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리오카 여관을 일찍 나섰다. 여주인의 친정어머니가 떠나는 나를 현관에서 배웅했다.

신칸선으로 신아오모리역에 도착. 재래선으로 갈아타고 5 정거장 앞의 나미오카역에서부터 걸었다. 오늘은 일본의 땅 끝 아오모리다.

국도를 걷는데 인도가 제대로 없다. 대형 트럭이 빠른 속도로 지날 때는 몸이 흔들렸다. 도로변에 마을이 없고 어쩌다 보이는 마을은 도로 저 멀리 깊은 산골짜기에 있다.

아오모리 시내에 들어서기까지 이런 길이 이어진다. 그동안 걸어온 길 가운데 가장 무미건조한 길이다. 아오모리는 역시 오지다. 오늘은 27킬로를 걸었다.

해안도로에서 멀리 보이는 하코다테시 전경

아오모리역에 도착해서 열차 시간을 확인했다. 내일은 북해도의 초입 하코다테다. 이제 일정도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하코다테까지는 해저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신칸선만 다닌다.

저녁에 최동환 사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호시노도 삼십여 년만에 만났다. 그는 오랜 세월 만나지 않았지만 마치 어제도 만났던 사람처럼 편안했다.

그는 이곳 미치노쿠 은행의 OB인데 과거 업무 관계로 교류가 있었다. 옛날의 추억 그리고 삼십여 년 살아온 얘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손주 사진을 보여 주었다.

다음날은 하코다테로 이동했다. 해저터널을 지나는데 기분이 묘하다. '세이칸 해저 터널 프로젝트'는 쓰가루 해협 연락선 침몰 사고를 계기로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54년 발생한 '토야마루 호' 사고는 타이타닉 호 이후 최대 규모의 해난 사고였다. 1000여 명의 희생자가 났다. 공사는 1961년에 시작되어 27년이 걸렸는데 1988년에 개통이 이루어졌다.

총길이는 53.85킬로이며 해저구간만 23.3킬로다. 터널의 최저 부분은 해발 마이너스 240미터로 수심 140미터의 100미터 아래에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이며 2016년에는 신칸선도 개통되었다.

하코다테역에 도착해서 우선 숙소를 확보한 다음 1량짜리 재래선을 타고 모헤지역으로 갔다. 이 코스는 이곳 관광안내센터가 추천해 주었다.

최 사장과 같이 하코다테역을 향해 해안 국도를 걸었다. 저 멀리 하코다테산의 전망대가 보인다. 8킬로 지점에서 겨우 나타난 식당에서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식당을 나서는데 주인이 얼음같이 차가운 캔커피를 서비스라며 건네준다. 먼길을 걸어온 나를 환영하고 격려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과 부지런히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남쪽 가고시마에서부터 걸어서 왔다는 얘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늘은 23킬로를 걸어 누적거리 1000킬로를 돌파했다.

저녁에 카마다를 만나 이곳의 싱싱한 회와 초밥을 먹었다. 계산을 우리가 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하코다테를 찾아준 귀한 손님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지난 3월 말 '제7회 조선통신사 우정 걷기 행사' 전야제에서 처음 만났다. 65세 때부터 3년간 친구와 같이 북해도를 일주한 맹렬여성이다. 북해도는 둘레가 2,800킬로에이른다.

하코다테산 정상에서 본 야경

카마다와 헤어진 후 최 사장과 케이블카를 타고 하코다테산 정상에 올랐다. 이곳 전망대에서 백만불 짜리라는 일본 최고의 야경을 즐겼다. 최 사장이 그녀를 위해 작은 선물을 구입했다.

다음날 아침 8시 하코다테역에서 카마다를 다시 만났다. 그녀의 지인 스가와라가 함께였다. 스가와라의 남편이 차로 우리들을 출발 장소인 하코다테 산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차로 언덕길을 오르는데 좌측으로 공동묘지가 보인다. 카마다가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가족 묘를 가리켰다. 그는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단가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빠짐없이 실려있다.

우리 근대의 서정시인 백석이 그의 시를 좋아해서 필명을 백석으로 했다고 알고 있다. 돌 석자는 일본어로 '이시'라고 읽는다.

그의 고향은 북해도의 바다 건너 모리오카인데 왜 이곳에 묻혔을까. 평생 고생만 시킨 사랑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서였을까. 이곳 북해도는 아내의 고향이다. 결혼을 일찍한 그는 26살로 요절했다.

군국주의에 반대한 저항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본다.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은/ 꽃 사들고 돌아와 아내와 놀았노라

동쪽 바다의 조그만 섬 바닷가 백사장에서/ 나 울다 젖은 채로/ 게와 어울려 노네

기름띠가 흘러나온 듯 보이는 다치마치 곶 앞바다

인근 다치마치 곶에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독특한 바다다. 마치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띠가 여기저기 떠 있는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류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출발에 앞서 전망이 좋은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마마쓰에서 관광차 왔다는 여성에게 부탁을 했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너무 좋아한다. 최근에 전주와 서울을 다녀왔다고 했다.

하코다테 산 길을 걸었다. 19세기 중엽 신정부군에 저항한 막부군과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이 하코다테다. 죽은 저항군 사무라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서 있었다.

그리고 토야마루 호 해난사고의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도 보인다. 1954년 발생한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총 1,309명중 1,159명이 희생되고 150명은 구조되었다. 희생자 전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카마다의 오빠도 이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장본인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간 아버지는 희생자들 속에서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가족들이 장남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구조된 것이다.

당시 태풍 '마리'의 위력은 엄청났다고 한다. 엄마 아버지는 문짝을 필사적으로 붙들었고 그녀는 란도셀 가방을 메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새 책가방이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고급 주거단지를 둘러보았다. 근대에 지어진 공공건물 성당 교회 그리고 외국 영사관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국인 묘지도 둘러보았다. 피장자는 주로 러시아인이다. 근처의 모토마치 공원에서 카마다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었다. 토요일 좋은 날씨에 마치 피크닉을 나온 기분이었다.

오늘 저녁의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어두워지기 전에 삿포로에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녀들의 시간을 더 이상 뺏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빠른 걸음으로 역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12시 15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있었다. 6분 전이다. 그들에게 서둘러 인사를 하고 홈을 향해 뛰었다. 자유석 칸에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삿포로까지는 특급열차로도 4시간이 걸린다.

걱정을 했지만 삿포로 역 관광안내센터에서 친절하게 가까운 숙소를 소개해 주었다. 저녁에 최동환 사장을 만나 이곳 최고의 번화가 스스키노로 갔다. 고깃집에서 그가 내 부족한 영양을 채워주었다.

슈이치로 교수 부부와

일요일에는 미와 슈이치로군이 다니는 '신삿포로 성서교회'에 갔다. 나는 2년 전 그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는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일본인 교회 미와 목사의 아들이다. 현재 북해도 대학의 교수로 있다.

11시부터 시작하는 예배에 참석하고 점심을 먹으며 신도들과 교류했다. 이곳은 박영기 목사가 33년 전에 개척한 교회인데 신도들은 대부분이 일본인이다.

북해도는 역사가 150년 남짓 되는 신개척지다. 본토에서 흔한 신사와 절이 이곳에서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다.

오늘 서울에서 후배 최석원 사장이 온다. 그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교회 다녀오는 길에 열차에서 내려 약 10킬로를 걸었다.

다음날 최석원 사장은 오타루 등 삿포로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는 일본과의 무역을 오래 해서 일본어에 능하며 삿포로도 낯선 곳이 아니었다.

최동환 사장을 삿포로 역에서 만나 해발 600미터의 모이와산을 올랐다. 오늘은 삿포로의 기온이 30도가 넘는 이상기온으로 도로를 걷기는 힘든 조건이다.

월요일인데도 생각보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다. 만나는 사람들과 열심히 인사를 나누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곰이 출몰하니 주의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다시 산을 오르는데 모녀로 보이는 두 여성이 내려온다.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곤니치와!(일본인들의 낮 인사)" 그런데 이들은 한국인들이다.

모이와야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삿포로 시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전망대까지 왔다가 걸어서 내려 가는중이라고 했다. 엄마는 작년에 나가노현의 북알프스 3,000 고지도 올랐다고 했다. 맹렬 한국인이다.

나무 그늘 속을 걸었지만 34도의 한여름이다. 땀이 흘러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수건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정상에 올라 전망대 자판기에서 뽑아 마신 콜라의 맛이 환상적이었다.

5시간 정도 산길을 걸었다. 내려와서는 가까운 전철역까지 꽤 걸어야 한다. 땡볕에 긴 아스팔트 길이 만만치 않다. 이 한적한 길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택시를 운 좋게 만났다.

택시 기사는 과거 무역 관계로 한국에 이십여 차례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주 2회 정도는 김치를 사서 먹는다. 김치만 있으면 밥 한두 공기는 뚝닥 해치운다고 했다.

저녁에는 '삿포로 비루엔'에서 최동환 사장의 송별회를 가졌다. 그는 다음날 귀국한다. 중국인 단체손님들이 많아 고기와 맥주를 '무한리필'하는 대식당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주문형 식당에서 오랜만에 양고기 징기스칸과 공장에서 갓 생산된 삿포로 생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최동환 사장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 일본과 중국 무역을 오래한 그는 일본어도 유창했다. 좋은 친구를 얻었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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