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처럼 한우물 파기

대학로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배우는 누구일까? 우리나라에서 한 작품을 가장 오래 동안 공연한 배우는 누구일까? 그 사람은 배우 ‘이도경’씨이다.

연극에 관심이 적거나 평소 즐겨 보지 않는 사람은 이름만 들었을 땐 누구인가 싶겠지만, 영화 <와일드카드>를 본 사람 중엔 안마시술소 사장으로 열연했던 한 중년의 배우를 기억할 것이다. 느물느물하고 힘없는 말투로 형사를 상대하던 이도경은 충무로에서 "이런 배우가 어디 있다가 나왔느냐"는 놀라운 시선을 받았지만, 그는 연극 경력 30년의 베테랑 연극배우다.

그가 갑자기 유명해진 것처럼 언론은 떠들썩하지만 그는 <와일드카드> 때문에, 단지 연극을 오래했다는 이유 때문에만 유명하지는 않다. 그는 대학로에서 <용띠위의 개띠>라는 연극을 7년째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전 <불 좀 꺼주세요>란 연극만 3년 6개월을 했다. 12년 간 단 두 편의 연극에 출연한 셈이다. <용띠위의 개띠>는 지난 7월 2000회를 넘겨 우리 연극 사상 최장기 공연에 기록되었다.

이도경 씨의 특기는 장기공연이다. 한눈팔지 않고 한 작품에만 ‘우직하게’ 매달리는 그의 열정은 연극 내내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영화 출연 이후 여러 영화나 드라마, CF 등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으나 그는 연극을 위해서 이 모든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일 한 가지를 한 눈 팔지 않고 10년 이상 해왔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이도경씨 역시 ‘연극’ 하나만으로도 박수 받을 자격이 있는데, 한 편의 연극이 곧 10년을 맞을지 모른다. 하긴 7년은 어디 쉬웠을까. 그는 과로로 쓰러졌을 때, 극장 조명이 나갔을 때, 그리고 시위로 교통이 막혀 뛰어서 극장까지 갔지만 너무 늦었을 때 등 3차례를 빼고는 한번도 쉬지 않은 개근 배우다.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일관성’이다. 모든 성공한 브랜드에는 한결 같은 일관성이 있다. 아무리 실력을 갈고 닦으며 인간관계를 넓히고 나를 마케팅한다 해도 꾸준하고 한결같은 부분이 없다면 결코 훌륭한 브랜드로 성장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늘 일관된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서태지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팬이라고 하자. 어느날 갑자기 서태지가 그동안 추구해왔던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접고 트로트 가수로 나선다고 해도 그를 좋아할 수 있을까? 그동안 휴식이 되고 에너지가 되었던 그의 음악이 트로트로 바뀌면서 더 이상 즐거움도 휴식도 에너지도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태지는 20대 데뷔시절부터 3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 많은 음반을 발표하는 동안 일관되게 자기 스타일의 음악과 자유롭고 거침없는 무대 매너를 보여줌으로써 많은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이도경씨는 이미 연극이 생활이 되었다고 했다. 한 가지를 일관되게 보여주는 일이 괴롭고 힘든 숙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생활이 되도록 가꾸는 것은 스스로 정신이 건강해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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