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우선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봐.”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음을 어릴 때부터 들으며 자라왔다. 그저 좋아서 선호하는 감정은 의심해야 할 유혹이며, 철저히 분석하고 생각한 결과물이 옳은 선택이다. 단순 암기식 교육과, 학원으로 가득한 반복된 일상의 유년시절, 선택의 기회조차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선택에 대한 조언은 꽤나 멋지고 자주적이었다.

본능을 억제해야 한다. 격분하여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나오기 전에 침착하게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 큰 그림을 보고, 이치를 이해하고, 상대방과 공감하면, 훨씬 현명한 합의점에 이르리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여 내 모든 것을 퍼주기 전에 침착하게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 인과관계를 살피고, 이해관계를 파악하며, 상대방을 바라보면, 애처로운 구애의 늪에서 빠져나오리라. 너무나 멋진 말이다. 마음보다 머리를 우선순위로 둬야함에 의문은 없다.

미국에서 홀로서기를 막 시작했을 무렵의 성장통은 만만치 않았다. 마음보다 머리를 우선순위로 둔 탓에 도움의 손길과 유혹의 손길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았다. 고객 한 명의 마음을 얻는 것이 이리도 어렵고, 나의 선행조차 인과관계의 산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Royal Customer (충성고객)의 확보는 지능적인 분석으로 얻어진 결과로 생각되기 시작한다. 온라인상에서 불특정의 누군가가 나의 물건을 사고 감사의 피드백을 남겼을 때였다. 감사함보다 악마처럼 웃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되었을 때,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나는 언제부터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나. 동양인이 적어 칭챙총 놀림을 받으며 출근하던 그날이었던가, 아니면 텃세를 부리던 이탈리안 아줌마의 웃음이 시작이었을까. 코딩처럼 사람들을 분석하며 한없이 외로워졌다. 내일은 동네 예술 페스티벌이 있어, 회사의 슬로건 “We Think, we make”가 적힌 티셔츠를 판매하기 위해 고이 접어둔다. 나만의 물건을 만들며 행복해하긴 했나.

페스티벌의 둘째 날 즈음이었다. 이탈리안 아저씨가 흥미를 보이다 티셔츠에 적힌 우리 슬로건을 본다. 한참을 보던 아저씨는 날 보며 이야기한다. “생각이 많으면 안 돼. 마음으로 느껴야지.” 무슨 소리인가. 마음은 억제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몰랐다. 머리로 이해는 안됐지만 마음은 참 따스했고 갑자기 울컥했다. 격려와 배려인가 싶다. 오랜만의 따스함이라 참 좋구나 싶다.

(사진출처 : SHAREMELON, LLC)

결국 머리는 근본이 아니었다. 나의 지나친 감정적 이끌림에 대해 억제해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수단이었으나, 근본은 나의 마음이었다. 지난주에 우리 도자기를 사갔던 이웃집 아줌마는 나의 멋진 쓰리디 프린팅 기술로 탄생한 도자기에 반한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사는 청년을 응원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내 기술 설명을 열심히 들어줬다. 필요 없는 책상이라며 우리에게 기부해준 옆 동네 갤러리 자매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따스한 동네였구나. 다시 보게 된다.

결국 브랜딩이라 함은 나만의 스토리텔링이다. 내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응원’을 부추겼던 것이다. 나만의 ‘응원’ 브랜드는 내가 거만해지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지게 되는 브랜드이다. 결국 머리보다 마음으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동네 최초, 쓰리디 프린터로 만든 도자기’ 라고 적어놓았던 팻말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Love Creates, hate Destroys” (사랑은 창조하고 증오는 파괴한다) 라는 새로운 슬로건과 함께 판매량이 많이 오르게 되었다.

동네에서 입소문으로 돌던 어떤 브랜드는 이제 인터넷에서 글을 통해 그 확장성이 더해진다. 세계 최초 5G의 어마어마한 기술력보다는, 해당 음식점에서 지갑을 찾은 미담이 더욱 브랜드 가치를 띄워줄 수 있는 시대로 변모한다. 슬로건은 기업의 위대한 역사나 뛰어난 기술력을 강요하기보다 스토리텔링을 위한 수단이 되어간다. 고객이 이 브랜드를 통해 사랑, 부러움, 감동, 응원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해진다.

결국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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