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용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건축용어, 의학용어, 군사용어 등 각 분야 그 안에서 특별하게 소통되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 일반인들도 많이 접하게 되는 용어가 바로 의학용어가 아닐까 합니다. 의사들은 늘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들에게도 의학적인 설명을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자들은 종종 의사의 설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섞여 쓰이는 의학용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일흔에 가까운 한 의학계 대가는 의사들이 필요 이상으로 쉬운 말도 어렵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구멍을 ‘구협’, 광대뼈를 ‘관골’, ‘꼬였다’, ‘삐었다’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염전’, ‘염좌’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대한의학회장을 지낸 지제근 인제대 의대 석좌교수의 그런 안타까움은 쉬운 우리말로 의학용어를 쉽게 풀이한 『의학용어 큰사전』으로 나왔습니다. 의학용어 6만5천개의 풀이에 지교수가 직접 찍은 컬러사진 2천장이 곁들여져 있지요. 이 사전은 국내 처음으로 표준화 작업을 거친 본격적인 의학사전이라는 큰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쉬운 우리말 용어로 환자에게 설명하고, 논문 교과서 차트를 쓰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지교수는 의학용어 대중화 작업에 매달린 지 8년, 본격적인 원고 정리 작업에 들어간 지 1년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자신의 사무실과 서재에서 원고와 씨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오랫동안 앉아서 글을 쓰느라 사타구니에 피부병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흥미진진하면서도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던 지교수는 복도에 휴지가 있으면 말없이 혼자 주우며 솔선수범하는 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의 성품답게 이번 책도 쉽고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 한 제자의 스승 예찬입니다.

 

연로한 가운데서 이런 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 적을 둔 의사들이 이런 일을 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년퇴직을 한 후, 자유로워진 자신이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지교수는 사전 편찬이 아니라도 충분히 훌륭한 업적이 않은 의학계 대가입니다. 그러나 굳이 사전 편찬에 대한 업적이 돋보이는 까닭은 좀체 누군가 나서서 하지 않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어려운 전문용어를 써야 의사로서의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가운데 노교수는 꼭 해야 할 일을 해낸 것입니다.

 

그것은 용기이며 열정입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돈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내놓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편안함입니다. 크든 작든, 자신만이 인정하든, 남들이 모두 인정하든 그 모든 성공에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직종 구분 없이 어느 분야이건 거친 일, 고된 일, 소외된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런 일에 선뜻 손을 담글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기회가 있음을 잊어서 안 됩니다. 남들이 모두 꺼리는 일, 남들이 피해 가는 일이기 때문에 남들은 결코 찾을 수 없는 진주를 내가 발견할 확률은 아주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100년 동안 30판이 나오는 가운데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명성을 얻은 미국의 롤랜드 사전처럼, 일정 기간마다 사전을 보완해 나가겠다는 계획과 이 일을 못하게 되면 제자들이 사전을 완성해 나가기를 바라는 노교수의 바람에 힘이 되어줄 제자, 후배들이 속속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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