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이오.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오.’

 100년 전 바위처럼 단단하고 의로운 <의암> 손병희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민족대표 33인을 변함없이 이끈 따뜻한 리더다. 쉬지 않고 멈추지 않으며 끝없이 독립을 위해 삶을 바쳤다. 마음 하나로 민족을 이끄신 교육자이자, 3.1운동을 시작한 독립운동가다.

  1912년 6월 우이동에 봉황각(鳳凰閣)이라는 교육시설을 건립한다. 미래를 꿈꾸는 지도자를 양성했다. 1914년 4월까지 3년간 483명이 배출된다. 삼각산 인수봉과 백운대로 가는 길목에 100년 전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일제강점기 봉황각에서 역사와 문화를 멈춤이 없이 교육했다. 그 결과 이들이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인사 15인으로 각 지역의 교육자로 우뚝 선다. 이곳은 민족의 성지이다.

 

<의암>의 지도하에 최린이 의견을 내어 청원서는 선언서가 됐다. 1919년 2월 11일 독립선언서 기초가 완성됐다. 최남선이 원고를 쓰고, 한용운이 공약 3장을 덧붙였다. 1919년 2월 27일 밤 천도교계 인쇄소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2만 1천장이 우여곡절 속에 인쇄됐다. 발각이 되려는 순간 손병희의 발 빠른 판단이 있었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1919년 2월 28일부터 평양, 개성, 해주, 철원, 원산, 군산 등 전국 각지로 보내졌다.

  1919년 3월 1일 2시 태화관(泰和館)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서 학생과 민중들이 모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에 불을 붙인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광화문 기념비각에서, 남대문역에서 만세소리가 울려 퍼진다.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프랑스 영사관 앞에서, 경성 우편국 앞에서도 전국적인 만세소리가 울린다. ‘시작이 곧 성공이다.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갈 뿐이다’ 라는 독립선언서 마지막 글처럼 전국으로 퍼졌다.

 

어느새 100년이 흘렀다. 우이동 봉황각에 <의암> 손병희 선생의 묘역이 건립되고 탑골공원에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세워졌다. 2019년 광화문 광장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한다. 민중을 이해하는 지도자, 바위처럼 단단한 의로운 지도자들이 생각나는 푸른 하늘이다.

“희망이란 것은 마치 길 같은 것이다. 원래 땅 위에 길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 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말이다. 이 말이 오늘따라 가슴 속을 저민다. 또 다른 100년을 기대하며 나도 길을 만들어 간다.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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