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북방 수락산이 서울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 품고 있는 동네가 노원구이다. 수락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좌측으로는 도봉산, 우측으로는 불암산이 호위하듯 병풍처럼 서 있다. 도봉산과 이어진 북한산(삼각산)까지를 ‘불수도북’ 또는 ‘불수도삼’이라고 한다. 가끔 도봉산 옆구리에 있는 사패산까지 끼워서 ‘불수도사북’이라 부르며, 힘 좋은 산꾼들은 이를 무박2일 날밤을 새며 종주하기도 한다.

필자가 다녔던 서울 중경고등학교 졸업생으로 이뤄진 중경산학회는 1년에 한번 쯤 결기를 다지기 위해 불수도북 종주 산행을 하곤 했다. 열명 남짓이 불암산 맥이 시작되는 중계동 104마을에 모여 초저녁 으스름에 출발한다. 불암산(509m)은 4개 산 중 가장 낮은 막내격이다. 산행 초반이라 가뿐히 넘고 수락산과 이어지는 덕릉고개에서 간식을 조금 먹은 후 남은 산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수락산(638m), 도봉산(739m), 북한산(836m)을 15시간에서 길게는 22시간 정도 오르내리는 강도 높은 산행 코스다.

수락산을 타고 내려와서는 장암역 고스락감자탕에서 든든한 식사를 한다. 남은 도봉, 북한을 타기 위한 기력 충전이다. 이 곳에서 계속 산을 탈 사람과 중도 포기자를 가린다. 왜냐면 장암이 교통편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기억하는 수락산은 선택이 기다리는 곳이다. 선택은 골라서 택해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우리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 무의식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락산 남쪽 밑동에 필자가 거처를 얻은 것도 큰 선택이다. 6층짜리 빌라의 5층을 얻었다. 동향이라 창밖으로 불암산이 가깝게 보인다. 옥상에 오르면 서울 북방 불수도북 4대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변에 높은 집이 없어 사방 전경이 이 보다 좋을 순 없다. 선택의 큰 기준이었다.

여행관광축제 콘텐츠로는 국내 최고 퀄리티를 자랑하는 잡지 <여행스케치> 박상대 대표(좌)와 필력과 음주가무 당대 최고인 이호준 시인이자 작가.

노원구 수락산 근동 사는 글쟁이들의 ‘수락산 자락 모임’

노원구에 자리 잡은 지 십 수 년이 되다보니 동네 이웃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특히 뒤늦게 페이스북을 하다가 서울 북쪽 자락에 사는 형님들과 교분이 생겼다. 이들의 공통점은 글 꽤나 만지는 글쟁이들이고 음주가무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세 의기투합이 됐고 세월 따라 몇몇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지금도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름 하여 ‘수락산 자락 모임’이다.

남영동 맛집 <남원원추어탕> 계절메뉴 꼬막무침. 필자가 먹어 본 꼬막무침 중 최고의 맛이다.

그동안 수락산 근동에서 자주 만나다가 한두 명씩 이사를 하게 되자 시내에서 만남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월 초 남영동에 있는 <남원원추어탕> 집에서 회합했다. 시인, 잡지사 대표, 출판기획자, 칼럼니스트 등 죄다 활자를 만져 돈벌이를 하는 생계형 글쟁이들이다. 물론 유통업이 본업인 분이 계시나 천상 시인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모임에서는 글쟁이로 분류된다.

꼬막무침은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남원원추어탕 꼬막무침은 춘분이 지나면 팔지 않는다. 꼬막 제철이 끝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일간지 신문 기자를 하다가 뿜어져 나오는 문학적 감수성을 어쩌지 못해 틈틈이 써온 시가 ‘반짝반짝’한 이호준 시인. <티그리스 강에는 샤가 산다>, <나를 치유하는 여행>,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세상의 끝, 오로라>,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 등 주옥같은 산문과 운문을 엮은 내공 충만한 시인이자 작가다. 여행작가계에서도 족적이 크다.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까먹는 꼬막 맛은 일품이다. 과장 좀 보태면 임금님 수랏상 8품중 1품이란 말이 달리 나온 게 아니란 것을 깨닫는 맛.

은퇴 후 강원도 백담사 근동에서 입산수도 하며 그 곳 공기만큼 청정한 시를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해탈한 듯 경기도 파주 심학산에 있는 약천사 처사로 들어갔다. 현존 문필가 중 음주가무에 가장 능하기로 손꼽히다 사찰 처사가 되셨으니, 어찌 견딜까 자못 궁금하다. 부디 성불하시길 기원할 수밖에.

이번 모임은 이 처사 입사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남들은 입사(入社) 축하한다고 회식하지만 입사(入寺)로 회식해 보긴 처음이다. <남원원추어탕>에서 만나는 이유는 이 집 바로 옆 건물에 <여행스케치>라는 관광여행전문잡지를 만드는 박상대 대표가 모임 멤버이기 때문이다. <여행스케치>는 모태가 월간지지만 네이버 검색매체가 됐을 정도로 콘텐츠가 좋다.

바삭함이 좋은 추어튀김. 추어튀김은 소주 안주로 좋다.

유통업을 하시면서 일상의 느낀 점을 페이스북에 써내려간 글이 ‘생활시’, ‘몸시’로 불릴 만큼 필력이 출중한 전재현 시인도 함께 했다. 지난해 생활시를 엮어 시집 <민들레를 밟지 않는 걸음으로>를 냈으니 유통회사 대표보다 시인이 어울린다. 모임의 좌장이자 불편부당한 사고로 어지러운 시대에 중심을 잡아주는 큰 형님이다. 출판계 사관학교라 불리는 서울문화사 출신이자 진주가 낳은 명 출판기획자 권선근 대표도 함께 했다.

이호준 시인 入寺기념 회식 남영동 맛집 ‘남원원추어탕’

<남원원추어탕>집은 간판대로 추어탕이 주력이지만 매생이, 꼬막 등을 이용해 벽에 걸린 메뉴판에 인쇄돼 있지 않은 제철 음식을 내놓는다. 3월은 꼬막의 마지막 달. 11월부터 3월까지가 꼬막 제철이다. 이 집도 꼬막무침을 시즌음식으로 내놔 매년 재미를 보고 있다. 재미를 볼 수 없는 이유는 압도적 비주얼과 더 압도적인 맛이다.

샛노랗고 구미를 당기게 하는 강황밥.

한 접시 넘치듯 담아내는 꼬막은 여사장님 고향인 벌교에서 직접 공수한 것이다. 벌교는 꼬막 대표 산지 중 한 곳이다. 고흥과 꼬막으로 티격태격 오래도록 힘겨루기를 한다. 최근에는 여수까지 끼어들어 ‘난투극’이다. 요즘 가장 핫한 식당 프랜차이즈 브랜드 ‘연안식당’을 만든 이범택 디딤 대표가 여수와 꼬막 공급 계약을 맺는 바람에 여수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연안식당 때문에 시중 꼬막 값이 올랐다는 풍문까지 돌 정도로 많이 쓰고 있다.

그럼에도 꼬막하면 역시 벌교다. 대부분 유명 특산물 앞에 지명이 붙는 데 꼬막은 벌교가 선점했다고 볼 수 있다. 벌교가 일치감치 마케팅을 잘했고 그 영향으로 국민들이 벌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박우량 신안군수가 “낙지와 양파는 신안 것이 최고” 강변하지만 이들 역시 이미 무안이 선점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논리와 같다.

벌교 꼬막은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하면서도 짭쪼름함 뒤에 단맛이 따라오는 게 특색이다.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 8품 중 1품으로 오랫동안 최고의 식재료 지위를 누리고 있다. 특히 벌교 꼬막은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타우린성분이 풍부해 간 해독과 보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참꼬막은 주름 수가 적고 골이 깊다. 시중 좌판에 나와 있거나 마트를 통해 대량 유통 되는 것은 새꼬막으로 잔주름이 많고 껍질이 얇은 게 특징이다.

<남원원추어탕> 꼬막무침 한 접시가 테이블 중앙에 꽃처럼 폈다. 은은한 참기름 향이 먼저 후각을 기분 좋게 파고들었다. 파, 마늘, 양파, 홍고추, 청고추 등을 잘게 깍둑 썰어 간장베이스의 고소하고 달달한 양념장과 섞어서 찰 지게 삶아낸 꼬막 위를 수놓는다.

<남원원추어탕> 대표 메뉴인 추어탕. 고추가루를 최소화하고 걸쭉한 것이 특징.

꼬막 살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양념장을 덮어 내오는 데 국물이 생기질 않아 깔끔하다.  먹다 남으면 까서 꼬막비빔밥을 해 먹을 수도 있다. 이 집 밥은 샛노란 강황밥이다. 먹음직스럽기도 하지만 건강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마구 드는 비주얼이다.

여행스케치 박 대표는 “종로에 있는 어느 식당 사장은 최저임금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데 남원원추어탕은 점심이나 저녁이나 늦게 가면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비결은 손님에게 정직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라면서 엄지를 척 세웠다.

꼬막이 남으면 강황밥에 올려 먹어도 되고 꼬막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것도 한 재미다.

11~3월까지 제철인 꼬막, 남원원추어탕은 춘분 지나면 팔지 않아

아쉬운 것은 춘분이 지나면 꼬막메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여사장님은 “춘분 지나면 꼬막요리는 안 팔아요. 맛이 좀 떨어지거든요”하며 장사의 정직함을 드러낸다. 드러내기 보다는 음식을 좀 아는 손님들이 알아채는 것이다. 꼬막이 임무를 마치고 퇴장하면 원래 주력 메뉴인 추어탕과 우렁된장찌개에 집중한다. 올해도 이 집 꼬막은 해끝(연말)에나 맛볼 수 있다. 지난 21일 춘분이 지났기 때문이다.

추어탕은 인원수 보다 적게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인당으로 뚝배기에 담아서 내왔다. 장사의 기본이 잘 된 식당이다. 대표 메뉴답게 추어탕 맛이 묵직하다. 그만큼 많이 갈아 넣었다는 의미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된장베이스로 투박하게 끓여 내오는데 남도 손맛이 느껴진다. 밑반찬 역시 남도 아낙의 대대로 이어지는 손맛이 담겨 있다.

한경닷컴 유성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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