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바시역을 4정거장 앞둔 구니사다역에서 걸었다. 야키니쿠 식당(한식당)이 나타난다. 한식당에서 고기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런치타임을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 맛을 볼 수 있다.

계산을 하는데 조금 전에 마신 시원한 우롱차가 생각나서 무심결에 한 잔 더 달라고 했다. 마시려는데 그녀가 별도 요금이라고 한다. 무려 230엔 우리 돈으로 2,300원이다.

일본을 좀 안다는 나도 이런 실수를 한다. 돈을 내는데 속이 쓰렸다. 눈을 뻔히 뜬 채 코를 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는 공짜가 없다. 우리가 너무 정이 헤픈가?

등·하교 하는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는데 매우 빨리 달린다. 뒤에서 다가오는데 인기척이 없고 경적도 울리지 않는다. 무심코 걷는데 옆을 휙! 하고 지나갈 때는 소름이 돋는다.

마에바시역 전경

마에바시역 관광안내센터에서 소개받은 여관으로 갔다. 이곳은 게스트하우스가 없다. 30대 여주인이 인상도 좋고 친절하다. 체크인을 하는데 손주들과 놀던 친정어머니가 나온다.

요즘 한국 드리마를 하루에 몇 시간씩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했다. 자기들이 학창 시절에 보았던 일본 드라마와 줄거리가 비슷하다. 한국 드라마는 테마가 '사랑'이라고 했다.

우리 TV 드라마가 일본보다 30-40년 뒤쳐져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녀들 50-60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의 드라마. 우리 드라마도 오늘의 일본 드라마 수준을 향해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일까?

아침 약속한 7시에 식당으로 내려가니 내 식사가 이미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었다. 이 사람들의 시간관념은 철저하다. 숙소를 나서는데 여주인이 정중하게 현관에서 인사를 했다.

니가타로 가는 신칸선을 탔다. 2층 좌석에 앉았는데 오늘은 왠지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오랜만에 자세를 바로 하고 단전호흡을 했다. 무리하지 말자.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오야마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좋은 날씨다. 걸으니 언제 내가 피곤을 느꼈나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진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릴 걸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는 걷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걷지 않으면 오히려 피곤하다. 11-12킬로의 배낭이 몸의 일부가 되어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맨몸 보다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우리 인생도 어느 정도 삶의 짐은 필요불가결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의 안전한 운항을 위해서 배의 바닥에 평형수를 채우듯이. 그렇지 않으면 강한 풍랑에 쉬 뒤집어진다.

이에야스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진 무거운 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누구나 지는 짐이다. 짐의 종류와 무게만 다소 다를 뿐.

이발소가 보인다. 오늘은 걷는 거리도 짧다. 일본의 이발소에 가본 지도 40년이 가까워 온다. '그래! 시간 여유도 있으니 그동안 열심히 걸은 내게 보너스를 주자. 수고가 많았다'.

할머니 이발사다. 꽃나무에 마저 물을 주어야 한다는 그녀를 기다리며 잡지를 읽었다. 작년 암투병 중 76세로 별세한 일본 여배우 키키 키린의 얘기가 토픽으로 실려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 김혜자와 같은 국민배우이다.

그녀는 "암 선고를 받은 것이 고맙다"고 했다. " 건강할 때는 인생이 보이지 않았는데 암에 걸리니 비로소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결국 삶도 일상이요 죽음도 일상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일본인들의 삶은 죽음과 공존한다. 공동묘지가 주택가에 있으며 혐오시설인 화장장이 동네마다 있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되고 비록 형체는 없어지지만 늘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는 세상을 떠나면 신이 되어 가까이서 지켜보며 돌보아 준다. 그래서 집안에 불단을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드린다. 이들의 부모를 봉양하는 모습을 보면 '동방예의지국'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잦은 자연 재해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삶과 죽음을 일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이들은 덤벙대지 않고 얄미울 정도로 차분하다.

대형 지진이나 쓰나미로 수천 명 수만 명의 희생자가 나고 살던 집이 없어져도 표정의 변화가 없다. 침착하게 배급차 앞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주먹밥도 정확하게 하나씩 받아간다. 내가 두 개를 받아가면 다른 사람의 먹을 것이 없어지기에 남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을 한다. 공동체의 영속성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발소 할머니에게 머리를 맡겼다. 정성을 다해서 가위질을 하고 면도하고 머리를 감겨준다. 수십 년 숙달된 솜씨다. 이발 의자는 하나밖에 없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는 것 같다.

40여 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착각을 했다. 그녀의 이발하는 방법과 순서가 40년 전 한국 이발소에서 하던 것과 똑같다. 3,000엔이라는 거금을 지불했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

니가타역에서 관광안내센터를 찾았다. 여기서 이시카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참 친절했으며 니가타 미인이었다. 역 근처의 싸면서도 깨끗한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를 해 주었고 내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문을 연 지 2년여 된 '북 인 게스트 하우스'는 실내가 서가로 되어 있어 마치 도서관에 들어간 느낌이다. 꽂혀 있는 책은 5,000여 권 정도가 된다고 했다. 그 서가 사이에 침대를 들여놓았다.

니가타는 사케의 고장이다. 그 유명한 '고시노 간바이'를 처음 마셨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입안에 사르르 녹는 듯한 맛과 향기. 물어보니 새로운 사케가 많이 나와 그 명성이 옛날 같지 않다고 했다.

이후 누군가가 내게 "일본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지역은?"이라고 물으면 내 입에서는 '"니가타"라는 대답이 저절로 나왔다. 역시 사람이다. 그녀 나이는 글쎄 30대 초반 아니면 중반 정도 될까?

샤워를 하고 역 앞의 센터에 다시 한번 들렀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는 "오! 허상!!"하면서 반긴다. 일본은 북쪽 여자들이 얼굴이 희고 미인이다.

이시카와를 보며 과연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을 얘기하니 그녀는 기뻐하면서도 겸손하다. "흰 것을 얼굴에 많이 발라서 그래요. 다 화장빨이에요"라고 했다.

그녀가 추천한 '500엔 5종류 사케 시음 가게'로 가니 술이 100여 종이나 된다. 작은 니가타에 업체수가 참 많기도 하다. 이렇게 내부 경쟁이 치열하니 최고 품질의 술이 나오는 것이다.

그녀가 추천한 어시장의 회전 초밥집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전망대에 올라 일본에서 가장 긴 시나노가와 강과 반다이바시 다리도 내려다보았다. 내가 아는 몇몇 니가타의 유명인사 명단에 이시카와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곳을 영지로 가졌던 전국시대의 영웅은 우에스기 켄신이다. 그는 이웃 나라 가이의 다케다 신겐의 호적수로 '에치고(지금의 니가타)의 용'으로 불렸다. 전국시대 최고의 무장이었다.

이에야스는 신겐을 최고의 무장으로 평가했다. 신겐에게 쫓겨가면서 바지에 똥을 지린 적이 있다고 후일 고백했다. 그런 신겐도 켄신과의 야전은 가급적 피했다고 한다.

또한 켄신은 의리의 남자였다. 신겐의 영지에 소금 수출을 중지하자는 다른 다이묘들의 제의를 그는 거절했다. "비록 전쟁 중이라도 백성은 적이 아니다"라고 하며 소금 수출을 계속했다. 켄신은 49세에 병사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학력으로 도쿄대학 출신만 하는 대장성 대신과 총리까지 역임한 다나카 카쿠에이다. 그는 총리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야미 쇼군(밤의 실력자)'으로 일본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니가타 게스트하우스 여주인 아오이와 싱가폴의 켄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아오이도 서글서글한 성격의 미인이었다. 싱가폴에서 온 켄 군과 그녀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니가타의 밤은 깊어 가는데 내일 이곳을 떠나는 것이 아쉽다.

다음 일정은 2011년 동북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폭발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후쿠시마현이다. 후쿠시마시에는 다녀온 적이 있어 이번에는 고리야마시로 정했다. 우리나라 전북의 군산과 똑같은 지명이다.

아침에 재래선을 탔다. 신칸선은 빠르기는 한데 요금이 비싸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지만 열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즐기면서 글을 쓰는 시간으로 활용키로 했다. 차창 밖으로 모를 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즈 와카마츠역에서 환승했다. 지금은 후쿠시마현이지만 옛날의 아이즈번이다. 1868년 5월부터 5개월간 아이즈성(쓰루가성)을 중심으로 신정부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다.

적의 추격에 쫓겨 이모리산으로 들어간 15-17세의 백호대 소년 무사들은 천수각의 연기를 보고 성이 함락된 것으로 착각했다. 이들은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장렬한 최후가 낫다'며 집단 자결을 선택했다.

이모리 산 중턱 이들이 집단 자결한 자리에는 19개의 묘지석이 있다. 한 명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성이 함락된 후 성 안에는 격렬히 저항했던 병사 부녀자 등 수천 명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반란군의 오명을 쓴 아이즈번 무사 등 17000명은 본토의 땅끝 아오모리현 시모기타 반도의 황무지로 쫓겨나고 아이즈번은 폐번되었다. 1930년대까지도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이들을 '반란군'으로 묘사했으며 이곳 사람들은 인사상 많은 차별을 받았다.

아이즈 와카야마 역 앞 백호대 소년무사 동상

 

환승에 시간 여유가 있어 역의 바깥으로 나가 백호대 소년 무사의 동상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이모리산을 카메라에 담으며 어린 무사들의 피 끓는 애국심을 생각했다.

카가미이시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고리야마 역의 관광안내센터로 가니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5시 30분까지가 업무 시간이라고 쓰여 있다. 원전폭발의 후유증으로 관광객이 적은 모양이다.

오늘은 센다이다. 이곳은 미야기현의 도청 소재지다. 나토리역에서 내려서 걸었다. 프로야구 라쿠텐의 홈구장을 지나 센다이역으로 갔다. 역에 사람이 많고 밝은 분위기다.

오늘부터 '센다이 아오바 거리 마쓰리'가 내일까지 이틀간 열린다. 역에서 한참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센터의 여직원은 내일부터 서울에 간다고 하며 몇 마디 우리말로 내게 말을 건다.

센다이 마쓰리 행사의 모습

센다이 성터로 가는 도중에 마쓰리 행렬을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 역에서 편도 1시간이 걸리는 곳에 성터가 있었다. 지난 동북대지진 때 무너진 성벽은 보수가 완료되어 있었다.

혼마루 터에 올라 센다이 시내를 둘러보고 관광 온 여성들과도 얘기를 나누었다. 말을 탄 다테 마사무네의 동상이 보인다. 외눈박이 번주 다테 마사무네는 센다이의 영웅이다. 수백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주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지도자는 고매한 성인군자가 아니다. 인간적인 약점이나 실수가 많아도 지역의 발전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지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지도자는 거짓말도 하고 비굴한 행동도 거침없이 할 수 있다.

이에야스의 신임을 받았던 용맹했던 번주 마사무네는 막부시대 쇼군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의 인간적인 약점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

일본의 수상이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며 다소 비굴하게 보이는 저자세 외교를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잘 알려진 일이다.

부시의 푸들이니 트럼프 충견이라는 국제사회의 비아냥에도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국익을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강대국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도 수상들의 자기 몸을 던지는 대미외교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명분을 중시하지만 일본인들은 실리를 중시한다. 명분에서는 빵과 우유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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