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역 2층 관광안내센터로 찾아가니 여직원이 내 스틱을 가지고 나왔다. 외국인 관광객의 분실물을 찾아주었다는 실적을 한 건 올려서 그런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오카야마 숙소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역의 관광안내센터에 가니 친절하다. 그런 문제라면 역 앞 지하상가의 모모타로 관광센터로 가보라고 했다.

거기서 여직원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으로 10분 거리의 게스트 하우스에 예약했다. '히바리 테라스'라는 곳인데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와 같은 구조다.

이후 나는 2-3일 전 번거롭게 유스호스텔을 예약하지 않고 당일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아 이용하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는 대체로 역 근처에 있다.

히바리 테라스의 시설이나 관리상태 등이 우수하고 가격도 적당하다. 아마 내년 7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의 숙소 문제 해결에 일본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라쿠엔에서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10분 거리의 고라쿠엔으로 갔다. 옆으로 오카야마성의 천수각이 보인다. 오카야마의 영주 이케다 미쓰야마가 무려 17년이나 걸려 1,700년에 완공했다는 일본 3대 정원의 하나다.

도쿄돔의 3.5배나 되는 규모와 명성에 어울리는 정원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절정은 지났지만 벚꽃 숲에는 산들바람으로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떨어진 꽃잎으로 바닥은 핑크빛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다.

일개 지방의 영주로서 이런 거대한 규모의 정원을 조성할 수 있었던 그 경제력에 놀랐다. 에도 막부의 통제를 어느 정도 받기는 했지만 당시 지자체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였다.

미국의 주를 스테이트라 하듯이 일본에서도 '구니 '즉 국가라고 불렀다. 지금도 도시 사람이 명절에 고향에 간다는 표현을 '구니에 돌아간다'라고 한다.

열차를 두 시간 남짓 타고 이동한 다음 지역은 시마네현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명이다.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독도(일본명 다케시마)가 소속된 현이다.

역 안의 식당에서 이곳의 특산 물인 메밀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런데 배낭 포켓에 넣어둔 노트가 보이지 않는다.

노트는 이번 여행에 관련된 모든 중요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나의 보물 2호다. 보물 1호는 여행일지를 기록하고 사진을 찍고 외부와 소통하는 스마트폰이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머리를 짜내어 보려 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디에서 분실했을까. 노트가 없어지니 갑자기 내가 바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이제 남은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어제 투숙한 오카야마의 게스트 하우스에 연락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카야마 역 관광안내센터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5시나 되어야 스탭들이 출근한다. 게스트 하우스는 오전 10시까지 체크아웃을 하고 체크인은 오후 5시부터다.

이즈모타이샤 국보 본존

우선 이즈모시 역의 관광센터에 들러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고 찾아가 짐을 맡겼다. 버스를 타고 '이즈모타이샤'로 갔다. 진작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국보로 지정된 본전을 둘러보면서도 마음은 온통 잃어버린 노트에 가 있었다. 이곳은 일본 최고의 신사로 일본 건국신을 모신 곳이다.

음력 10월이면 일본 전국의 800만 신들이 모두 이곳으로 출장을 와서 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다른 신사에는 신들이 부재하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2,000년이 되었다는 이 신사는 바다 건너의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반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 신사는 남녀의 인연을 맺게 도와주는 신사로도 유명하다. 신사에서 참배할 때 보통 손뼉을 두 번 치고 합장을 하는데 여기서는 네 번 친다. 두 번은 본인을 위해 또 다른 두 번은 미래의 연인을 위해서라고 한다.

신사를 어느 정도 둘러보니 5시가 조금 지났다. 신사 모퉁이의 한적한 곳으로 가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남자 직원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플하게 답했다. 파란색 표지 노트를 자기들이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하늘로 뛰어오를 듯이 기뻤다. "아!!! 살았다." 모래 히메지로 가는 날 받으러 가기로 했다.
청소를 하다가 베개 밑에 놓여있는 노트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즈모 게스트 하우스 주최 주민 토론회

이즈모 게스트하우스의 여자 주인은 내 친구 조사옥 교수를 빼다 박았다. 그녀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어 놀랐다. 사진을 한 장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다.

저녁 7시에 지역 주민들이 참가하는 이벤트가 있는데 투숙객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했다. 서둘러서 역 근처의 온천에 다녀왔다. 10여분 지각을 했지만 만들어 준 명찰을 달고 참석했다.

모두 10명이다. 투숙객은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캐나다 국적의 일본 청년 마이크다. 주민 중에는 미국인도 3명이나 있었다. 주민들에게 미국인과 교류하는 기회도 제공하고 영어회화 공부를 겸해서 게스트 하우스가 매달 한 번 주최하는 것이다.

미리 준비한 두 사람이 각각 30분씩 주제발표를 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쓸 수 있는 기회도 되는데 오늘의 주제는 '젠더'와 '돈'이었다.

젠더를 주제로 발표한 여성은 일전에 발각된 동경대 의대의 여학생 입시 차별에 대해 얘기했다. 이 학교가 의료현장에서 남자 의사의 수요가 많은 현실을 고려해서 그동안 남학생 수험생에게 가점을 주어왔던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다른 대학들도 관행적으로 이 같은 일을 해 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돈에 관한 주제발표를 듣다 보니 일본인들은 걱정거리가 많아 지출 가운데 보험료가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일본인은 성인 2명 중 한 명 비율로 암에 걸린다.

걱정을 많이 하는데다 뿜지 않고 참고 살아가는 일본인이라 상대적으로 암환자가 많은 것 같다. 참석자들과 주인 여자에게 내 도보여행의 취지를 설명하고 사진을 찍었다.

요나고 역의 전경

다음 날은 돗토리현이다. 요나고를 목적지로 했다. 열차를 타고 가다 시마네현의 중심도시 마쓰에에서 내려 요나고로 향해 걸었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 횡단보도 앞에서 아이들의 등교를 챙기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양국 간 영토문제는 이곳 서민들의 관심 밖이다. 생업에 바쁘니까. 양국 정치권 사람들이 그냥 월급 타 먹기 미안하니까 가끔 끄집어 내고 매스컴이 이를 부채질한다.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땅이니 자꾸 "독도는 우리 땅이다"라고 외칠 필요가 없다. 정치인들이 독도에 가서 태극기를 흔드는 퍼포먼스는 개인 선전에는 이롭지만 국익에는 반하는 일이다. 일본에 침소봉대되어 보도되고 여론을 악화시킨다.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다케시마가 자국의 영토이며 일본의 패전 후 혼란을 틈타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했다고 알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것이 현실이다.

31킬로를 걸어 요나고역에 도착해서 관광안내센터에서 숙소를 소개받았다. 게스트 하우스 요금 수준이라 역 근처의 작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역시 호텔이 익숙한 곳이라 마음이 편하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슬리퍼를 꺼내 신고 인근 대중탕에 갔다. 대중탕을 일본어로 '센또'라고 한다. 골목길에서 길을 물으니 아주머니가 친절하다. 문신한 친구가 2명이나 있어 목욕하는 동안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다음날 아침 호텔을 떠나는데 이곳 특산품 단팥빵과 음료 캔을 하나씩 가져 가라고 한다. 아마 요나고시가 관광 홍보차원에서 지원하는 모양이다.어쨌든 기분이좋다.

오카야마로 가는 열차 안에서 맛있게 먹었다. 달콤한 빵에 음료까지 마시고 있으니 요나고에 대한 느낌이 더욱 좋아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2019. 4. 15).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