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1950년대 중반 우리나라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1960년대 도립공원으로 강등(?) 됐지만 관광객이 꾸준히 늘었다. 1973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 인천, 경기도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지, 소풍지로 각광받았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은 여행비용을 쌀로 가져왔다. 음식점은 이 쌀로 학생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점심 주먹밥을 만들어 학생들의 나들이를 도왔다. 물론 쌀 일부를 수입으로 잡았다. 이때 학생들이 주로 머물렀던 곳이 백제장, 반월정, 산성원 등 세 곳이다. 기생을 둔 음식점도 몇 곳 있었다고 한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됐다. 성가퀴는 1,700첩(堞)이고, 4문과 8암문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와 창고 등 유사시에 대비한 모든 시설을 갖추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돼 임금이 거처할 행궁은 상궐 73간 반, 하궐 154간이었다.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과 사직단을 옮길 우실도 세웠다. 수어장대 앞에서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의 단체 사진을 찍은 모습.

원주민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요릿집이 4개 정도 있었는데, 순수 요릿집(음식점)은 2개고, 나머지는 기생과 음식을 파는 술집이었다. 관광객이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생을 보러 오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서울 사람들이 유람을 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집들이 생기고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잠을 자고 갔다.

1960년대 학생들 수학여행지로 각광... 식당 발달 계기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말까지 수학여행단 학생들이 트럭이나 버스를 타고 동문에 내려서 걸어왔다. 주로 오는 지역은 서울, 인천 등이었는데 광지원리에서 내려 동문쪽으로 20리는 걸어 들어왔다. 학생들은 1인당 쌀 한 되씩 가져와서 절반 정도는 식당에서 식사용으로 썼고 나머지는 식당에 지불했다.

학생들은 백제장, 반월정, 산성원 또는 인근 가정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여주 신륵사로 갔다. 아침 식사를 해주고 점심은 주먹밥을 나무도시락에 싸서 보냈다. 학생들의 수학여행단이 오면 남한산성 식당가가 정신없이 바빴다.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반찬을 준비하는 데 야채나 나물류는 주로 종로거리에서 사다 썼다. 일부는 산성 안 텃밭에 재배한 것을 사용했다. 백제장 주인은 육영수 여사 고등학교 후배라서 박정희 대통령도 종종 들렀다고 한다. 그래서 도로포장이 잘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장, 남한산성 1호 음식점... 산채정식 한가지로 승부 

백제장 산채정식

남한산성 1호 음식점은 1966년 문을 연 백제장이다. 업주는 9대째 남한산성에 살고 있는 토박이다. 조상 중에는 인조 임금 때 훈련도감(정3품)을 지낸 이도 있다. 그래선지 전통 궁중한정식을 하고 있다.

남한산성 중턱에 위치한 산채 정식 전문점이다. 앞마당에는 오래된 고목과 국전 대상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재래 방식으로 음식을 보관하는 토굴도 있다. 제철 산채 나물과 생선, 닭볶음, 찌개 등 25가지의 반찬으로 구성된 산채정식 단일 메뉴다. 숯불 불고기와 더덕구이, 도토리묵 등은 추가 메뉴로만 주문할 수 있다. 초등학생은 반값만 받는다.

반월정, 100년 넘은 한옥 개조... 닭도가니 인기 많아

반월정 정식

1968년 문을 연 반월정은 백제장 뒤쪽에 있다. 백제장 여주인의 사촌동생이 차렸다. 100년 넘은 한옥을 개조한 한식당이다. 15여 가지의 제철 산채 나물과 된장찌개를 곁들인 산채 정식이 인기 메뉴이다. 커다란 도가니에 삼계탕과 죽을 함께 끓여낸 닭도가니와 닭볶음탕도 많이 찾는다. 이 집은 산성리에서 가장 부유해 인근 마을 주민들 중 이 집 돈을 빌려 쓰지 않은 집이 없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은행나무집은 한국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이 1966년 로터리 주차장터에서 주점으로 시작해 음식점으로 전환했다. 당시 시발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어 광주읍내에서 광주막걸리를 실어와 독점적으로 전통음식마을에 공급해주는 대리점 역할을 했다. 한방도가니, 한방백숙, 닭볶음탕, 오가피백숙, 엄나무백숙 등이 유명하다.

1970년대부터 닭요리 등장... 백숙거리·닭죽촌 등 타운 형성

남한산성 전통음식마을에서 닭요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라고 한다. 직접 닭을 키워 잡을 수 있었던 시절이라 관광객에게 집 닭요리를 해주던 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대표 메뉴가 됐다. 남한산성 행궁 앞은 백숙거리가 있고 버스를 타고 조금 내려오면 닭죽촌이 형성돼 있다.

닭죽촌에 있는 <유정집> 닭백숙.

오복손두부, 80년 역사 두부집... '주먹두부'로 유명 

남한산성에는 산채정식, 닭요리와 더불어 두부가 유명하다. 오복손두부는 두부 제조 역사가 80년가량 된 유서 깊은 두부집이다. 이 집은 주먹두부로 유명하다. 두부 제조 시작은 현 업주 모친이 해방 이후 생계유지를 위해 두부를 만들어 판 것이 계기다.

당시 어린 아들이 해온 나무로 무쇠 솥을 데우고 맷돌로 갈아낸 맑은 콩물을 올렸다. 매일 새벽 2시면 어김없이 굴뚝에 연기에서 연기가 났고, 해가 떠오르는 새벽이면 주먹 모양의 두부가 남한산성 곳곳에 배달됐다.

<오복손두부>의 주먹두부

18시간 동안 불린 콩을 갈아 장작불로 끓여낸 후 안면도의 꽃지에서 가져온 간수를 넣어 뭉글뭉글해진 순두부를 면포에 두세 겹 싸서 주먹만 한 크기로 한 모씩 모양을 굳혀낸다. 그 모양 때문에 주먹두부라고도 불리는데 간수 특유의 씁쓸한 냄새가 없고 부드러운 질감과 구수한 맛이 난다. 순두부 국물의 고소한 맛도 일품이다.

이 집 두부 맛에 익숙한 남한산성 주민들은 성 밖의 목판에 굳혀낸 두부는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다고 한다. 손두부는 남한산성 전역에 배달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전통 방식을 고수해서 맛이 좋았다. 지금도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고 한 시간 이상 콩물을 끓여내 간수를 넣는다. 인근 음식점에 두부를 공급해 주던 것을 ‘오복손두부’ 창업 이후 공급을 중단했다.

남한산성은 과거 회사 영업사원이라면 한 번쯤은 만사 제쳐 놓고 낮부터 백숙 한 그릇 시켜 놓고 하루를 보낸 추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야 영업을 월말에 ‘밀어 넣기’로 숫자를 맞추던 시절이라 하루 정도 노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남한산성, 행주산성, 좀 멀리는 소래포구 등이 낮부터 호황을 누렸던 시절이다. 요즘은 도로시설이 잘돼 있고 자가용과 버스 등 교통이 편리해 사시사철 관광객과 식객이 넘쳐 난다.

유성호 한경닷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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