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돈을 굴리고 싶은 사람이 연결되는 것은 마치 혼기 꽉 찬 남녀의 중매처럼 어렵다. 한 쪽에서는 돈이 돌지 않아 기업이 넘어간다고 하고, 한 쪽에서는 여윳돈이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문제인데, 그렇다고 돈이 도는 방향에 관하여 제3자가 성급하게 간섭하면 안 된다. 돈의 방향을 왜곡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의도치 않은 블랙마켓(Black Market)이 생긴다. 더디가더라도 꼼꼼하고 단단하게, 방향을 잡고 가도록 길을 여는 것이 좋다.

방향을 잡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일단, 다양한 결의 투자자들을 분류(Classify)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시장법의 분류법을 벤치마킹해 보자. 자본시장법은 투자자를 크게 일반 투자자와 전문투자자, 2개의 집단으로 나눈다. 이 분류는 상당히 의미 있다. 개인과 법인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일반과 전문으로 나누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도 전문투자자가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개인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전문투자자로 인정받는다. 전문투자자가 되면 무엇이 다른가. 참여할 수 있는 투자의 폭이 조금 더 넓다. 왜 이들만 넓혀 주는가. 그 영역에서는 투자에 따르는 위험이 꽤나 크기 때문에,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열어주는 것이다. 소위 ‘재테크’목적으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그 투자를 통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폭에 한계가 크다. 한 순간 거대한 위험에 잠깐 노출된 것만으로도 일상 생활 자체가 출렁거릴 수도 있다. 그래서, ‘개미’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공모투자의 경우에는 각종 안전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소정의 전문투자자들의 경우도 종류가 몹시 다양하고, ‘금융투자업자’로 분류되는 기관만으로도 정말 다양한 종류의 그룹이 있다. 그 중에서, 블록체인 생태계, 특히 블록체인 기술 회사들과 가장 관련성이 있는 전문투자자 그룹을 꼽자면, 아마 VC(벤처캐피탈), 혹은 사모펀드가 아닐까 싶다. 일반적인 언어로서의 사모펀드와 자본시장법 소정의 사모펀드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여하튼 지금은 개괄적으로 살펴보겠기에, 이하에서는 두 그룹을 통칭하여 ‘펀드(Fund)’라고 해 보겠다.

펀드가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심할 때에는, 여러 가지 전략에 입각하여 의사결정 한다. 그 전략을 분류하는 데에도 또 다시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기준은 ‘기업의 성장단계에 따른 전략’이다. 기업도 나름의 생(Life)이 있다. 탄생에 해당하는 설립부터 성장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청산(해산)단계까지. 설립단계에서는 주로 시드 머니(Seed Money), 시리즈 A(Series A) 단계의 펀딩이 이루어지고,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단계에서는 디스트레스드(Distressed) 전략의 펀딩이 자주 이루어진다.

펀드는 수익률을 보고 돈을 투자하는 전문업자들이다. 투자 대상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진 수익 창출 가능성이 중요하다. 기업의 생(Life) 각 단계에 대하여 살펴 보아야 할 관점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그 시장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해서 ‘한 끗’ 다른 장점이 있는지, 그래서, 그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이 수혈되면, 그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약속한 수익률을 창출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본다. 이 작업은 펀드의 업무 가운데 대단히 공수가 많이 드는 작업 중의 하나이다.

시드 머니의 경우, 우리가 보통 장사를 할 때 ‘종잣돈’을 넣고 시작한다는 역할을 하는 그 펀드의 경우에는 물론, 초기의 수익률은 과감하게 눈 감고 멀리 내다본다. 제조업종의 스타트 업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스타트 업 팀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나, 현실화 시킬 연구 개발(R&D)에 투입할 돈이 없다. 연구 개발비용을 과감하게 투자해서 산통 끝에 시제품 (샘플, 프로토타입)을 개발해내고, 그것을 대량 생산하는 공정을 안정화시키는 데에도 돈이 든다. 밑 빠진 독처럼 돈이 든다. 여기에서 처음부터 수익률 타령하기는 어렵다. 그럼 무엇을 보는가? 미래의 수익률을 보는 것이다. 완성된 시제품이 향후 창출할 수익률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믿고 긴 호흡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엔젤투자자’로 명명되는 투자자도 있다. 말 그대로 생지옥에서 만난 천사, 물 없는 사막에서 촉촉한 단비를 내려주는 천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천사의 사용대가는 공짜가 아니다. 미래에라도 수익률을 달성해주어야 한다. 영 못하면 투자금이 회수되기도 한다.

시리즈 A는 종잣돈 받던 단계에 비해 몇 그래도 두어 번의 걸음마를 뗀 기업이 만나는 펀드이다. 시리즈 A를 모집하는 기업도 여전히 ‘애기’이다. 아직 수익률 이야기는 멀었다. 게다가 시제품의 상용화, 매출의 확대 가능성, 유통 채널의 다각화 등, 성장을 위해 돈 쓸 곳은 여전히 많다. 이 때 펀드가 수혈해 준 자금으로 각종 플랫폼, 인프라를 구축하고 더 많은 수익률을 기원하는 것이다. 수익률을 도모하는 방법으로는 미래에 가장 확실한 방법을 추구한다. 시리즈 A 투자계약의 많은 경우는 Convertible Notes (우리나라 법제에 따를 경우, 상환전환우선주와 유사)로 이루어진다. 잘 될 경우의 지분권 확보가 이 전략의 핵심이다.

먼 길 돌아, 다시 블록체인 생태계로 돌아가자.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밋업(Meet up)행사는 사실, 아이디어만 이야기하는 단계이므로, 프리펀딩 (Pre-Funding)단계의 아이디어 발표회 같다. 비트코인이 연상되는 테크적인 도안들이 난무하는 PPT가 지나갈 수록, 블록체인의 기술을 통해, 어떤 그 무엇을 하겠다는 말 만 되풀이 된다. 다음 장표를 기대하고 기다리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된다는 말일까.

발표가 끝이 나도, 수익률을 가늠하기 어렵다. 거칠게 말하면, 그냥 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코인에 투자하면, 대박이 난다는데, 그것은 묻지마 투자가 계속적으로 이어져야만 가능할 것 같은데, 그 다음 이야기는 없다. 그 프로젝트를 통한 수익 창출의 메커니즘이 가시화되기 어렵다면, 굳이 안전장치 없는 코인에 투자해야 할지 망설여질 수 밖에 없다. 한 프로젝트 팀은 코인 회사소속 변호사가 방송에 출연했다고 홍보했다. 사업계획보다는 변호사를 채용했구나. 투자하기에 더 망설여진다.

블록체인의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일단, 상용화되어 블록체인 생태계의 필수요건인 가상화폐, 코인이 유동성이 인정되는 자산으로 각광 받게 되면, 코인회사나 거래소는 자연스럽게 수수료를 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순서가 바뀌었다. 수수료를 벌고 싶은 쪽이, 일단 코인에 투자하라고 광고하고, 그 코인의 정체가 기술인지 아닌지, 블록체인 자체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해왔다.

나는 일단 여기서 블록체인 기술회사들을 ‘제조 스타트업’의 사례와 비교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백서는 시제품 아이디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이디어를 가시화하기 위한 돈이 필요할 수 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제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왜 돈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백업이 필요하다. 백서로 전부 커버되는가. 확인해야한다.

제조업 스타트 업의 경우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검토 받고 좋은 평가가 나오면 투자 받는다. 먼 미래나마 어떤 수익이 창출될 것인지에 대한 믿음이 선 투자자들로부터 시드 머니, 시리즈A를 유치한다. 그 다음은, 유치된 펀드의 감독을 받는다. 돈을 넣고 가만히 거래소만 쳐다보고 있지 않는다. 펀드간의 투자계약서에 따라 피투자회사인 스타트업 회사에는 일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각종 의무가 생긴다. 그것은 무리한 의무가 아니다. 그 의무를 다 하겠다기에 자금이 투자된 것이다. 투자자들은 수익률이 나와야 엑싯(Exit)을 한다. 그래서 그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 관리를 받다 보면, 야반도주하기란 만만치 않다. 코인회사가 펀딩을 받고 야반도주하는 것과는 메커니즘이 조금 다르다. 시중에 돈이 VC로만 몰리는 것처럼 보이고, 너도 나도 펀드를 조성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 펀드를 조성하기만 하면 대박이 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펀드의 자금을 쓸 대상을 고르는 일은 가시밭길이다. 10개 중에 하나만 걸리면 된다는 말은 남의 일이니까 하는 소리다.

투자역에게는 거래의 기록이 남는다. Track Record. 당신이 어떤 투자를 잘 해서, 어떤 수익을 남겼는지, 어떤 투자를 잘 못해서 어떤 손실을 남겼는지가 남아있다. 아무렇게나 돈을 쏠 수 없다. 그래서 24시간 365일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것을 전문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ICO는 개미들만 낭떠러지로 밀어 놓은 모습이다. ICO의 현재 모습으로는 이렇게 피투자회사를 관리 감독할 방안이 없는 일반투자자에게 시드 머니 와 시리즈A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비극의 시작이다. 그들은 그렇게 위험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ICO가 아니다. 오히려,‘포지티브 규제’의 틀 속에서도 전문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인정되면 좋겠다. 전문투자자들의 판으로 들어오면 좋겠다. 이 판에 나오면, 옥석 가려지는 것은 오히려 쉬워질 수 있다.

이정의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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