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소신
 


   최근 개그맨들에게 가장 많이 성대모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 외국보다 국내에서 오히려 더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을 희화화해도 별로 개의치 않고 꿋꿋한 사람, 문화계 마당발이라 각종 문화행사에서 자주 눈에 띄는 사람, 옷장에 하얀색 옷만 걸려 있다는 사람, 메이크업하는 남자.

 

   이쯤 되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일반인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많이 기여했던 앙드레 김이다. 최근 앙드레 김의 독특한 외모와 말투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코미디에서 패러디 하는 바람에 어른부터 아이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어린아이들도 할아버지뻘 되는 그의 말투를 흉내내며 즐기는 일이 많아졌지만, 일각에서는 회갑을 넘긴 우리나라 대표 디자이너를 끊임없이 코미디의 소재로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앙드레 김은 그 이름 하나로 패션은 물론 향수, 화장품, 골프웨어, 어린이 의류까지 브랜드 영역을 확보해나가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패션디자이너이면서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긍지와 자존심을 드높인 문화예술인이자 민간 외교사절로 인정받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는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가 노익장을 과시하며 끊임없이 자기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저력에는 회갑을 훌쩍 넘긴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프로정신을 아직도 현역의 자리에서 활발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더구나 그가 우리나라 패션업계의 대부,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그 나름의 고집과 철학이 뚜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답지 않게 애국애족의 정신을 강조하며 몸소 실천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는 수십 년간 100% 국산옷감을 이용하는 고집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아들에게도 나라에 대한 애착을 가져야 가정의 행복도 있다고 말할 정도다. 또 최근엔 국세청으로부터 성실모범납세자 표창까지 받았다.

 

   또한 그는 한번도 자신의 옷을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페라나 발레, 연극과 같은 예술 장르에서 감동을 느끼듯 패션 의상도 충분히 감동을 자아내는 창작예술이라는 것이다. 패션으로 새로운 예술적 장르를 개척해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말답다. 실제 그의 옷은 거리에서 볼 수는 없지만 유명 스타들이 입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 꼭 입고 다닐 수 있어야 ‘그게 바로 옷’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겐 갑갑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있어야 한다’며 앙드레 김은 그만의 패션철학을 꺾지 않는다.

 

   자기 브랜드가 뚜렷한 사람들 중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검정’ 아니면 ‘하양’의 논리만을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다. 자기 분야, 자신의 일 중에 그 일을 하는 방식이나 철학에 있어서 분명한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위기나 어려움이 닥쳐도 그 원칙과 철학을 무너뜨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자기 브랜드를 가질 자격이 있다. 쉽게 무너지고 부서질 수 있는 것은 철학도 아니고 가치관도 아니다. 그것으로 자기 이미지나 브랜드를 쌓으려고 한다면 분명 실패할 수 있다. 무너뜨릴 수 없는 가치, 끝까지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를 찾아 고집스럽게 다지고 키우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기둥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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