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마와 유람선

오늘은 일요일이라 걷기를 쉬는 날이다. 시민공원에서 2일째 축제 구경을 하고 일본 3대 절경의 하나인 마쓰시마로 향했다.

이곳 앞바다에는 무려 200여 개의 섬이 떠있는데 특이하게도 섬마다 소나무 숲이 있다. 그래서 마쓰시마(소나무 섬)라고 불린다. 2011년 동북대지진 때에는 섬들 덕분에 쓰나미를 피했다.

이곳에서 잡은 조개 굴 새우 등을 즉석에서 구워주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느긋하게 풍광을 즐기며 관광객들과 대화도 나누었다. 긴 다리가 놓인 섬으로 건너가 섬을 일주했다.

귀가 시에는 올 때의 '마쓰시마 해안역'이 아니라 15분가량 걸어 '마쓰시마역'에서 타기로 했다. 길을 근처 식당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친절한데 설명이 너무 자세하고 길다. 일본인들이 대체로 비슷하다.

설명을 듣다 보면 이미 앞의 절반은 잊어버린다. 젊은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아는 길이라도 반드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한다. 정확하게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틀을 이곳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숙박비도 싸고 세탁기도 세제도 무료다. 인심이 좋다. 마당의 빨랫줄에 세탁물을 널면 아침이면 바짝 마른다. 자연풍에 건조된 옷이라 입으면 기분이 상쾌하다.

41세 된 노총각이 주인인데 사람이 순박하다. 아침에 숙소를 떠나면서 그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비록 이틀이라는 짧은 체류였지만 대화를 많이 나누었고 정도 들었다.

머리가 천장에 수시로 부딪치는 협소한 공간으로 마치 소꿉장난하는 듯한 좁은 침실이다. 하지만 내 몸 하나를 눕히고 비를 피해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오늘은 일본의 국민 드라마 '오싱'의 고향 야마가타로 간다. 한 때 전 일본 국민을 울리고 웃겼던 NHK의 아침 드라마다. 여러 차례 재방영되었고 해외에도 수출되었다.

야마테라역에서 내려 걷기로 했다. 열차에 오르니 맞은편에 두 여자가 앉아 있다. 첫 번째 정차역이 '도쇼구'라는 역이다. 도쇼구는 일본에서 가장 절경이라는 닛코의 이에야스 묘소 이름이다.

앞에 앉은 여자에게 이곳이 이에야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둘은 모녀간이다. 자기들은 사이타마현에서 온 외지인이라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한다.

사이타마에서 온 모녀 야마테라역 앞에서

이에야스의 사후 이곳 센다이번의 번주 다테 마사무네가 후임 쇼군의 허락을 받아 세운 신사가 있는 곳이라 한다. 역시 다테 마사무네는 정치력이 뛰어나다. 후임 쇼군의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모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딸은 시청 공무원인데 둘이서 여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사이타마는 수도권이라 나는 이번에 따로 방문하지 않았었다.

이곳에는 우리 아이돌 가수들에게 꿈의 공연장으로 불리는 대형 체육관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가 있다. 이들 모녀와 야마테라 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 야마테라 절에는 일본의 시성 마쓰오 바쇼와 그의 제자의 동상이 있다. 바쇼의 유명한 하이쿠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소리'는 바로 이 곳 절을 오르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바쇼는 우리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일본 전국을 주유하며 시를 썼다. 그는 제자와 함께 에도를 떠나 기후현 오가끼까지 무려 2,400킬로를 걸은 적도 있다. 1702년에 나온 이 여행의 기록이 바로 그의 역작이자 마지막 기행문이 된 '오슈의 좁은 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오슈'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야마가타 등 북쪽 오지를 가리킨다. 오지들 가운데 혼슈의 북쪽 끝 아오모리 아키타 모리오카 여정을 아직 남겨 놓고 있다.

시간이 없어 절에 오르지는 못했다. 산 위의 야마테라 절을 한 번 올려다 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니 '바쇼 찻집'이 나타나고 '바쇼 대교'가 나타난다. 사진에 담았다.

야마테라 인근의 '바쇼찻집'

야마가타는 일본 제일의 사쿠란보(체리) 생산지다. 농장에서 마침 나오는 여성에게 말을 붙였다. 자연산 체리는 6월 중순 이후에나 출하된다고 했다. 하지만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라도 꼭 맛보고 가라고 한다.

야마가타로 가는 국도를 하염없이 걷는다. 한경 서정환 기자가 카톡으로 연락을 해 왔다. 무역업을 하는 최동환 사장이 신문기사를 읽고 이메일을 보내왔다며 내게 그 사본을 전해왔다.

한일우호 친선을 기원하며 일본 열도 종단 여행을 하는 내 취지와 실행에 공감한다고 했다. 허락을 해주면 일주일이라도 함께 걷고 싶다는 내용이다. 나는 환영하고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야마가타시로 들어가는 국도는 차량 통행이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대형트럭은 가물에 콩 나듯 하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지역이라 생각되었다. 드라마 '오싱'에서도 이곳 야마가타는 가난한 지방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바람이 강하다. 몸이 날아갈 것 같다. 태풍이 오나? 이렇게 강한 바람 속을 걸어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열흘 정도를 남겨놓고 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걸으라는 하늘의 경고로 느껴진다.

시내를 걷다 보니 일본에서 가장 큰 냄비가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직경이 무려 6미터다. 여기에 토란국을 끓여 주민과 관광객들이 나누어 먹는 이벤트도 있다고 한다. 한 번 끓이면 무려 6만 명이 먹는다니 놀랍다.

지도를 보니 꽤 떨어져 있다. 바람이 강해 길을 걸을 수 없을 정도다.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오늘 걸은 거리가 짧아 강행하기로 했다. 걷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보여 길을 물었다.

야마가타대학 신입생들과 대형 냄비 앞에서

이웃 센다이에서 유학 온 야마가타 대학 1년생이었다. 그들도 본 적이 없다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더니 안내를 자청했다. 구글 지도를 수시로 보면서 그들이 앞장섰다.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과연 큰 무쇠 냄비였다. 그들의 친절에 빙수를 대접했다. "이렇게 비싸고 맛있는 빙수는 처음이에요"라며 나를 숙소까지 바래다주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나무가 우거진 정원을 지나 별채에 있는 아담한 독실 방이다. 주인이 8시부터 술과 음식을 나누는 투숙객들의 교류 모임이 있다고 하며 참석을 권유했다 .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외국인 투숙객은 헝가리 싱가포르 등이고 기타 일본의 각 지역에서 관광이나 업무로 온 사람이었다. 직업도 연령대도 다양했다. 23세부터 84세까지다.

즐겁게 교류하며 주인장이 만들어 내오는 요리에다 슈퍼에서 사 온 닭꼬치 회 등으로 포식을 했다. 맥주는 기본이고 다양한 종류의 사케도 비치되어 있었다. 비용은 자기가 먹은 만큼 양심껏 모금함에 넣으면 된다.

최고령 할머니는 딸과 함께 치바현에서 오셨는데 끼니때마다 약을 밥 먹듯이 드신다. 수줍은 표정으로 소리 내어 잘 웃으셨다. 주인이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투숙객이 참 많다.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이다.

야마가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즐거운 교류회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숙소를 나섰다. 주방에는 먹을 것이 지천이다. 100엔만 모금함에 넣으면 된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오늘은 고단한 하루가 되겠다.

야마가타에서 아키타까지는 열차로 4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신조역에서 환승을 위해 무려 1시간 30분을 대기하니 아키타 도착은 오후 2시가 넘는다. 신칸센이 개통된 후 재래선 편수가 줄어 원하는 시간대에 기차가 없다.

신조역에서 바깥으로 나가 기차에서 먹을 점심거리를 샀다. 후배 최석원 사장으로부터 전화. 나를 격려하러 이번 주 일요일에 삿포로로 오겠다고 한다. 고맙다. 아키타역 2정거장 전에서 내렸다.

역 앞에서 마침 지나가는 노인이 보여 길을 물었다.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말로만 들었던 아키타의 사투리 '즈즈벤'이다. 이곳과 남쪽 가고시마의 사투리는 유명하다. 통역이 있어야 의사소통이 된다고 한다.

8킬로 지점에 편의점이 보여 들어갔다. 내가 한국인이라 하니 편의점 주인 부부는 딸이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왔다고 한다.

아키타역 전경

아키다역 근처의 오래된 여관에 투숙했다. 저녁식사에 앞서 아키타역에서 다음날 아침 모리오카로 가는 열차표를 예매했다.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데 출발 시간도 9시대다.

유명하다는 우동집으로 갔다. 저녁 8시 3분 이었다. 그런데 라스트 오더 시간인 8시가 지났다며 손님을 내쫓는다. 융통성이 없다. 우리 같으면 들어오라고 했을 것이다.

돌아 나오는데 지배인이 달려왔다. 역 건물 3층에 자기들 가게가 있는데 그곳은 9시 30분까지 한다고 했다. 힘들게 이곳 명물 '이나니와 우동'을 먹을 수 있었다.

명불허전이다. 일본 3대 우동이라는데 이름값을 한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손톱 만한 크기의 단무지 2쪽을 아껴 아껴 먹었다. 160년 된 우동집이었다.

아침에 욕탕에 내려가니 물이 미지근하다. 어제 목욕을 못해서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탕에 들어갔다. 욕조가 커서 물이 따끈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적당히 뜨거워져 기분 좋게 탕에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밖에서 나이 든 여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멀었어요?" 욕탕을 쓰려고 몇 차례 욕탕 앞을 왔다 갔다 한 모양이다.

서둘러 몸을 씻고 나왔다. 여주인이 자다가 나와서 혼자 말로 투덜거린다. "아침에는 샤워만 하지 목욕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날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미안하고 창피했다.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생긴 불상사다. 짐을 챙겨서 조용히 나와 아키다역으로 향했다. 미안합니다. 이제는 모리오카다.

역사 1층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이번에는 시코쿠의 명물 사누키 우동이다. 종업원이 면을 대 중 소 가운데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 '소'로 했다. 잘한 선택이었다. 일본 사람들 먹는 양이 적지 않다.

모리오카역 전경

모리오카역 3정거장 전인 히즈메역에서 내려 23킬로를 걸었다. 역에 도착해서 서둘러 관광센터로 가니 이미 30분 전에 문을 닫았다. 실망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몇 차례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맷집이 생겼다.

JR 안내센터에 들어가 가까운 여관을 소개받았다. 내일 아오모리까지는 JR과 사철을 번갈아 타야 한다고 했다.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비용이 별 차이가 없어 신칸선을 타기로 했다. 1시간이면 도착한다.

대정관의 40대의 주인아주머니가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성격이 꼭 서양 여자 같다. 방은 2층의 화실인데 밝고 깨끗하다. 양실과 화실의 절충형이다. 어제는 만실이었다는데 오늘은 내가 유일한 손님이다.

목욕을 하고 근처의 한식집 '야마나카'에서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손님이 많고 종업원들이 친절하다. 이곳 모리오카에는 한국냉면과 이곳 냉면을 절충한 '모리오카 냉면'이 유명하다고 한다.

여주인 자매와 거실에 앉아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관심이 많고 호의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니는 한국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음식이 맛있었다고 한다.

일본 풍토에 맞게 음식이 변하고 진화되었지만 원형에 대한 그리움이 이들의 DNA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래서 한국에 가면 김치에 불고기 갈비에다 부침개를 열심히 먹어댄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일한경제협회 도키 상무가 생각난다.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래내의 유명한 설렁탕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않고 다 먹으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모리오카의 밤이 깊어간다. 나와 함께 걸으러 일본에 온다는 의 최동환 사장이 아오모리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곳 의 지인 호시노와의 저녁식사에 그도 함께 하기로 했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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