마는 내가 뭘 신고 싶어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하면서 하루정도 투정한 후에 신나게 신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긴 부츠가 짧은 반부츠가 된 것은 바로 언니의 책값 때문이었다. 엄마가 아껴두던 비상금으로 내 부츠를 사주려고 했었는데 그 당시 언니가 급하게 새책이 필요했던거다.

인생의 또다른 선물, 실패

결국 언니 책값으로 내 부츠의 반이 날아갔던 것이다. 그때는 언니가 살짝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발목까지 오는 빨간색 반부츠가 금새 좋아졌다.그래서 따뜻한 봄에도 계속해서 신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이 빨간색 발목부츠를 내가 너무 쉽게 선물로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렇게까지 애틋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실패 없이 성공만을 경험했을 경우에는 그 기쁨이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
결국, 실패란 것은 보다 강렬한 기쁨과 만족을 오랫동안 느끼게 해주는 인생의 또다른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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