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갑자기 춘설이 내리고, 봄바람이 거세게 얼굴을 때리네요. 그래도 금요일이라서인지 주말을 맞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긴장감도 풀어집니다. 이럴 때 일수록 건강에도 주의하시고, 새 봄의 멋진 목표들도 하나씩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주부터는 칼럼도 열심히 업데이트하려고 합니다. '서른에 다시 쓰는 이력서'라는 주제로 몇 개의 꼭지를 풀어가려 합니다. 너무~ 자주~ 글을 올린다고 지겨워하지(?) 마시고 성원해주시기 부탁드리며...

다음주면 3월의 마지막, 이번 토요일&일요일은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산에 오르셔서 정기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 전미옥 드림 www.myc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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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전과 커리어 지도를 그려라

 

 실력으로 완성해가는 커리어 지도가 아름답다
지난 1월 임명된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공직사회에서 ‘9급신화’로 알려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중학 시절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이 되어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에 행정 공무원을 선택한 그는, 면서기로 출발한 이후 전남 구례ㆍ나주 군수를 거쳐 ‘일벌레’라는 별명을 얻으며 94년 내무부의 꽃인 행정과장에 올랐고, 전남도 기획관리실장, 광주시 기획관리실장, 광주시 행정부시장(1급)을 역임했다.
 
김완기 수석의 트레이드마크를 원만한 대인관계로 꼽는 사람이 많다. 고졸 학력이라는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으로 광주와 전남지역 공무원들에게는 본보기가 되었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성격이어서 부하 공무원들에게서 신망을 받았고, 예순을 넘긴 나이지만 상대가 나이를 잊을 정도로 젊은 사람들과 소통이 원활하다.
 
광주시 행정부시장 재직 당시 “학력 콤플렉스가 없느냐”는 질문에 “학력 때문에 불편한 적은 있었지만 특수대학원 수료 등으로 적당히 학력을 장식할 생각은 없다”며, 오히려 적극적인 답변을 하였다. 뛰어난 문장력과 꼼꼼한 일처리로 유명해서 담화문과 축사, 국정감사 답변 자료 등을 반드시 당시 기획관리실장이었던 그의 '사전 결재'를 받도록 할 정도로 시장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또 한 사람.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9급 공무원을 선택하여 67년 경남 교육청 9급 행정서기보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99년 1급인 기획관리실장까지 올라 교육부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지방교육청 말단 공무원과 공립학교 서무과장 등 일선 교육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80년대 초 문교부로 올라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실무에도 밝다는 평이다. 이해찬 총리가 교육부 장관이던 98년 3월부터 1년여 호흡을 맞춘 덕분에 까다롭다는 총리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공무원’이란 극찬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유의 친화력을 가진 ‘마당발’로 2003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있을 때는 직원 300명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학력은 핑계, 전문성과 근성을 가져라
최근 공직사회에 남다른 노력과 한길을 걸어 온 전문성 등으로 자신을 만들어간 신화의 주인공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위 두 사람은 그러한 인물 중 대표적인 공무원일 뿐이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계산하고 고위공직자 자리를 목표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말단공무원에서 고위공무원이 되기까지 그들이 밟아 올라온 길에 어떤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9급 공채로 들어와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기까지는 보통 25년 이상이 걸리고, 사무관에서 ‘공무원의 꽃’이라는 1급까지는 다시 20년 정도가 지나야 가능하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기에 공무원 사회에서 9급 공무원이 1급에 오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신화(神話)’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자신들의 학력에 기죽지 않았다. 고시와 학벌 위주의 발탁과 승진의 기회가 더 많았던 시대에 당당히 실력으로 커리어를 쌓아 올라갔다. “고졸 출신인 내가 잘해봐야 5급 사무관이다. 그 정도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다”라고 자기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 가두지 않았다. 다만, 앞을 보며 한 눈 팔지 않고 전문분야를 만들고 꼼꼼하고 성실한 일처리로 인정을 받았다. 그때그때 주어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교육기관이 아닌 현장에서 온몸으로 배우고 터득하면서 자기 브랜드를 완성해나간 것이다.

 

6.25 이후 폐허가 된 한국에서 교육열을 보험과 연결시켜 큰 기업을 일궈낸 교보생명의 창업자 신용호 전 회장은 평소 ‘독수리의 시야’를 강조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앞이나 옆을 멀리, 넓게 보면서 자신이 갈 길을 잘 알며 남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살피기에 미래상이 확연하다는 의미다.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조금은 답답하게 자기 일만 바라보며 한 우물을 파왔다 싶지만 그들은 넓게 멀리 앞길을 바라보며 준비하고 노력해왔던 것이다.

 

 60대의 당신 모습의 시작이다
‘인터넷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재일한국인 손정의가 있다.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고 야후를 비롯한 수많은 인터넷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거부지만 그의 성공 뒤에 숨은 노력은 그 시작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끝을 보며 앞날을 설계한 인물이다. 19세 때 만들었다는 ‘인생 50년 계획서’에는 이미 60대의 손정의 모습이 들어 있다.

 

“20대에 이름을 날린다. 30대에 최소한 1000억 엔의 군자금을 마련한다. 40대에 사업에 승부를 건다. 50대에 사업을 완성한다(매상고 연 1조 엔). 60대에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자기 인생의 끝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지 분명한 상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이미 정해진 미래상을 완성하기 위한 준비된 과정일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도달해야 할 끝이 분명했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 도전했고, 또 그것을 이루어냈다.

 

그렇기에 성공을 위한 커리어 지도는 우선 큰 아우트라인부터 그리는 것이 원칙이다. 큰 원칙, 궁극적인 목표 같은 것으로 지금부터 자신이 살아나가야 할 삶 전반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그 모든 것을 써보자.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원대한 소원까지 빠짐없이 쓰도록 한다. 터무니없는 목표라고 너무 쑥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 목표는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0대엔 경제적 안정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며 개인 브랜드의 싹을 틔운다. 40대엔 전문적인 분야를 가짐으로써 개인 브랜드의 꽃을 피운다. 50대엔 좋은 간부가 되어 후배를 기른다.” 이런 식이어도 좋다. 자신의 목표를 눈에 볼 수 있게 가까이 두고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도록 한다. 목표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계획은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할수록 좋다.
 
이제 큰 목표, 궁극적인 목표가 인생지도 맨 위에 자리잡았다면, 그 다음은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실천할 목표들을 잡아나가야 한다. 최고 목표 아래 큼직한 목표들을 중간중간 징검다리처럼 놓고, 거기서 다시 그 중간 목표들을 밟아가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을 잡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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