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대중적’인 것을 조금 얕보고 가볍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적인 것은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술도 순수예술일 때 가치가 더 있고 높이 쳐주는 반면, 대중적인 예술일 때는 ‘예술’이라는 호칭을 쓰는 일에 대해서도 인색하다. 예술은 순수해야 하고 고귀해야 하고 소수의 마니아를 거느려야 하고, 조금은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너그러운 가치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고정관념 아래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자리는 아주 특별하다. 영국의 유수한 음악학교에서 정통클래식을 공부하고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해맑은 소년의 얼굴을 해가지고, 그런 고귀한 예술의 가치를 아주 색다르게 뒤틀어버린 대중예술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오 사사키나 유키 구라모토 같은 세계적인 뉴에이지 아티스트가 많은 일본에서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약 중인 음악인이다. 최근엔 자신의 음악에 간간이 노래까지 부르기도 한다.

 

그의 음악을 여러 가지 음악 장르에서 굳이 위치를 설정해본다면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의 경계에 있다. 그는 언젠가 어려운 클래식 과정을 공부하고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점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거나 자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인터뷰에 답한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사람 받는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며 대중과 호흡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자기 음악이 사람들 속에서 숨쉬고 웃고 울며 살아있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영화음악도 한다. <강아지똥>이라는 애니메이션 음악에도 참여했고, 영화 <오아시스>를 보고난 후 떠오르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 색다른 영화음반을 만든 적도 있다. 또한 자신의 음악이 드라마 삽입곡에 쓰이는 일도 많이 허락한다. 근사한 콘서트장을 찾기도 하지만 대학캠퍼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 코너, 지방의 시민회관 같은 곳에서 연주하는 일도 다반사다. 사람들이 있는 곳, 내 음악을 좋아해주고 내 연주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즐겁게 간다는 자유로운 신조를 인터뷰 밖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루마의 음악을 클래식보다 듣기 쉽고 편안하게 다가온다고 해서 싸구려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클래식과 완만한 경계를 이루면서도 그 분위기가 살살 스며있고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편안하기 때문에 대중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그의 음악은 묘한 포지션으로 대중 속에서 자리를 넓히고 있는 셈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 고급 아니면 저급, 순수 아니면 상업… 하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통렬하게 반으로 쪼갠 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루마의 음악이다.

 

거기에는 자유로움과 여유가 느껴지고 타인과 교감하고 배려하는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글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창작물이 그것을 탄생시킨 사람 자체와는 구별되어야 하지만, 편안하고 아름다운 이루마의 음악은 이루마라는 사람의 브랜드 가치까지 높여주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을 가지고 CF를 찍자는 제의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그에겐 CF 경력이 있다. 영국에 살면서 아직 우리나라 대중에게 그의 존재가 희미했을 때 한 통신사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그때와 지금. 이루마의 가치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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