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곳곳이 꽃밭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나무와 꽃들이 울울창창하다. 소나무도 새순과 함께 송화 봉우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이른 아침 인왕산 성곽길 따라 사람들이 즐비하다. 연두색으로 갈아입은 산허리에서 서울 한복판을 바라본다. 경복궁과 창덕궁이 푸르게 우거지고 있다. 창경궁과 긴 지붕이 펼쳐진 종묘(宗廟)도 한 뼘처럼 가깝게 보인다. 인왕산 자락 사직단이 단출하고 고요하지만 꽃들로 가득하다.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으로 되어있다.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이다. 사직단은 단출하지만 종묘보다 의미가 크다. 궁과 궐처럼 건축물은 없지만 하늘에 제를 올리는 중요한 터다. 토지가 있는 곳엔 곡식을 심었다. 곡식을 심는 곳에 비와 물이 필요했다. 가뭄에 맞서 기우제를 지냈고, 풍년을 위해 기곡제를 지냈던 의미있는 공간이다. 사직단은 만인을 위해 꿈과 희망을 심었던 곳이다.

 

사직단에는 곰솔 같은 소나무와 키 큰 느티나무가 고향처럼 반긴다. 광화문 역사광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린다. 빌딩과 빌딩 숲속에서, 차량과 차량 속에서 번잡함과 소란함이 어느새 사라졌다. 바람이 향기롭다. 정문을 지나 북신문(北神門)을 열고 3단 흙으로 된 사단과 직단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 해 진다. 600여 년 전 1,000여명이 제를 지냈던 그날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만인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걸으며 정성을 다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직단은 사직공원이 아니다. 궁과 궐에 왕이 살 듯, 종묘에 왕과 왕비의 혼을 모셨다. 사직단은 나라의 근간인 토지와 곡식의 풍요를 빌었던 신성한 공간이다. 역사가 머문 문화가 깃든 곳이다.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중요하듯, 사직단은 온 국민의 행복을 기원한 곳이다. 서울 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도 사직단이 있었다. 사직단이 종묘의 규모 보다 더 크고 중요한 공간이었다. 사직터널부터 사직동이 옛 사직단의 모습이다. 경복궁과 경희궁 사이 사직단으로 가는 길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가족과 함께 사직단 길을 걸으면서 우리 조상이 쌓은 ‘축적의 역사’를  보듬어 보자. 행여 일상에 지친 가족이 있다면 이 길 위에서 서로 위안을 주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으면 한다. 소크라테스의 인생 교훈 4단계가 있다. “어려서 겸손 하라. 젊어서 온화해져라. 장년에 공정해져라. 늙어서는 신중해져라.” 역사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이 역사 안에서 감사함으로 인생을 복기 해 보고 나누어 보자.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